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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10>『논어9권』자한편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4.21 11:32

<명구> 
 子罕編 21 : 子曰 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
(자한편 21 : 자왈 묘이부수자 유의부 수이부실자 유의부)

<해석>
싹이 났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은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성찰>
지난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였다. 시청 광장에서 7만 여명이 모이는 항의 집회가 있었고, 17일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4475명의 인간촛불이 기네스북 세계기록을 세우는 행사가 있었다. 18일에는 다시 시청에서 전국집중 범국민대회가 열렸지만 대회 도중 광화문 앞에 유폐되어있던 유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나섰고, 16일과 유사한 형태로 막혀있던 거대한 경찰차벽을 뚫고서 민중들은 유족들과 합세했다.

우울한 나날들이다. 1년 전 수많은 피지 못한 생명 꽃들을 바다 가운데 수장하고서도 변한 것이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바로 그 1주기의 날에 박근혜 대통령은 훤한 목을 드러내놓으면서 유족들이 모두 외면하고 떠나버린 팽목항의 어느 자리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콜롬비아로 향했다.

글을 쓸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돌아보지 않다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번의 태백편에 이어서 ‘자한편’(子罕言, ‘공자께서 드물게 말씀하신다’ 는 첫 절에서 유래된 이름)인데, 이러한 우리의 형편을 잘 읽어주는 글들이 눈에 뜨인다. 공자님은 오십 세가 되어서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知天命)고 고백하였고, 육십 세가 되어서는 ‘어떤 말을 들어도 잘 용납할 수 있는 부드러운 귀를 가지게 되었다’(耳順)고 하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의 그의 삶은 결코 더 평탄해 지지 않았고, 반복되는 죽음의 고비와 가까운 사람들의 떠나감, 자신의 꿈과 소망이 현세에는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시간 없음을 깊이 느꼈다.

부인과 아들 리(鯉)의 죽음을 겪은 후 참으로 사랑하던 제자 안회(顔回, B.C.521-481)의 요절을 당하고서 공자는 위의 시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고 주석가들은 풀고 있다. ‘싹은 돋았으나 꽃을 피우지 못한 경우도 있고,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세월호의 아이들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고,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아침 기도시간마다, 아니 삶을 새롭게 다짐하면서 새로 세운 계획과 떠오른 생각들, 용기로 다짐한 일들이 얼마다 열매 없이 스러지는가를 우리는 잘 경험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간이 흐른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죽어가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구조를 기다렸을까를 생각해보다가 지난 2월에 돌아가신 엄마가 다시 생각났다. 그 긴 시간을 요양소에서 홀로 누워서 얼마나 간절히 자식들이 찾아와주기를, 집으로 돌아가기를, 아니 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셨을까를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고통을 야기했고, 다르게 행동하지 못한 우리 사회와 국가, 정부와 대통령, 그리고 나 자신이 한 없이 원망스러워졌다.

   
 
공자는 여기서 시냇가에 나와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끝없이 흐르는 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흐르는 물처럼 모든 것이 지나가는 것을 받아들이셨는가? 이 자한편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들어있다; “공자께는 네 가지가 없으셨으니, ‘사사로운 뜻’(意)이 없었고, ‘반드시’(必)라는 것이 없었으며, ‘고집’(固)하는 것이 없으셨으며, ‘나’(我)라는 것이 없었다.”(子絶四 無意 無必 無固 無我.)

공자의 유명한 ‘사무’(四毋)를 말하는데, 이러한 지경으로 자아와 ‘절대’로부터 벗어난 그이지만 한편으로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명에 대해서 믿었고, 그것이 펼쳐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봉황새도 오지 않고, 황하에서 도판도 나오지 않으니 나는 그만인가 보구나!”하고 한탄하시기도 했지만 끝까지 자신을 ‘값을 아는 구매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옥’(美玉)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도에 화답할 명군현신(名君賢臣)을 찾아서 주유했다.

공자는 그러면서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비천한 사람이 있어 나에게 묻는다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의를 다해 가르쳐준다.”고 말할 정도로 가르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또한 그는 가르치기를, “비유컨대 산을 쌓아 올리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서 이루지 못하고 그쳤더라도 그것은 내가 그친 것이다. 비유컨대 땅을 고르는데 비록 한 삼태기의 흙을 가져다 부었더라도 진척되었다면 그것은 내가 진척시킨 것이다.”라고 하면서 결코 시대나 명을 탓하지 말고 각자가 주체적인 행위자로 살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온갖 역경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행위하는 일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공자에 대해서 그의 제자 안회는 “(선생님의 도는) 우러러 보면 볼수록 더욱 높고, 뚫어보면 볼수록 더욱 굳어지고, 앞에 계시는 것 같더니 홀연히 뒤에 서 계신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라고 감탄했다. 안회는 그 스승이 어떻게 글로써 자신들의 앎을 넓혀주었고(博我以文), 예로써 행동을 단속해 주셨는지(約我以禮)를 고백했다.

그런 공자가 ‘구이의 땅’에 가서 살고 싶어하셨다’고 한다.(子欲居九夷) 거기에 대해서 “누추하다는데 어찌하시렵니까?” 하자, 공자는 “군자가 거하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君子居之 何陋之有)고 대답하셨다는데, 이런 대화에 대해서 예전부터 한국 사람들은 여기서 구이의 땅이란 한민족인 ‘동이족’(東夷族)이 사는 곳을 말하고, 그래서 자신들의 나라를 군자국으로 풀어내곤 했다.

동양최고의 지리서인 4200여 년 전의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그 군자국은 ‘근화향’(槿花鄕), ‘무궁화(無窮花)의 나라’를 말하는데, 즉 ‘영원히 지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의 나라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그렇게 군자국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나라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참사가 일어났고, 그 후의 1년의 시간에서 더없이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이러한 우리의 불일치와 모순을 어찌할 것인가? ‘영원히 지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꽃말에서나 위로를 찾아볼 수 있을까? 그래서 또 기다려 보아야 하는가?

공자는 요절한 제자 안연에게 “애석하다. 나는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보았으나 머물러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惜乎. 吾見其進也 吾未見其止也.)고 했는데, 그런 공자가 가서 살고싶어했던 나라에 사는 우리들이니만큼 오늘 우리에게 모든 모순과 비인간성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나아감이 이루었는지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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