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아카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할 때면
언제나 5.18광주민중항쟁이 떠오릅니다.

직접 그곳에 있지 않았지만
남한의 현대사를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민중 민족 민주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강원도 원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원주에서도 변두리에서
주변에 대학생 형님들 없이 자랐기 때문에
5월 광주의 진상을 모르고 보냈지요.

몇 년 동안을 전두환 정권과 언론에서 떠벌렸던 것처럼
마치 북조선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소행이었으며
그들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80년에 전남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형님을 두고
교회에서는 떨어진 것이 하느님의 은혜라고 했을 때
정말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더랬습니다.

Ⅱ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 아침 일찍 들어간 강의실 입구에 놓여진
갱지 뭉치를 읽으면서 강의가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울분을 참지 못해 한 없이 울었습니다.

그 날 죽어간 선배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안타까워 울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만들었던
정권과 언론에 분해하면서 울었습니다.

그 때부터 나의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변변한 동아리도 없던 학교에서
친구들과 모여 소위 '언더'를 조직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사회와 삶에 대하여 더 많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모든 신문의 글자들과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의심을 하게 되고,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왕조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눈으로 역사를 보게되었습니다.

산이 좋아서 무작정 다니던 산행과 명상을 접고,
ROTC 정훈교제로 나온 '신 좌경사상' 다섯 가지에 해당되는
참고도서를 사들고 치악산에 들어가서 금식을 하면서
책을 읽고 명상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토론하고 학생회와 집회에 참여하고
이전에 없었던 대자보를 처음으로 만들어 세우고
참으로 바쁘면서도 알찬 생활을 했습니다.

Ⅲ

아마도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것은
바로 5.18광주민중항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읽으며 눈물 흘렸던 갱지뭉치가
삶을 전환하는 실존적인 체험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삶 자체가 그런 성향이었는데
준비된 장작에 불을 붙인 것이 그 갱지뭉치였습니다.

그 후 장학금을 못받게 되었을 때
휴학을 하고 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신학을 선택한 것은 하느님의 섭리이지만,
이전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남미의 해방신학과 안병무 선생님의 민중신학, 다까와 겐조의 영향으로
기독교 안에서 새롭게 만난 하느님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 시골 교회에서 전임전도사보다 더 많은 역할을 했던
경험이 있으면서도 신학과 목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를
이 길로 들어서게 한 것도 5.18광주민중항쟁입니다.

Ⅳ

오늘 기념식에서 노무현의 말을 들으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과거 독재 시절의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신문과 방송마다 노무현의 말로 보도되었습니다.
평택 대추리의 민중항쟁을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독재정권의 방식대로 군인과 경찰을 앞세워
용역깡패 뒤에 숨어서 온갖 폭력을 지시하는 지침을 내리고는
자신들은 대화와 태협을 부르짖고
전두환이 언론통제를 하듯이 언론을 장악하고는
저항하는 민중들에게는 과거의 방식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평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평택사태'라는 용어입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5.18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평택민중항쟁'이나 '평택민족자주투쟁'이라고 해야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광주학살의 원흉들의 범죄행각이 역사의 심판을 받은 것처럼
2006년 평택에서의 공권력의 폭력과 불법적 토지강탈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노무현과 그 일당들은 전두환 노태우보다 더 교활하게
개혁적 이미지를 앞세워 이 땅의 민중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아카시 향기가 어둠을 틈타서 멀리까지 날아오는 밤
그 향기에 취해서 5.18을 회상하며
자주와 평화를 향한 희망을 꿈꾸며
기도합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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