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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의 나타난 열 가지 재앙의 신학?장석정 교수의 『재앙의 신학』
이정훈 기자 | 승인 2013.05.04 00:04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서를 읽고 성서의 정신을 배워 실천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어느 구절은 읽기만 해도 뜻이 분명하게 이해가 되지만 또 어느 구절은 읽어도, 읽어도 명확하지 않은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역사비평적인 성서 해석은 괴물이 아니다

신학을 전공했느냐 전공하지 않았느냐의 차이는 아니다. 신학을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구절이건 쉬운 구절이건 기존에 나와 있는 성서를 해석한 주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마음만 먹으면 주석을 구입해 읽는 것을 어렵지 않다. 신학을 전공했건 전공하지 않았건 간에 어느 주석을 읽느냐의 차이만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학교에서 배울 때는 좋다고 했던 주석들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목회 현장으로 들어가 보면 그 주석들이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별로 쓸모없다고 했던 주석들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많다. 주위의 지인들 중에 아직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주석을 싼 가격에 팔 수 있겠냐고 부탁받은 일들도 있다. 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다. 

어쨌든 신학을 전공했건 전공하지 않았건 간에 ‘괜찮은 주석이나 책 한 권’ 곁에 두고 성서를 찬찬히 읽어가며 뜻을 알아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문제는 그 ‘괜찮은 주석이나 책 한 권’이 뭐냐는 것이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되냐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조금의 여유가 있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교육 받았건 간에 진보적인 주석이나 책이 무엇인지 보수적인 주석이나 책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성서를 역사비평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이다. 역사비평적인 관점이라는 것도 말이 어려워 그렇지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역사비평적인 관점은 성서가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말이나 작은 글로부터 시작해 후대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마침내는 하나의 책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창세기 1장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그 이전의 자료들을 모아서 썼다고 하고(P), 창세기 2장과 3장은 하나님의 이름을 ‘야웨’(J)로 썼던 자료들을 모아서 어떤 사람들이 기록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성서는 시간의 흐름과 역사적 배경, 그 성서의 자료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반면에 보수적인 관점은 어떤 자료나 긴 구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침묵할 때가 대부분이고,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단번에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비평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보수적인 관점의 사람들도 요즘 들어 역사비평적인 관점을 많이 인정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의 신학적 의미를 묻는 책

어쨌든 이런 관점이냐 저런 관점이냐는 어쩌면 차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보든지 그 관점이 자신과 맞아야 책도 읽든지 말든지 하는 것이니 말이다. 보수적인 관점이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역사비평적인 관점이 더 좋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 이것 가지고 왈가불가 할 일은 아닌 듯싶다. 자신과 맞는 책을 보면 되고, 자신과 관점이 안 맞는 책을 보는 사람을 물고 뜯을 일이 안 일어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요즘 들어 또 하나의 흐름 중의 하나는 기존의 역사비평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성서의 자료나 긴 구전 역사를 밝히려는 자세보다는 1970년대부터 시작돼 성서를 있는 그대로 한 권의 책을 읽듯이, 그래서 책 자체의 문학적 아름다움이나 의미를 밝히려는 움직임이다. 이런 관점을 ‘문학비평적인 성서 해석’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의 문학기법을 연구해 그것이 가지는 심미적인 모습을 찾아내고 뜻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서론이 너무 긴듯하지만 소개하려는 책은 후자의 방법으로 쓰인 책이다. 역사비평적인 관점을 수용하면서 성서 본문을 있는 그대로 읽어가며 뜻을 찾아내려는 책이라는 말이다. 관동대학교의 장석정 교수가 쓴 『재앙의 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 관동대학교 장석정 교수가 펴낸, 『재앙의 신학』

제목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출애굽기 7장에서 12장까지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내리셨던 ‘열 가지 재앙’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해석한 책이다. 장 교수는 들어가면 말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본 저서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설화적인 기록으로 간주되는 열 가지의 재앙에 관한 내용들을 하나씩 분석하여 그 속에 담긴 신학적인 의미들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재앙들은 출애굽기 본문에 기록된 대로 일어났으며,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인지를 증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재앙이 어떤 의미에서 재앙이 될 수 있었는가와 그것이 기록된 성서본문을 통해서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논의하려고 한다.

재앙들이 내렸던 것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권을 행사하고자 한다. 전능하신 여호와는 이런 재앙들이 없어도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수 있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재앙 사건들은 다른 차원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재앙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열 가지의 재앙들이 나타내주는 여호와의 정체성을 다 알게 되기까지는 아무리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 각 재앙들의 연구를 통해서 ‘땅’의 개념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주목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굽 땅은 거듭되는 재앙들의 피해를 입음으로써, 사람이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 변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서 애굽 사람들은 물론 살 수 없지만, 이스라엘 사람들도 살 수 없는 땅이 되어서 궁극적으로 그 애굽 땅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도록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야 할 곳으로서의 ‘땅’과 이스라엘이 반드시 떠나야 할 곳으로서의 애굽 ‘땅’이 대조적으로 그리고 중의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본문들이 다름 아닌 열 가지 재앙이 기록된 본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13-15)

장 교수는 자신의 해석 입장대로 메뚜기 재앙을 이렇게 해석한다. 

“(출애굽기 10장) 5절에서 ‘땅의 표면’(עֵ֣ין הָאָ֔רֶץ, 엔 하아레츠)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직역하면 ‘땅의 눈’이 된다. 여기서 ‘눈’은 ‘표면(surface), 외양(appearance)’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는 이 표현을 통해서 여호와가 애굽의 눈을 덮어서 그 땅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다’는 동사와 ‘눈’이라는 명사는 잘 조화를 이룬다. 땅의 눈은 가려지고, 애굽 사람들의 눈은 땅을 볼 수 없었다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사실 많은 메뚜기들로 인해서 땅을 볼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땅과 연관시켜서 표현한 것을 보면 결국 메뚜기들의 숫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우선적인 이유는 단순히 그 숫자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땅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메뚜기 재앙은 땅을 향한 재앙이라는 관점을 보여준다.”(211)

출애굽기에 관한 주석들과 책들은 엄청나게 많지만, 이렇듯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열 가지 재앙을 따로 해설한 책은 유일한 것 같다. 그것도 복잡하고 어려운 주석이 아니라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고 특히 히브리어의 표현에 집중하면서 해설한 책 말이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열 가지 재앙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게 쉽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 권하고 싶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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