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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人事待天命하나님의 섭리(사사기 2:16-1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10.03 15:53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최근에 사사기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될 일이 있어서 사사기를 쭉 읽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이야 자주 읽었지만, 신학적으로 사사기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사사기를 읽으며 우리의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성경은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편집한 책입니다. 때로는 이런 편집 과정이 끝난 책을 후대 사람들이 첨삭을 덧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는 다양한 첨삭의 흔적과 편집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런 흔적을 쫓아서 본래의 책이 무엇이었는지, 본래의 자료는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찾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은 사사기가 원래 영웅담이 모여진 책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를 예로 들자면, 열왕기는 왕들의 연대를 다룬 「본기(本紀)」에 해당될 것이고, 본래의 사사기는 제후들의 이야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 「세가(世家)」나 「열전(列傳)」에 속할 것입니다.

사사기 3장부터 16장에는 12명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원래의 책에 몇 명의 사사가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드보라의 노래로 불리는 사사기 5장을 보면, 6절에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 또는 야엘의 날’이라는 말이 나타납니다. 이때 나타난 야엘은 시스라를 죽인 야엘이 아닙니다. 어쩌면 여기에 등장하는 야엘은 지금의 사사기에 포함되지 않은, 우리가 모르는 사사 중 한 명일 수도 있습니다.

본래 영웅담이었던 사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외부의 침략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들을 구원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영웅의 이야기를 들으며 외부적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해줄 영웅을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시대에 영웅들의 이야기에 한 가지 이야기가 덧붙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 영웅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스라엘이 다시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사사기에 덧붙여집니다.

어떻게 보면 영웅담인 사사기에 대한 신학적 작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에 관한 최종 작업은 아마도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된 주전 598년이나 남왕국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게 된 주전 586년 이후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지금 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오게 되었는가? 우리의 포로 생활은 언제 끝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답변이 사사기에 첨가됩니다.

그래서 현재의 사사기는 죄와 구원의 순환 도식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 순환 도식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되는데 그 징벌의 형태는 이웃 국가의 침략이었습니다. 이웃 국가로부터 침략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보내시어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사사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평안을 누리지만, 사사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다시금 죄의 길에 빠지게 됩니다.

죄와 구원의 순환 도식은 사사기 3장에서 16장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이 들어있는 사사기 2장 11-23절은 그 구조에 대한 서문(序文)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서문 역시도 시간이 흐르며 약간의 편집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서문 전체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 두절만 보더라도 16절에 나타난 사사의 역할은 군사적 지도자인데, 17절에 나타난 사사의 역할은 통치자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영웅담이었던 사사기에 하나님의 섭리라는 신학 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바벨론 포로기보다 빠른 시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많은 위기를 겪어왔고, 특히 북왕국은 남왕국보다 먼저 멸망하였기 때문에 북왕국에서 먼저 이런 작업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 사사기의 구조 ⓒ이성훈

오늘 저희가 생각하고자 하는 점은 성경은 하늘에서부터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사사기의 편집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자료가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신학적 작업을 말씀드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사사기를 처음에 엮었던 이들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모았고, 이를 적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이면에 있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는 자신들의 죄가 있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으며, 결국 용서하시며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섭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영웅담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수정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가 불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신학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신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때때로 더 큰 은혜를 느끼기도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때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운7기3’이라며 삶에는 운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한자성어 중에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의 일을 마쳤으면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도 있습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떤 순간 또는 영역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순간에 우리는 이런 점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저 내가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힘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있음을 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 깨닫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운에 맡긴다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어쩌면 처음 이스라엘의 영웅담을 수집하고 편집했던 이들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우연히 나타난 영웅적 인물들을 추앙하고 그런 인물이 다시 나타나게 되는 운수를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깨달았습니다. 단지 운이 좋아서 영웅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하나님께서 활동하고 계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우리를 야단치시고, 우리가 힘들어하고 어려워 울부짖을 때, 그 모습을 안쓰러워하시며 결국 먼저 손 내밀어 도우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18절은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슬피 부르짖음을 보셨기에 뜻을 돌이키시고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악한 길을 걸어감에도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을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요즘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안 되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노력하지도 않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식에 열심히 노력했으니 갑자기 주가가 10배로 뛰게 해달라는 그런 요구가 아니라면, 우리의 노력 뒤에서 하나님께서 활동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섭리에 따라 우리에게 이루어주십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힘든 일들은 당연히 벌어집니다. 안그래도 어려운 일이 많은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잘못된 길을 걸으며 불필요한 어려움, 하나님의 심판까지 더하시진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움 끝에 울부짖으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시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시기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챙겨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노력 뒤에서 섭리하시며 그 노력을 헛되이 사라지지 않게 이끄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마시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삶을 도우십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보시고, 우리의 노력을 아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시고 그 안에서 은혜와 평안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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