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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7>『논어7권』술이편(述而編) 1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3.17 11:52

<명구>
述而編 1 :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술이편 1 : 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전술하되 짓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니, 가만히 나를 우리 노팽에 견주어 본다.

<성찰>
논어7권은 술이편으로서 공자의 삶의 뜻과 용모, 그의 행태와 됨됨이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장이다. 우리가 논어에서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많은 구절들이 여기에 나와 있는데, 그래서 이 술이편을 두 번에 걸쳐서 성찰해 보고자 한다.

술이편의 첫 마디에 나와 있는 구절인 ‘술이부작’, ‘(나는) 전술하되 창작하지 않는다’는 말은 공자의 깊은 ‘신앙심(信)’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나는 우선 이해하고자 한다. 공자는 하늘(天)이 자신에게 뜻 깊은 사명을 주었다고 믿었다. 무력과 전쟁과 남을 속이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미신을 넘어서, 인간적인 언어와 학문, 예술과 예를 통해서 참으로 ‘인간적인 무늬’(人文)가 그려지는 인간 공동체를 세울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일을 말한다.

   
 
공자는 그런 인문의 가능성을 자신이 상상으로 지어내었거나 어떤 인위적인 근거에서, 또는 자신 시대의 괘력난신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근원은 ‘하늘’(天)이며, 그것이 누구에게나 ‘인간성의 씨앗’(仁)으로 놓여져 있고, 자신 시대(춘추전국, B.C.770-221)의 혼동 이전에 시대의 건국자(founding fathers)들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정초되어진 일이라고 보았다(信而好古). 그 중에서 특히 B.C. 11세기 周나라의 주공(周公)을 공경했던 공자는 자신의 사명이 그러한 귀한 덕의 유산을 다시 찾아내고  밝혀내어서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하늘이 나에게 덕을 (전하라고) 주셨는데, 환퇴가 나를 어찌하겠는가?”(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라고 하면서 당시 그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전국을 주유하며 맞닥뜨린 생명의 위협 앞에도-환퇴라고 하는 송나라 사람이 그를 죽이려고 하자-당당히 맞서면서 하늘에 대한 자신의 큰 믿음을 드러냈다. 마치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위해서 과감히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것처럼 공자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문화는 칼과 거짓, 자신과 자기 세대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와 찰나주의를 넘어서 文과 學과 德의 방식으로, 세대를 거쳐서 이어지는 역사와 전승의 일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고,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힘써 구하는 사람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는 고백과 더불어 “덕을 닦지 못하는 것과 학문을 강구하지 못하는 것, 의를 듣고도 능히 옮기지 못하는 것과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근심거리로다.”(子曰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徒 不善不能改 是吾憂也.)라고 토로하였다.

그렇게 깊은 겸허함으로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의 근원을 하늘과 자신의 수고가 닿지 않은 더 먼저의 때와 곳에 두는 공자는 그것을 깨달아 아는 방식으로 바로 학문과 배움을 이야기했다. 그 일에서 인간적인 문화의 정수를 본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묵묵히 새겨두고, 배움에 싫증내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내게 있는가?”라고 묻곤 했다. 제자들이 자신을 “배움을 좋아하고 분발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그것을 즐거워하여 근심도 잊고, 늙어가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으로 알아주기를 원한 그는 그렇게 일생동안 이치의 탐구에 몰두하였고, 인간의 선함을 전해주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그것을 쉬지 않고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으로 자랑하기를 좋아하다. 또한 먼저 이루어진 것과, 그래서 ‘사실’(fact)과 ‘역사’가 된 것도 쉽게 현재 자신의 이익과 편의와 관점과 의견으로 마음대로 변형시키고 왜곡시키며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힘과 의도를 적용해서는 안되고, 또한 궁극적으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영역(factual truth)에 대해서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침범’이 계속되고 반복될 경우 그 공동체는 지속될 수 없다. 공동체의 구성원들 누구나가 공통으로 그들 행위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토대와 기반이 흔들리는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경우 그 일이 반복되면서 모두에게, 각자에게 남겨진 삶의 유일한 추동력은 현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심, 스스로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권리를 혼자서 주장할 수 없는 것도 혼자 독점하려는 불의한 충동만이 남게 된다. 즉 그 공동체는 만인 대 만인의 싸움에 돌입하는 것이다. 오늘 한반도 주변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더 많은 힘과 이익을 얻겠다고 서로 대치하는 21세기 신자유주의 문명, 그 가운데서 오랜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비극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남한과 북한, 더 나아가서 온갖 역사와 사실이 조작되고 훼손되고, 힘 있는 기득권 세력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칼과 총으로 쓰여지고 있는 이념들이 난무하는 남한 정치사회의 모습 등이 그런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오늘 우리 시대보다 덜하지 않았을 극심한 욕망과 힘의 각축 시대에 주관적 왜곡을 내려놓고 자신을 그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더 궁극적인, 또는 더 근원적인 토대와 근거에 대해 탐구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내가 감히 성인과 군자의 경지를 바라겠느가! 다만 노력하고 가르치는데 물리지 않다’고 하면서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므로 그 자신도 “(누구든지) 배우려고 나오면 받아주고”, 선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를 가지고 와서 가르침을 청하면 “나는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吾未嘗無誨焉)고 말씀하신다.

그는 말하기를, “대개는 알지도 못하면서 짓는 사람이 있으나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많이 들어서 그 가운데서 좋은 것을 골라서 따르고, 많이 보고서 그것을 기억해 두는 것은 아는 것의 다음은 간다(多聞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고 했다. 나는 이러한 언술에서 한 선한 신앙심의 전형을 보고, 그가 강조해서 가르쳤다는 네 가지, “글과 행위와 충심과 신의”(子以四敎 文行忠信)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꼭 다시 회복해야 하는 귀중한 덕목임을 본다. 자신은 전할 뿐이지 창작하지 않는다고 한 고백은 결코 그가 창조적이지 않다거나 혁신과는 거리가 먼 보수주의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참된 종교성과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결코 그 신앙과 믿음이 학문과 배움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나는 그것이 유교 종교성의 특징이고, 이것을 한국 기독교가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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