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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삶과 사귐<박재순 칼럼>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 승인 2014.11.04 12:59

   
 
기독교 신앙에 투철했던 함석헌선생은 지극한 사랑으로 살았던 이다. 6·25전쟁 후에 한참 어려웠을 때 함선생은 마산 결핵요양소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로하고 북돋아주는 일에 힘썼다. 함선생의 가족들이 먹고살기 어려울 때도 약간의 원고료나 강사료가 생기면 결핵요양소로 보냈다고 한다. 그는 결핵요양소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환자들의 목숨을 자기 목숨처럼 여기고 살았다. 그는 마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어린양처럼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했다. 그와 함께 살았던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글을 읽거나 쓸 때도 밭을 갈거나 장작을 팰 때도 기도를 하거나 강의를 할 때도 마치 지금 목숨을 불살라 바치는 것처럼 혼신을 다하고 지극정성을 다해서 했다. 이렇게 치열하고 지극정성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살다보니 실수도 하고 허물도 생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며칠 전 YMCA 영성분과 모임서 김재원 배설 기념 사업회 회장으로부터 유영모, 함석헌선생에 관한 증언을 들었다. 1953년 경 유선생을 모시고 장성으로 갔다가 두 분의 만남을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유선생을 보고 함선생이 큰 절을 하며 "선생님, 강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를 올리자 유선생은 함선생의 몸을 끌어안으며 "함군, 평안하셨는가?"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말할 수 없이 다정하고 친밀한 두 분의 심정과 태도를 보았다고 하였다. 세상에서 함선생을 유선생처럼 아끼고 사랑한 이가 없고 유 선생을 함 선생처럼 깊이 알고 받든 이가 없을 것이다.

   
 
2-3살 아래였던 무교회신앙의 동지 송두용 선생을 만날 때도 함 선생은 서로 큰 절을 하고 말씀을 나누었다고 한다. 오늘 그런 사귐과 만남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함선생은 사랑의 화신이었다. 함선생께 허물이 있다고 하지만 그 허물 때문에 더욱 사랑에 자신을 맡기셨다. 1970년대 후반에는 파킨슨병을 앓던 아내의 병수발을 했다. 함 선생이 댁에 계실 때는 아내의 똥오줌을 손수 받아냈다. 아내의 똥오줌을 받아내면서 늙어서 인생 공부 제대로 한다고도 했고 아내에게 지은 죄를 씻는다고도 했다. 70~80대의 늙은 나이에도 시골교회서 불러도 지방대학의 학생들이 불러도 마다 않고 달려갔다. 말년에 그이는 동네 어린아이들의 친구로 살았다. 동네 어린이들이 자신을 친구로 삼고 가까이 해 주는 것을 기쁘고 고맙게 여겼다. 그이는 어린이들의 친구가 됨으로써 인생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했다.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p994@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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