제가 남자 영화배우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한 명은 성실하고 다작하기로 소문나 있지만 연기 변신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다작을 하지도 않고 숨어 사는데 명수이지만 극중 배역 인물로 거의 완벽하게 요즘 쓰는 말로 ‘빙의’하는데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다니엘 데이루이스’(Daniel Day Lewis)입니다.

이 두 영화배우에 대한 평은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하구요, 제가 이번에 쓰려는 글은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주연했던 영화 “링컨‘(Lincoln)에 대해서 입니다. 솔직히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연방주의‘에 대한 것입니다. 갑자기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 윤여준 전 장관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재작년부터 한국사회에 정치를 향한 관심과 바람을 일으켰던 “나는 꼼수다”라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이 방송은 모 회사가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방송인이 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 형식을 가진 ‘팟캐스트’라는 매체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방송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요, 그 중에 지난해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여당의 책사”로 불리던 ‘윤여준’ 전 장관이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연방주의자 중심의 정치 사상사를 깊이 있게 공부했으면, “링컨” 영화 보고 많이 배웠다는 소리가 안 나왔을지 모르는데...”

저 소리를 듣자마자 귀가 쫑긋, 눈이 번뜩했습니다. 대선 이후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미해 지내고 있던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삼성비자금 문제로 형을 확장 받아 국회의원 자격이 상실된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인 “노원병”에 출마한다는 소식과 함께 윤 전 장관이 인용한 이야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윤 장관이 저 이야기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며 안 후보를 비판한 내용이었습니다.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미국의 연방주의가 무엇인지와 링컨이라는 영화는 둘째쳐 놓고 링컨 시대에 미국의 연방주의가 어떻게 변화되었냐는 것입니다. 먼저 미국의 연방주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링컨 시대에 이르러 미국의 연방주의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간력하게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연방주의 제도란

먼저 연방 제도라는 것 자체는 중앙 정부와 연방을 구성하는 지방 정부들 간의 권력이 분립된 정부 형태를 가리킵니다. 각 정부는 서로에 대해 실질적이고 독립적인 권력을 가지며 인민에게 직접 권력을 행사합니다. 즉 연방주의의 핵심 요소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들이 각각 독립된 통치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방 체제는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의 존재를 결정하는 일원적 정부 체제와, 지방 정부들이 중앙 정부의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 국가 연합 체제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연방 제도는 흔히 1776년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일컬어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독립 직후에는 국가 연합 체제였고 1789년부터 연방 제도를 실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1776년 당시 13개 주는 연합 규약 아래 각각 주의 권리를 행사하며 우호와 친선 관계를 유지하는 연합(confederation) 형태로 출발하였는데, 1787년 새로운 연방 헌법을 만들어 1789년부터 연방(federation)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1787년 봄과 여름에 걸쳐 13개 주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서 만나 독립된 주들을 하나의 국가로 이루기 위한 논의를 벌였는데, 그 결과 강력한 국가 체제를 이루면서도 각 주들이 중요한 정치적 독립체를 유지할 수 있는 상충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부 체제를 고안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만들어진 연방 헌법에 따르면 중앙 정부는 화폐를 주조하는 것과 같은 크고 종합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주 정부는 이혼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지역적이고 특별한 권한을 행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헌법은 어떠한 권한이 크고 종합적이며 무슨 권한이 지역적이고 특별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헌법은 중앙 정부와 주 정부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한 경계선을 분명하게 그어 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헌법의 해석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쟁을 거치면서 연방주의 성격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이론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미국이 어떠한 배경으로 연방 제도를 취하는 국가를 세웠는지에 관한 논의는 해밀턴 파(Hamiltonians)와 제퍼슨 파(Jeffersonians) 사이에 전개되었습니다. 해밀턴 파는 헌법이 전체 인민들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주 정부들보다 실질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제퍼슨 파는 헌법이 근본적으로 주와 주 사이의 협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주 정부들이 중앙 정부보다 더욱 중요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앙 정부의 권력을 강조한 해밀턴파의 주장은 국가 중심적 연방주의 또는 협조적 연방주의(cooperative federation) 이론으로 발전하였고, 지방 정부의 권력을 중시한 제퍼슨파의 주장은 주 중심적 연방주의 또는 이중적 연방주의(dual federation)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영화 “링컨”

먼저 건국 초기부터 1930년대까지는 주로 주 중심적 또는 이중적 연방주의 개념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 때는 중앙 정부와 주 정부들이 명확하게 구분된 고유의 관할 영역을 확보하여 각각 다른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서로 간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기능이 분리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중앙 정부와 주 정부들의 권한이나 기능, 그리고 대표성이나 책임이 이론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서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주 정부들이 중앙 정부와 거의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중적 연방주의 이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중앙 정부는 헌법에 열거된 제한된 권한만 갖는다. 둘째,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들은 각각의 영역 안에서만 통치권을 갖는다. 셋째, 국가와 주들 사이의 관계는 협조보다는 갈등 관계로 나타난다. 따라서 중앙보다는 지방의 원칙들이 보다 중시되고, 주들의 권한이 지속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특히 1930년대의 세계 공황을 거치면서 미국의 연방주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게 됐습니다. 과거에 분리주의적 성격을 띠었던 중앙 정부와 주 정부들은 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점점 협조와 결속을 이루는 경향을 띠면서 협조적 연방주의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것입니다. 주 정부들과 사기업들이 공황에 따른 심각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벅찼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구호물자를 보내면서 경제 회복에 직접 개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공황에 대처하는 루즈벨트(Franklyn D. Roosevelt) 정부의 뉴딜(New Deal) 정책에 따른 여러 가지 긴급한 구호 계획은 중앙 정부와 주 정부들 사이의 협조 관계를 이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앙 정부는 주 정부들에 대하여 분배와 규제라는 두 가지 새로운 기능을 활용하여, 보다 우월한 지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직접적으로 지방 수준에 개입하는 빈도가 늘어갔습니다.

이와 같이 발전된 국가 중심적 또는 협조적 연방주의 이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와 주 정부들이 서로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헌법이 독립된 주들 사이의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민들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중앙 정부와 주 정부들은 권한과 업무를 서로 분담하며 쌍방이 협조하여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다. 셋째, 따라서 중앙 정부와 주 정부들의 권한이나 기능, 대표성이나 책임이 서로 얽혀 있다. 즉, 양자의 관계는 서로 배타적이기보다는 함께 정부 기능을 책임지며 권한을 공유한다. 넷째, 권한이 어느 한 정부에 집중되어 있지 않지만, 인민들 사이의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원칙을 지방의 원칙보다 우선시한다.

미국의 정치 이념을 이루는 자유주의 요소들 가운데 자유와 평등 사이의 갈등과 관련하여 보수주의자들은 주 중심적 또는 이중적 연방주의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중앙 정부의 규모를 줄이고 권한을 제한하며 지출을 감소하여 자유의 폭을 넓히라는 뜻입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국가 중심적 또는 협조적 연방주의를 지지한다. 중앙 정부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평등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권한이 약해지고 예산이 줄어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은 아닐지

처음 미국 연방 제도는 느슨한 형태의 이원 국가 개념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1787년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Founding Fathers)들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진행하면서 “절대 권력의 출현”을 가장 경계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가장 보수적이었던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 1751.3.16.~1836.6.28)과 가장 진보적이었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4.13.~1826.7.4)은 이념은 달랐어도 새로운 왕족과 귀족 등장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협력했습니다. 

그래서 주정부의 권한을 의도적으로 키우고 주정부 산하의 군대까지 허용했습니다. 정부 형태에서부터 법체계 등 모든 것이 느슨한 형태로 출발했다는 것은 바로 이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Founding Fathers)들이 “지금은 결정할 수 없으니 후대에 물려주자”는 생각 때문이었고 그들의 이런 “사상”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놓고 지금까지도 역사학자들이 논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참 재미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후대에 물려주자는 생각. 아마 미국식 민주주의 원천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또 미국 사회가 시시비비를 가림에서 생각의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도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미국의 연방주의가 링컨 시대에 와서 결국 충돌이 벌어졌고 중앙정부의 권한도 새롭게 탈바꿈 했습니다. 법체계하에서 말입니다. 건국 초기 미국 사회 내에서는 “이중적 연방주의”가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링컨 시대에 와서 바로 “협조적 연방주의”로 변화를 겪게 됩니다. 바로 이번에 개봉된 영화 “링컨”은 이런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정리를 좀 하자면, 윤 전 장관이 안 후보를 비판 요지를 제가 가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미국 정치 형태와 비교해 보자면 협조적 연방주의의 형태 때문에 민주주의에 많은 손상을 입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연방주의에 대해 깊은 공부를 했다는 사람이 링컨 영화를 보고 많이 배웠다고 하니 도대체 뭘 배웠다는 말인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중적 연방주의가 절실하다. 그걸 정말 안 후보가 모른다면 실망이다.”

제가 만든 가상입니다. 그리고 윤 전 장관의 정확한 생각을 모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윤 장관의 저런 발언은 제가 가상으로 쓴 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습니다. 한국 사회는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 너무 커 있습니다.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종시”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 미국에서 귀국한 안철수 후보

하여간 한국 사회의 형태와 정치 형태에 대해 윤 전 장관의 저 짧은 몇 마디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중앙 정부가 가졌던 기능들이 지방정부로 나누어지고 중앙과 지방간의 균형적인 발전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도 더 깊은 고민을 할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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