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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라, 그러나 더 낫게 실패하라선택받은 사람의 길(열왕기상11:26-40)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10.15 04:00
▲ Jean-Honore Fragonard, 『Jeroboam Offering Sacrifice in front of the golden calf』 ⓒhttps://library.biblicalarchaeology.org/images/bsbr200203200ljpg

1.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말하라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국방, 외교, 군사적으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가 가히 최고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전에 없던 시련을 맞이합니다. 그것은 바로 남북의 분단입니다.

하나님께서 별안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을 눈여겨보시더니,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을 일러주십니다. 겉옷을 열 두 조각으로 좍좍 찢어버리고는 그중에 열 조각을 취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솔로몬의 왕국을 찢어서 그중 열 지파를 너에게 준다. 여로보암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겠다. 너는 네가 원하는 모든 지역을 다스릴 것이다.”

전성기를 지내고 승승장구하는 나라를 느닷없이 둘로 갈라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했더니,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받고서는 폭압정치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솔로몬 시절 나라가 부강하기는 했으나 백성들은 중노동과 높은 세금에 시달렸습니다. 이제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이 왕이 되니까, 백성들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왕 르호보암에게 와서 탄원한 것입니다. ‘노동을 좀 줄여주고, 세금도 좀 낮춰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연륜 있는 신하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노동을 더 강하게 세금을 더 무겁게 합니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두껍다. 아버지가 가죽 채찍으로 때렸다면, 나는 쇠채찍으로 치겠다.’ 이런 망발을 하면서 말입니다.

상심하고 절망한 백성들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열 지파가 반란을 일으켜 북왕국 이스라엘을 만듭니다. 르호보함의 유다왕국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나라가 갈라진 이유는 르호보암의 폭압정치 때문만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범죄 때문입니다. 11장을 보니까 솔로몬이 말년에 어떻게 했는지가 나와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그렇게 나라를 잘 다스려서, 엄청난 부귀영화까지 다 누려놓고서는, 말년에 솔로몬은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버립니다.

칠백명의 후궁과 삼백명의 첩을 두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함께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다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두 번씩이나 나타나셔서 당부하시는데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맡기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여로보암은 어떻게 나라를 통치했을까요? 솔로몬의 범죄로 인해서 나라가 두 쪽 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 결과로 자신이 북쪽 지파의 왕이 되었으니, ‘나는 절대로 솔로몬과 같은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 나에게 이 왕국을 맡겨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려야겠다’ 하고 결심하지 않았을까요?

성경을 읽어보면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어보면 반복되는 표현이 있어요. 왕들의 업적을 전체적으로 한마디로 평가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라를 잘 다스린 왕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윗과 같이 행했다’ 아사, 히스기야, 요시야 같은 훌륭한 왕들을 칭할 때 그렇게 말합니다. ‘조상 다윗이 한 일을 그대로 본받았다.’

그런가 하면 반대되는 다른 표현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악한 일을 하고,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지 못한 왕을 평가할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 하면 누가 떠오릅니까? 아합왕이죠. 아합왕을 말할 때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왕상16:31).’ ‘아합왕 같은 놈~’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합왕에게조차 ‘여로보암 같은 놈~’ 했다는 겁니다. 그만큼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셔서 북왕국의 왕이 되었던 여로보암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악한 왕의 표본이 되어버렸을까요?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2장 2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마음에, 잘못하면 왕국이 다시 다윗 가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백성들이 원래 다윗 가문의 백성인데, 지금은 당장 서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다윗 가문을 배반하고 내 편이 되었지만, 언제라도 다시 다윗 가문에 충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다윗 가문과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예루살렘 성전 대신에, 베델과 단에 금송아지 상을 만들고는, ‘예루살렘 성전에 갈 것 없이 여기서 예배하면 된다. 이집트에서 우리를 구하신 신이 바로 이 금송아지다!’ 하고 백성들에게 말 한 겁니다. 여기저기에 산당도 짓고 마음대로 제사장도 임명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성전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게 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다윗 가문과의 연결고리가 없어지도록!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손아귀에 들어온 이 권력을 이 권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였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여로보암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3.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일반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무나 선택하셨을까요? 나라를 맡기는 일인데요. 백성을 맡기는 일인데요. 그것도 가슴 아프게 나라를 둘로 찢어서 맡기는 일인데, 고르고 고르셨겠죠.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사람을 고르셨을까요? 여로보암만 그렇습니까? 사울 왕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뽑아 세운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습니다. 그런 사울 왕이 지금 훌륭한 왕으로 기억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사람 보는 저렇게도 없었던 걸까요? 후보자 청문회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가요?

정답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입니다. 하나님이 선택을 잘못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응답을 잘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하는 것은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들이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어사출두 마패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으니까 다 되었다’가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정도로 훌륭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하는 의무와 숙제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으로 준비되지 못한 자에겐 멸망이요 재앙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야’ 하는 자부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아름다운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왜곡된 자만심과 권위의식에 매몰되었을 때 유대주의 선민사상은 오히려 몰락하고 마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욕심에 빠져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가 언제 잉태되었는가를 우리는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께 반역하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름 아름답게 살아왔던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선택되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선택되었다 해도, 선택될만큼 아름답게 살아왔다 해도, 모든 순간 유혹과 시험이 우리를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부심과 인정으로 우쭐할 수 있는 바로 그때, 그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듭니다.

4.

시험에 넘어가고, 유혹에 이끌리는 사람은 별난 사람이 아닙니다.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께 등 돌리고 제멋대로 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사는 삶을 통해 자기 벌을 다 받고, 자기 죄 값을 치르는 중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탄이 유혹하고 말 것도 없어요. 그냥 그렇게 하나님 등지고 살아가도록 둡니다. 사탄이 유혹하는 대상자는 누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입니다.

C. S. 루이스가 지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이 있어요. 선배 사탄이 후배 사탄에게 작업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그 책을 보면 사탄 마귀도 자기들 보기에 훌륭한 사람들, 타락하고 죄짓는 사람, 하나님께 맨날 반역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그냥 두고,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을 공략하려고 덤벼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신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사는 사람들 의인을 칭찬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한 것과 똑같습니다.

여로보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 훌륭하고 아름답게 살아왔던 사람, 이제 앞으로 더 훌륭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오히려 넘어지고 무너지고 범죄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주님께서 말씀해주신 그런 사람들입니까? 그렇다면 감사합시다. 그러나 절대로 ‘그러니 되었다’가 아닙니다. ‘선택받았으니 되었다’가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시험과 유혹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지금 이 땅에, 이 나라에, 이 가정에, 이 곳에 왜 서 있는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원하시는가? 그것을 깨닫고 있을 때, 시험 유혹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으실 때, ‘그냥 네 맘대로 왕 해라’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숙제를 주셨어요. “네가 나의 종 다윗이 한 것과 같이,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고, 내가 가르친 대로 살며, 내 율례와 명령을 지켜서, 내가 보는 앞에서 바르게 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내가 다윗 왕조를 견고하게 세운 것 같이, 네 왕조도 견고하게 세워서, 이스라엘을 너에게 맡기겠다(왕상11:38).”

이 명령을 머릿속에 제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면, ‘나는 그냥 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왕이다. 내 마음대로 내 권력을 내 권세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임무가 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는 자의식이 명확했더라면, 여로보암은 그 삶을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삶의 목적을 제대로 붙드는 것! 하나님의 목적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바로서는 길입니다.

5.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선택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선택받았으니 더욱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잊지 않도록 놓치지 않도록 붙들어야 합니다.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숙제는 뭡니까? 나는 지금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으로 족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걱정하지 맙시다. 여로보암의 길을 걷지 않은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나는 부족하오니 나를 책임져 주십시오’ 하고 주님께 매달리면, 내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마침내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삶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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