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정약용 선생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선생님이 쓰신 책 중에 『대동수경』(大東水經)이라는 책이 있다. 선생께서 강진 유배 시절에 쓰신 책으로,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와 함께 역사지리 연구의 쌍벽을 이룬다고 평가된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저작 100여 종을 참고하면서 민속학, 서지학, 금석학, 고어, 이두, 신화, 전설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검토하고 그 당시 조선의 지리에 대해 밝혀 놓은 어마어마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 얽힌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다산 선생께서 쓴 연보에 보면 “이청으로 하여금 주(註)를 달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책에 보면, 이청의 견해나 조사연구에 속하는 내용들은 ‘청안’(晴案)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선생운’(先生云)이라고 된 부분도 있다. 이청이 다산 선생님의 제자였으니 여기서 선생은 당연히 다산 선생님을 말할게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자가 스승의 작업지시에 의해 책을 썼다면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사실 확인할 수가 없다. 책 전체의 초안을 잡은 것일 수도 있고, 책을 다 쓰고 나서 스승으로 하여금 화룡점정(畵龍點睛) 하게 할 수 있다. 아니면 스승께 그냥 숟가락 얹게 해 드리는 수준일 수도 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이 책은 스승과 제자의 공동작업인 동시에 제자의 기여는 스승의 지도로 이루어진 것임은 분명하다. 이청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산 선생께서 책에 주를 달라고 하셨을 정도이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을까 싶다. 그 대단함을 알려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다산 선생께서 제자 이청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대양위달 하위소양”(大羊爲羍 何謂小羊). 해석하면 이 정도 될게다. “아야, 한자를 보믄, 큰 대大와 양 양羊이 합쳐져서 羍이 되었는데 말이다, 왜 이 한자의 뜻이 새끼 양 羍이 되었겠노?”

그 당시 14살이었던 제자 이청은 대학자이자 스승인 다산 선생께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따 슨상님, 보통이란 뜻의 범凡자와 새 조鳥가 합쳐서 신령스러운 새인 봉鳳이 되는 일도 있는데,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신다요?” 이 대답을 들은 다산 선생님은 필시 “오잉? 어린 느무 시키가 쎈데?”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시지 않았을까 싶다. 내 상상이지만 말이다.

유배지 강진에서 가장 아꼈던 두 제자 중의 하나였던 이청. 웹을 아무리 뒤져도 그의 그림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중인 출신의 계급적 한계를 느껴 스승의 만류에도 과거에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시문에 약했던 이청은 번번히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헸다. 그래서 그럴까? 출세하지 못한 사람은 역사에서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묘하게 쌉쌀한 기분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스승님의 위대한 책에 주를 달았던 뛰어난 제자 이청.

위대한 스승 밑에 스승을 넘어서는 제자가 자란다고 했다. 이 일화를 읽을 때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간 데 없지만 책은 남아 그의 숨결은 그나마 느낄 수 있다.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이라고 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스승도 사라졌고 스승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에 이 이야기를 읽고 쓰고 있는 기분이란 참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쩌면 옛날 우리 스승들의 이야기를 자꾸 발굴하려고 하는 모양인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스승의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말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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