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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출교도 시키지 아니하였나이까”(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24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12.15 12:02
▲ 지난 8일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로부터 ‘출교’형을 선고 받은 이동환 목사(사진 앞줄 제일 오른쪽) ⓒ홍인식

1.

1주일 전 이동환 목사님에 대한 출교 판결 소식을 들은 이후에 머리에 계속 이 성서구절이 맴돌았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언젠가부터 이 구절에 대해서 하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 구절에서 “주여 주여”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날벼락 맞은 느낌이겠다구요. 자기들은 ‘주의 이름’을 진심으로 믿고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을 행했을 터이고, 그런 결과가 나는 걸 보며 ‘주의 이름’에 대한 신심도 더욱 깊어졌을 터인데, 그 모든 게 다 ‘불법을 행하는 일’이어서 나가 버리란 소리를 듣는다니 말입니다.

칼럼을 쓰기 전에 이 구절에 대한 검색을 좀 해 보니까 위에 제가 적은 것과 비슷한 생각들이 나오긴 하더군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꼭 그래도 저 사람들은 진심이 아니었을 거라거나, 자기의 이해관계와 관심을 신앙에 우선했을 거라거나, 이런 식의 토를 붙입니다. 그런 토를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 어쨌거나 저런 사람들이 원래부터 뭔가 신앙적인 하자가 있었을 거다라는 생각은 끝내 못 버리겠다는 건데 그러면 저런 토를 붙여 봤자 달라지는 게 뭐지?

어쨌든 그래서 저 구절을 제목과 같이 약간 변주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이동환 목사도 출교시키지 아니하였나이까”라는 말이 들어가도 되겠다구요. 그것도 자기들이 믿기에는 ‘주의 이름’을 ‘진심으로’ 믿고 한 일일 터이니 말입니다.

2.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 하나 생각나는 성서 구절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이 칼럼의 독자분들이라면 대체로 아실 만한 내용입니다만 한 번 더 요약해 보면, 밭에 씨를 뿌려 놨는데 밤에 원수가 가라지 씨를 몰래 뿌려놓고 갔다는 거죠. 그래서 막상 싹이 나고 그 싹이 자라고 보니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있길래 저걸 어쩌나 저 가라지 뽑아 버릴까요 했더니 아니 그러다가 알곡까지 다칠 수도 있으니 추수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었다가 추수 때 알곡만 따로 모으고 가라지는 불태워 버리자 이랬다는 내용인데요.

아마도 이 비유 자체는 초기 예수파들의 애환이 담겨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종족적/종교적 소수파로 겪는 어려움만도 팍팍한데 종파 내부에서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하니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 때 이런 구절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마지막 때까지 기다려야지 하고 마음먹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종족적/종교적 소수파의 지위를 벗어난 지금 한국에서는, 이 비유를 보며 아마도 이동환 목사님 같은 분들을 ‘가라지’로 보는 사람들이 꽤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종교 재판을 건 인간들이 있겠고 출교 판결을 내린 인간들도 있겠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비유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비유가 과연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나는 알곡이고 저 사람은 가라지다’라는 확신을 줄 만한 비유인지 말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현실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어떤 자리에서도 피할 수 없다는 게 이 비유가 하는 이야기인 셈인데, 그러면 누구든지 알곡일 수 있고 누구든지 가라지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여기서도 앞에서 “주여 주여~”로 시작한 구절에 대해서 했던 거랑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이동환 목사님을 ‘가라지’로 보는 사람들이 어쩌면 ‘가라지’일 수도 있겠다는.

3.

성소수자 신자들과 앨라이 신자들에게 올해는 어떤 분이 말씀하신 대로 “임보라 목사님의 소천으로 시작해서 이동환 목사님의 출교로 끝난” 참으로 마음아픈 해였습니다. 다른 데도 아닌 교회라는 공간에서 이렇게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넘친다는 참 실망스러운 모습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도 하구요.

그런데, 방금 이야기한 감정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명색이 교회라는 곳에서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넘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구요. 애당초 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법이라니까요.

그렇다면 ‘추수 때까지’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아닌 사랑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그 일 말입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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