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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와 연행이 아니라 관심이 큰 힘이에요”맑스 코뮤날레에서 만난 사진작가 이우기
이정훈 기자 | 승인 2013.05.13 02:26

 ‘맑스 코뮤날레’가 시작된 첫 날(5월10일), 대회가 열리는 서강대 다산과 입구 옆 너른 마당에 공사 정문과 레미콘 차량이 촬영된 아주 큰 사진이 하나 걸려 있었다. 제주도 강정마을 공사현장을 다녀 온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아볼 사진이었다. “뭐에 쓰려고 저걸 걸어놨지? 누가 걸어놨을까?” 하고 궁금증만 가지고 지나쳤었는데, 대회 마지막 날(5월12일) 그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 현장과 이론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퍼포먼스를 준비한 이우기 사진작가
대회 마지막 날, 점심을 먹고 잠시 숨 좀 돌린다고 사진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긴 파마머리에 사진기를 들고 누가 봐도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휠체어를 탄 내게 다가왔다. “저 사진 앞에 의자 치워 드릴게요, 휠체어 타고 가서 있으시면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게요.” 얼떨결에 사진기를 든 남자의 말에 “어? 제가요? 얼굴이 좀 아니라서 어쩌죠?” “괜찮습니다(웃음).”

사진을 그렇게 찍고 그 남자 분께 여쭈어 보니 큰 사진을 설치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 분의 이름은 ‘이우기’ 사진 작가였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다녀온 것이 인연이 되어 이런 순서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강정마을에 가게 된 동기는 재작년(2011년) 10월 즈음에 김진숙 위원장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을 당시 ‘희망버스’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자신은 한 번도 탑승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트위터를 통해 희망버스나 제주도 강정마을에 대한 소식들은 알고 있었고, 영도 한진중공업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참여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강정을 가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찾아가 강정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감동을 받았단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있지? 나도 이런 사람들과 같이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재작년 10월에 강정마을을 한 번 방문한 이후, 작년 3월부터 9월까지는 강정마을에서 직접 살기도 했다는 이우기 작가. 사진을 찍기 위해 강정마을을 간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업이 사진작가라 어쩔 수 없이 그곳의 풍경들을 사진기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눈뜨게 된 현장이라는 공간.

그렇게 강정마을에 살면서 그가 얻었던 것은 무엇보다 사람들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 활동가들고 종교인들, 그리고 강정마을이 파괴되지 않도록 막아보려는 일반 사람들, 그들 모두를 만났다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함께 울고 웃고, 같이 힘들어 하면서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 아직도 그들과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인연이 되어 결국 사진작가인 그가 소위 진보 좌파가 모여 학술문화제를 벌이는 맑스 코뮤날레까지 오게 되었다고. 

강정마을을 다녀 온 후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무엇을 찍을지 어떻게 찍을지 계획을 하고 촬영하던” 예술 사진작가에서 이제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이라고 한다. “예술 사진과 현장 사진과의 취합점”을 찾는 자신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더 많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현장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한다는 이우기 작가. 

   
▲ 이우기 사진작가가 마련한 강정마을 구럼비로 통하는 정문과 레미콘 차량을 담은 사진
이런 대화중에 그는 강정마을에 대한 걱정도 털어 놓는다. “대추리나 용산 같은 경우는 뭔가 가장 어려운 정점을 한 번 찍고 나서는 이렇게 내려가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강정은 그 정점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가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계속 오르막이기 때문에, 물론 3월 발파 때나 그럴 때처럼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그러진 않지만 24시간 365일 항상 공사장 앞에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고, 그저께도 천막을 철거하면서 주민들도 크게 다치기도 하고 마을 회장을 포함해서 연행되시기도 하고 지금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지기도 했는데, 전 솔직히 겁이 납니다.”

   
▲ 이우기 사진작가가 강정마을의 공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연행하는 경찰들을 담은 사진
그러면서 강정마을 사태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분들께 한 마디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앞으로 더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겁이 납니다. 꼭 와서 연좌를 해 달라, 연행을 당해 달라, 이런 건 절대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런 강정 소식들 알려주시고 어떻게든 그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맑스 코뮤날레에서 이런 기획을 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게 된 것은 “현장과는 거리가 먼 분들과 현장과의 결합”을 이루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구럼비로 통하는 공사현장 정문과 레미콘 차량을 담은 큰 사진 앞에 의자를 놓고, 또 의자 앞 20m 앞에 경찰들이 찍혀 있는 사진을 놓았다. 그 경찰 사진 2m 정도 앞에서 촬영하면 구럼비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체증하는 사진이 되도록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대회에 참석한 어쩌면 이론에 통달한 사람들에게 강정마을을 지키려는 모습을 담아주며 강정마을을 알리려는 모습. 이것이 소통을 만들어내고 연대를 실천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다음은 이우기 사진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어떻게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나요?

- 맑스 코뮤날레가 학술대회잖아요. 아무래도 현장과는 어떻게 보면 거리가 머신 분들 공부 많이 하시고 책 많이 파시는 분들이 보통 많이 오시잖아요. 여러 설치물들이 있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으로 만든 거예요. 현장하고의 결합,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요. 지금 한 것은 강정마을의 해군기자 공사장 앞이에요. 뒤에는 레미콘 차량이 나오는데, 요기 딱 앉으면 막게 되는 거고. 저쪽에서 촬영한 것은 체증을 한 거고.

△ 이렇게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할 계획은 있으신가요?

- 급하게 계획을 된 거라. 아직 그 단계까지는 생각을 안 했는데, 많이들 재미있어 하시더라고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정말 해 봐도 재미있겠더라고요.
 
△ 지금 현재 하시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 저는 사진 찍고 있고요. 작년에는 강정마을에서 좀 있었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사진 찍으면서 이런저런 현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 맑스 코뮤날레 참석하신 분들 중에 이 자리에서 촬영하신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다들 재미있어 하셨어요. 사진을 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저도 기분 좋았어요.
 
△ 대충 몇 분이나 참여하신 것 같아요?
 
- 첫 날에 설치를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안 돼서 첫 날은 몇 분 안 됐던 것 같구요. 촬영은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했고 대충 40-50분 정도 촬영해 드린 것 같아요. 
 
△ 이렇게 하실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 작년이 제일 치열했던 시기잖아요. 그런데 계속 거기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요. 강정마을 떠나 서울에 와서도 강정마을 위한 생명평화대행진도 다 같이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처음에는 강정만 보이던 것이 다른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더라고요. 쌍용자동차, 밀양 송전탑도 그렇고. 지금은 서울이나 서울에 살면서 현장들 다니면서 사진들 찍고 작업을 해보려고요. 
 
이 모습은 어떻게 보면 강정 왔다 가신 분들은 너무 친숙한 모습이잖아요. 항상 저기 있으니까 저도 그렇고 수없이,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고 수없이 체증을 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문이라는 장소를 어떻게 좀 해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경찰들 사진을 어떻게 써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다가 갑자기 떠올랐던 아이디어였어요.
 
△ 이런 사진들은 다 어디서 구하게 되었나요?
 
- 여기 쓰인 사진들은 제가 거기 있으면서 촬영한 사진들이에요. 골라서 취합한 거예요.
 
△ 강정마을에 계셨을 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요?
 
- 강정 오신 분들 다 이유가 엄청 많잖아요. ‘구럼비’ 때문에 오신 분들,  종교 때문에 오신 분들, 신념 때문에 분들 많잖아요. 저는 강정에 가게 된 이유가 거기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요. 활동가들, 주민들, 신부님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지? 나도 이런 분들과 같이 좀 지내고 싶다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강정을 가게 된 처음 이유도 그렇고 상주를 하면서도 지금까지도 끈을 놓지 않는 이유가 그거죠. 사람 때문이죠.
 
△ 강정마을을 제일 처음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 재작년 10월 달쯤 희망버스가 거의 막바지였잖아요. 제가 그 전에는 희망버스를 계속 참여를 못 했어요. 희망버스를 갈까 강정을 갈까 고민했었죠. 그 두 소식은 트위터를 알고 있었어요. 고민을 하다가 희망버스는 이미 많은 분들이 갔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강정을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사진을 찍으려고 간 것은 아니고. 그냥 보고 느끼고 싶어서요.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몸으로 체득한 거랑 그냥 듣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그렇게 해서 가게 됐어요.
 
△ 강정마을에서는 안 힘드셨어요? 얼마나 계셨나요?
 
- 3월~8월말, 9월말, 한 5~6개월 정도 될 것 같아요. 그런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고, 현장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거든요. 같이 강정에 왔던 친구들 대부분이 그런 경우였어요. 소속된 활동가들도 물론 있었지만, 저같이 그냥 소속되지 않고 그냥 무작정 왔다가 반해서 눌러 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같이 그렇게 동고동락을 했으니까 진짜 힘들 땐 엄청 힘들고 슬플 땐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그런 거니까, 물론 심적으로나 그걸 맨날 봐야하고 겪어야 하니까 힘들기도 하고 신체적으로도 힘들긴 했지만 오히려 전 더 얻었던 게 많은 게 같아요. 사람을 얻은 게 제일 큰 것 같고 사람을 통해서 많이 알게 됐어요. 이렇게 맑스 코뮤날레 오게 된 것도 다 그 영향이죠.
 
△ 강정마을을 다녀오신 후 제일 많이 변한 것이 있으시다면?
 
- 일단 저는 사진을 찍기는 하는데 현장을 찍지는 않았어요. 뭔가 구상해서 찍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강정에 있다 보니까, 사진을 찍으러간 것은 아니지만, 현장 사진을 계속 찍게 되고 개인적으로는 현장이랑 뭔가 이렇게, 흔히 말하는 예술 사진이랑 취합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 강정마을의 상황을 모르시는 분들께 한 말씀 해 주신 다면요?
 
- 그, ‘대추리’나 ‘용산’ 같은 경우는 뭔가 가장 어려운 정점을 한 번 찍고 나서는 이렇게 내려가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강정은 그 정점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가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계속 오르막이기 때문에, 물론 3월 발파 때나 그럴 때처럼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그러진 않지만 24시간 365일 항상 공사장 앞에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고, 그저께도 천막을 철거하면서 주민들도 크게 다치기도 하고 마을 회장을 포함해서 연행되시기도 하고 지금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지기도 했는데, 전 솔직히 겁이 납니다. 앞으로 더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겁이 납니다. 모르겠어요, 꼭 와서 연좌를 해 달라 연행을 당해 달라 이런 건 절대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런 강정 소식들 알려주시고 어떻게든 그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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