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에 있어 이유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위패에 놀라 전체를 모두 담아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위패를 모시지 못한 수가 1만5천이란다.

그 당시, 아이가 10살이나 되어야 호적에 올렸다. 4.3으로 죽은 10살 미만의 아이들은 그렇게 이름도 얻지 못하고 죽어갔다. 평생을 ‘난 돼지집에 숨언 살았수다. 살려줍서, 살려줍서 허는 애기 놔두고 나만 혼자 살았수다.’며 노래한 할머니의 노래가 생각났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4.3희생자를 결정하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단 한차례가 열렸을 뿐이다. 줄어가는 4.3예산에 뜸해지는 위원회, 제주의 원혼은 아직 그 한을 다 풀지 못한 채 소리없이 울고 있다.

'용서와 화해', 참 좋은 말이다. 특히 기독교는 '용서와 화해'를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제주 4.3은 가해자의 사과와 처벌없이 희생자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요할 뿐이다. 용서를 위해, 화해를 위해 희생자들은 60년의 한을 가슴에 묻은 채 손을 내밀었지만 잡아주는 사람 없다.

4.3의 광풍이 사그라들 무렵, 한국전쟁은 또 다시 학살의 이름으로 다가왔다. 전국 곳곳에서, 제주에서 '예배검속'이란 이름으로 죽어간 영혼들이 하루 빨리 안식을 찾길 바란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그들은 끌려가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섯알오름에서 죽은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가면서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멀어져 가는 마을을 향해 자신들의 신발을 벗어 던졌다.

아직도 신원을 찾지 못한 유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유족을 찾고 싶어도 늘 예산이 문제이다. 죽어간 영혼을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수 없는 비참한 슬픔이 아직도 제주에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희생자의 유골은 새우젖 마냥 엉켜있고, 죽기 전에 신었던 고무신은 주인을 잃은 채 놓여있다. 시신도 제대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구덩이에 파묻은 돼지마냥 그렇게 비참하게 죽였다. 시대와 역사의 광기는 놀랍도록 끔찍하다. 3.4평 유치장에 35명을 수감했다. 그들이 외치던 것은 '단정, 단선 반대'와 '통일'의 구호가 그렇게 거슬렸던가? 경찰의 발포로 6명의 사람이 죽어 나간 것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의 총파업에 정권의 대답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3.3평의 비좁은 감옥에 앉지도 못하고 서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제주4.3은 잔인함의 끝을 보여준다. 어린 아이를 돌에 메쳐 죽이거나 사람을 모아 놓고 집단사격으로 죽였다. 시체더미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어린 아이가 기어 올라오면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제주4.3이 거의 끝난 54년 1월, 마을 사람 대부분이 학살당한 북촌마을에서 젊은이 하나가 죽었다. 상여는 마을을 돌아 북촌초교를 향했고, 뒤따르던 마을 사람들은 북촌초교에 도착하자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마을 전체가 북촌초교에서 '아이고'하고 울었다. 4.3으로 죽어간 혈육들이 생각난 것이다. 그러나 정권은 '울음'마저 죄가 된다며 사람들을 잡아갔다.

북촌 마을 320명이 한날에 죽었다. 그래서 제삿날도 같다.

북촌초교에 모인 사람들을 끌고가 '옴팡밭'에서 죽였다. 소설 <순이삼촌>은 학살의 생존자의 삶을 통해 제주4.3의 잔인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널부러진 비석은 그날의 참혹함을 말해주며, 순이삼촌비 옆으로 소설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이 조용히 누워있다.

제주4.3평화기행에 참석한 라무 씨가 너분숭이 위령성지에서 춤을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있다.

제주에서 '삼촌'은 친인척 관계는 물론, 가까운 사이는 모두 그렇게 불렀다. 마을 전체가 가깝거나 멀거나의 차이일 뿐 혈연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마을에 대한 애착도 서로에 대한 정도 깊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제주삼촌'을 잃어버렸다. 할머니는 소화불량 및 관절염 등 후유장애로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듯 매일 약을 타다 먹었다. 하지만 더욱 아픈 것은 학살의 총탄이 관통해 버린 할머니의 인생과 영원한 침묵 속에 묻혀진 한 서린 가슴일 것이다.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한 후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여전히 군대는 호시탐탐 군사 기지화를 위한 욕심을 내비치고 있다.

'동광큰넓궤'에서 발견된 탄피. 동굴로 주민이 숨어든 것을 알게된 군경토벌대는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나 동광리 주민들은 고추가루와 솜을 태우며 저항했다. 좁은 동굴 입구에 매운 연기까지, 군인들은 동굴에 진입할 수 없게되자 무차별 사격을 감행했다. 이도 여의치 않자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아이만은 꼭 살리고 싶었다. 눈밭을 헤매던 모녀는 군인들에 의해 발각되었고, 도망치는 모녀의 뒤로 군인들은 총을 겨눈다. 하얀 눈이 붉게 물들었을 때, 어머니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주저 앉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눈에 실려 모녀의 생명도 바람에 날려 희미해 진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마지막까지 아이를 붙잡고 부른 노래일 듯 하다.

제주4.3위령제가 있던 3일(수) 강정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외치는 시위자들이 평화공원을 찾았다. 학살의 만행이 있었던 곳 제주, 이제는 평화의 섬이 되길 원하는 제주, 수만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는 제주가 또 다시 군대에 의해 고통받는 섬이 되고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4.3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7년째 대통령이 4.3위령제에 불참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한 시위자가 '왜 박근혜 대통령은 오지 않은 것입니까?'하고 물었지만 경찰산성(?)에 막혀 들리지 않았나 보다. 4.3의 완전해결을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은 조화만 보냈다.

고수봉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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