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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지적 민중신학의 눈으로 비유이야기 읽기잔인한 주인, 포악한 관리인(Q12:39-46)
김재현 | 승인 2005.08.05 00:00

비유는 현대 신약학의 신데렐라 중 하나이다. 이제 비유에 대한 방대한 문헌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율리허(A. Juelicher)로부터 시작된 현대 비유 연구는 다드(C. H. Dodd)와 예레미아스(J. Jeremias)에 이르러서 가장 큰 결실을 맺었다. 이후 비유 연구는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발전하여 해석학적, 미학적, 사회학적, 설교학적 비유해석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비유 연구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학제간의 상호교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되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서 학자들은 예수의 비유의 직접적인 청중인 1세기 갈릴리의 농민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특히 고트발트(N. K. Gottwald)는 예수의 비유의 줄거리 가운데 경제적인 갈등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들이 많다는 사실(Q12:39-40; Q13:20-30; Q14:16-23; Q19:12-27; 마18:23-35; 마20:1-15; 눅16:1-8)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의 가르침이 그의 일차적인 청중인 팔레스타인 농민들에게 어떻게 들렸을까?”를 질문하게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수용미학(Rezeptionsaesthetik)적 방법론으로 예수의 비유전승에 접근하는 청중중심의 비평 방식이다.

이와 유사한 운동으로 오크만(D. E. Oakman)은 “예수는 농민이었는가?”라고 질문하며 1세기 갈릴리 농부의 시각에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새롭게 독해했다. 이어질 글들은 예수의 비유담론을 예수의 직접적 청중들이었던 민중들(농민들)의 시각에서 비유를 읽고자 시도한 것이다. 해석의 주된 관점은 탈식민주의적 민중신학적 관점이다.

Q에서

Q는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를 대조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적인 것이다. 신약학계에서는 이 세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마태와 누가복음서가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가 공통적으로 인용하거나 참조한 마가복음서의 내용을 제외하고도 또 공통되는 내용들이 나타난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마태와 누가가 동일한 어떤 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복음서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 동일한 어떤 것을 독일어의 ‘자료’를 뜻하는 ‘Quelle’의 첫 글자를 따서 ‘Q’-자료라고 표기했다. 요즘 미국학계에서는 아예 “Q-복음서”(Q-Gospel)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계속되는 연구들에서 Q자료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것이 누가복음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Q자료의 장과 절을 표기할 때는 누가복음서의 장과 절로 표기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Q12:39~46이라고 하면, 그것은 Q자료이고 누가복음 12장 39~46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Q-자료가 한 번에 한 저자에 의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상이한 자료들이 상이한 시대에 서로 다른 편집자들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Q-자료를 분류할 때 Q1, Q2, Q3, Q4로 나눈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

패러다임

기독론

중심주제

공동체

문학형태

로마와의 관계

Q1

민족갱신운동패러다임(AD 30~40년대)

민족갱신운동가 하나님 나라, 하나님아버지         카리스마적 방랑자(갈릴리) 원-잠언에서 연설문 반-로마
Q2

종말론 패러다임(AD 40~50년대)

인자 재림의 지연, 임박한 재림 농촌지역공동체(갈릴리) 비유, 잠언, 연설문 과도기 무정치적 특징
Q3 회당 패러다임(AD 60년대) "오실 그 분", 지혜의 자녀(예언자),  주님, 기적행위자 이 세대의 거절, 심판의 메시지 도시지역공동체(갈릴리) 원-잠언에서 확장된 아포프테그마       친-로마, 반-유대
Q4 신화 패러다임(AD 70년대) 하나님의 아들 성서, 예배, 신앙고백                   도시지역공동체(시리아, 펠라?)           서사 비-정치적 종교운동         



1) 잔인한 주인, 포악한 관리인(Q12:39-46)

이 비유의 출전은 Q-자료이다. 비유는 Q의 맥락에서는 종말론적 비유, 어록 연속물 사이에 위치해 있다(Q12:32-46; Q12:49-53; Q12:54-56). Q12:39-46의 구조도 Q12:39의 도둑 비유와 Q12:40-46의 신실하지 못한 종의 비유라는 서로 다른 비유가 Q12:40의 어록을 매개로 결합되어 있다. 특히 Q12:40은 종말론적인 인물인 “인자”를 개입시켜 종말론적인 의미를 강화시키지만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다.

Q12:39에서 인자는 도둑이지만 Q12:40-46의 비유에서 인자는 주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Q-주석가들은 이 전승들의 배후에서 종말의 지연이라는 Q공동체 내부의 문제 상황을 유추하며 종말론적인 의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편집되었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추측의 결정적인 단서는 불충실한 종의 독백인 “나의 주인이 지연되었다(chronizei)”이다.

주인(kurios)은 세속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주인, 지배자, 소유자”로 번역된다. 뵈젠에 의하면 이 주인은 “외국에 살면서 그의 토지를 임대해 주었거나 한 관리인에게 맡긴 부유한 대토지 소유자”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누가의 관리인 청지기(oikonomos)보다는 마태의 종(dulos)을 더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고려할 때 “노예”로 치부될 수는 없다. 이들 관리인이 민중들에게 눈의 가시였음에는 틀림없다. 관리인들은 외국에 있는 ‘부재지주’들에게 전권을 부여받은 자들이었고 “그가 사회의 상층부에 존재할 수 있었던 기반은 이처럼 외래 자본 때문이었다.” 본문의 종(pais)들은 Q12:42-46에서 포악한 관리인에게 고통 받았던 민중들이었다.

전체적인 줄거리(story-line)는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이 떠난다. 관리인은 종들을 괴롭히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된다. 주인이 돌아와서 이 관리인을 처벌한다. 비유의 끝(ending)은 심판이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의 비유들 중에서 마지막에 폭력을 동반한 심판의 비유가 많다는 것이다.

주인은 돌아와서 폭력적이고 방탕한 관리인을 조각낸다(dichotomesei). 베츠(O. Betz)가 최근에 이 구절을 쿰란 문서에 근거하여 공동체에서 분리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어휘의 뜻은 명확하다. 이 단어는 주인의 잔인한 처벌을 뜻한다.

예수의 이야기에는 대토지를 소유한 부재지주들에 의한 착취와 관리인의 횡포로 고통 받은 민중들의 체험과 기억이 담겨 있다. 포악한 청지기의 고통스럽고 비참한 몰락은 민중들에게는 하나의 기쁜 이야기, 기쁜 ‘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김재현님은 경주나아교회 전도사이며, 계명대 신학과 박사과정 중이다.

김재현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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