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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30주년, 평화를 만들어 온 여성의 역사남북여성교류 30년의 역사 회고하는 기념 토론회 열려
정리연 | 승인 2021.06.03 15:21
▲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가 30주년을 맞아 진보적 사회 및 교계 여성단체들이 연합으로 기념 토론회를 열고 회고와 전망의 자리를 마련했다. ⓒ정리연

1991년 5월 동경에서 1차 토론회를 마치고, 그해 11월 25일 2차 토론회를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여성대표단이 남한 땅을 밟았다. 민간교류의 첫 물꼬를 튼 만남으로 육지로 분단선을 넘어 이루어졌다. 1992년 9월 1일에는 남한 여성대표단 역시 분단선을 넘어 평양에 도착했다. 3차 토론회였다. 4차 토론회는 1993년 4월 동경에서 이루어졌다.

다음은 다시 서울토론회 차례였다.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며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 간 정부에 마찰이 생기고 1994년 4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과 북의 여성들은 더 이상 토론회 이름으로 행사를 기획할 수가 없었다.

첫 남북여성교류로부터 30년이 지난 6월2일 오후 2시부터 ‘청년문화공간 ‘주’ 5층 니콜라홀‘에서 그곳을 오고 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한반도 통일을 위한 여성들의 평화운동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민화협 여성위원회, 여성평화외교포럼,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 전국여성연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기억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 YWCA연합회, 615 남측위 여성본부, 정의기억연대, NCCK 여성위원회 등 진보적 사회 및 교계 여성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였다.

이날 토론회는 김정수 상임대표(평화를만드는여성회)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패널로는 김윤옥(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남측 실행위원, 前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공동대표), 한명숙(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남측 실행위원, 前 국무총리), 이미경(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남측 실행위원, 前 코이카 이사장), 윤영애(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남측 실행위원, 前 교회여성연합회 총무), 손미희(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남측 실행위원,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공동대표) 등이 참여했다. 모두 남북여성교류 30년의 역사에서 발로 뛰었던 증인들이었기에 당시의 경험과 느낌들을 생생하고 솔직하게 나눠 주었다.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가 서울에서 성사된 배경에 대해 김윤옥 전 정신대 공동대표는 증언을 통해 “1991년 서울토론회의 발단은 이우정 교수님이 일본 히로시마 원폭일 평화집회에서 일본 사회당 참의원 시미즈 스미꼬 의원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고 회고했다. “북한 동포들을 46년간 만날 수 없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겠다는 이우정 교수님의 말을 들은 시미즈 스미꼬 의원이 ‘일본은 침략에 대한 사죄도 청산도 하지 않고 남한에도 북한에도 다니고 있다. 일본인이 해야 할 일은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협력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 공동대표는 이어 “4년 후 도쿄에서 북한대표와 남한대표의 만남을 주선하게 되어 제1차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심포지엄이 열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도쿄에서 함께 토론회를 하면서 모두 너무 좋아서 계속 이어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 서울과 평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발언 말미에는 함께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이우정, 이효재 교수과 건강상 참석하지 못한 윤종옥 교수, 일본의 시미즈 스미꼬 의원을 생각하며 고마워했다.

▲ 기념 토론회 참석자들은 아세아의 평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리연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이미경 전 코이카 이사장은 91년부터 4차례에 걸쳐 남북 여성들과 일본 여성들이 서울과 평양, 동경을 오가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더 나아가서는 아세아의 평화를 위해 여성들이 함께 토론하면서 서로 다른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토론회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시대적인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승리로 대통령 직선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요. 국제적으로는 소련의 붕괴와 2차 세계대전이후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새로운 세계 지수를 찾으려는 커다란 움직임이 일어나는 때였습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었고 91년 9월 18일에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였습니다. 다행히 노태우 정권은 이러한 국제적인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이어 남북기본합의서를 발표하였습니다. 남한의 평화통일의 열기가 상당히 오른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 부문의 단체들이 남북 교류를 희망했지만, 북한에서는 만날 의향이 없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을 때 여성단체연합과 교회여성연합회 등 굵직한 단체들도 북한과의 만남을 이루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했고 국제회의 형식으로 남북, 일본의 여성들이 함께 하는 1차 토론회가 성사되었다고 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여성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발언에서 “초기에는 여성이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키우기 때문에 생명지향적이고 평화지향적이어서 여성이 주축이 되어 평화운동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있었다.”며 하지만 “남성에게도 그런 면이 있고 함께 연대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평화의 개념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한 전 총리는 “왜 여성들이 평화의 주축이 되어야 하나요?”라고 질문하고 “내버려 두면 여성들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이 계속되니까요.”라면서 “여성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체적으로 평화운동에 참여하여 민주주의와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고 불평등의 문제도 해소하면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함”을 강조했다.

참여한 모두는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토론회가 역사적으로 굉장한 의미가 있었지만 정식으로 기록된 자료가 없고 그래서 그와 관련된 연구도 나오지 못했다는 것에 굉장히 아쉬워했다. 3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런 중요한 사건과 사조들을 기록으로 남겨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간담회를 준비하면서 당시 토론회에 참여했던 북측 대표단을 포함하여 북측 여성들을 초청하고자 여러 방법을 모색하였지만,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해 부득이하게 남쪽 인사들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다. 올해 11월 예정인 “(가칭) 2021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국제세미나에는 남북의 여성이 함께 참여하여 더 많은 교류가 오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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