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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마녀이지만 ‘낭만’적이고파!불량 엄마의 자기 고백
정리연 | 승인 2022.06.20 16:07

글쎄…. 언제부터 그곳을 애용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최근은 코로나로 대부분의 대면이 차단되어서 1년 넘도록 집 안에서 모든 활동을 해야 했을 때이다. 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재택근무를 했고 아이들은 등교하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했다.

“엄마~~!!!”
“줌에서 갑자기 튕겨 나왔어!”
“학습 동영상 봐야 하는데 잘 안 돼!
“이거 어떻게 풀어?”
“내 볼펜 어디 있어?”
“수학책 어딨어?”
“간식은 뭐야? 점심은?”

“한두 번도 아닌데 좀 알아서 해!”
“네 물건을 왜 나한테 묻는 거니?”
“몰라 몰라! 그냥 있는 거 먹자!”

아이들이 자꾸 불러대니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집중이 잘 안 되니 일 진행이 더뎠다. 더딘 작업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왔다. 돌아가면서 방으로 와서 배고프다고 말하는 녀석들. 피곤과 짜증이 진자 운동하듯이 왔다 갔다…. 아침을 챙겨준 후, 일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가방을 챙겨서 집 앞 도서관이나 커피숍으로 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 점심을 챙겨줘야 했다.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해서 답답하고 머리도 아팠다. 두세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우아하고픈 마녀

삼 곱하기 십은 삼십, 삼십 곱하기 칠은 이백십, 이백십 곱하기 사는 팔백사십, 팔백사십 곱하기….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웬 곱셈? 세 명의 아이가 하루에 열 번(최소입니다)을 부른다고 치자.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계산해보면 저렇게 답이 나온다. 어디까지나 계산하기 쉽게 한 명당 열 번이라고 했다. 실은 그보다 횟수가 많겠지만.

“엄마!” 
“엄마?”
“엄~마~아~~”
“엄마 엄마~!!!”
(방문을 열면서) “엄마”

필요와 상황에 따라 목소리가 왕왕거렸다. 거기에다 애들끼리 다투기라도 하면, 사춘기 딸내미랑 부딪히기라도 하면 심장에서 피가 막 부글부글 끓으면서 폭발할 것 같았다. 그때의 나를 비춘 거울을 봤다면, 분명 사악한 마녀의 모습이었을 거다.

이혼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현실이 닥쳤다. 자녀 양육이었다. “아빠 없이 자라서 애들이 저 모양”이라거나 “이혼 가정 애들은 문제가 많아”라는 소리를 내가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사회에 깔려있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들의 작은 행동이나 차림새 하나하나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다양한 말들이 따라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혼으로 인한 한부모 가정이 많아졌고, 사회의 의식 수준도 높아져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야, 부모가 다 있는 집이어도 문제 있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말, 솔직히 안심되지 않는다.

여전히 의식의 밑바닥에 잔류하고 있다가 ‘우리 아이’ 같은 아이가 말썽을 일으키면 불쑥 튀어나올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큰아이는 부모의 이혼에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의 모든 행동과 말에 예민했다. 나도 10대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던 터라, 아이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혼 때문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별거 아닌데, 왜 그냥 넘기지 못하는 걸까?’
‘상담을 받아봐야 할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자녀, 특히 사춘기 자녀와 ‘대화법’이나 ‘이해’에 관련된 책들을 읽었었다. 오은영 박사님처럼, 조곤조곤하게, 나긋나긋하게,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 대화로 해야지 라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감정과 자존심에 상처받으면 나도 똑같이 아이들의 마음을 할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온갖 생각들이 마음을 무겁게 했고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싶어서 자기학대, 자기혐오를 하면서 ‘이혼’이라는 죄책감에 빠졌다. 때로는 엄마의 상황을 이해 못 하는, 철부지 없는 아이들을 원망하기도 했다(‘다른 집 애들은 그렇지 않던데’라는 비교와 함께). 참으로 쪼잔하고 유치찬란한 모습이었다.

“낳기만 하면 하나님이 다 키워주셔!”라든지, “애들은 자기들이 다 알아서 커~” 교회 안에서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진짜? 그러면 이럴 때 하나님이 ‘쫘~안!!’하고 나타나서 “넌 일을 해. 내가 애들 밥해줄게”라든지 “자, 이럴 땐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떠니?” 해주셔야지. 흑흑.

이런 상황이 날마다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매일 집에서 부대끼면서 지내다 보니, 서로 까칠해지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내가 낳은 아이 맞아?’와 ‘내 엄마 맞아?’라는 질문을 (속으로) 주고받으며. 그럴 때마다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사라지고 싶다!!’

익명의 존재이고 싶을 때

▲ <에드워드 호퍼-293호 열차 C칸> (1936)

“미스 타운센트, 저는 몇 시간 동안 혼자 있고 싶어서 이 호텔을 찾아왔어요. 내가 있는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서요”(305쪽).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 그녀는 존스 부인이고 혼자였다. 그녀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 한없이 공상에 잠기며, 아니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고, 방황하고, 깜깜하게 어두워져서 공허함이 피처럼 혈관을 따라 즐겁게 도는 것을 느끼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318쪽).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중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인처럼, 도리스 레싱의 소설 속 수전처럼 완전히, 혼자일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상황은 안되니, 내 몸을 돌돌 말아서 딱 들어맞는 컴컴한 공간에 집어넣어 숨어버리고 싶었다. 방도 안전하지 않았다. 누군가 불쑥 문을 열고 나를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럼, 어디? 하는 순간, 머릿속에 ‘띵!’하고 종이 울렸다. 바로 거기야!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곳.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 다급하게 나를 찾다가도 여기에 있다고 하면 적당하게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곳. 

화. 장. 실.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여기저기서 막 들리는 듯하다)

욕실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처음엔 나도 좀 웃겼다. 낭만적이고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변기 위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씻는 곳 혹은 볼일만 보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라. 이곳에서는 고요하게 홀로 있을 수 있었다. 문을 사이에 두고 바깥 저기와 여기, 안쪽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들의 시끌시끌한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감히 이 안으로 들어올 시도를 하지 못했다. 화장실 문을 벌컥! 여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것쯤은 유치원에서 배웠으니까. 아이들에게 버럭 화냈던 걸 반성하거나, 더 잘해줘야겠다는 의미심장한 다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만히 앉아서 멍-때렸다. …… 그렇게 ‘심(心)멍’과 ‘홀로 있음’을 하고 나면 말라비틀어진 내면이 좀 더 말랑말랑해지고 촉촉해졌다.

코로나 때문에 ‘어딘가’에서, ‘홀로’이기 마땅치 않을 때, 종종 화장실을 나만의 피정 장소로 사용했다(밖에 나가서도 그러는 거 아니고 집에서만). 솔직히 고백하면 ‘피정’이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종교적으로 좀 있어 보이게 포장한 거지, 그냥 숨어 있었던 거다. 요동치는 나와 저들의 마음이 잠잠해질 때까지. 돌이켜 생각해 보니, 네 자매가 한 방에서 부대끼면서 살던 어린 시절에도 화장실을 애용했었다. 거기는 엄마의 심부름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고, 언니들과 동생에게서 벗어나 혼자 있을 수 있는 독립된 장소였다. 그곳에서 책이나 만화책을 읽기도 했다. 짝사랑에 마음 아파하면서 남몰래 울던 곳도 거기였다. 대학을 가면서는 혼자 살았으니, 한동안 ‘나만의 화장실’을 떠나 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로 ‘그’ 화장실을 다시 만난 셈이다. 크크.

철저하게 혼자여도 처절하지 않다

예수님도 많은 사람 사이에 있다가 한 번씩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셨다. 홀로, 고요히, 아버지 하나님과 교류하는 시간이었을 테다. 때로는 그냥, 심멍하셨을 것 같다. 난 그때의 고독하고 쓸쓸한 예수님 모습을 상상하는 게 좋다. 인간적이고 낭만적이어서. 사람이 지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하는 것이지, 언제나 힘이 펄펄 넘치고 모든 게 잘 풀린다면 너무 비인간적일 것 같다. 그래서 때론 지치고 낙심하고, 사람들에게 치이기도 하는 예수님이, 빛나는 사역과 무리의 함성을 뒤로 하고 자발적으로 홀로있음을 하던 예수님이 좋다. 그런 예수님 앞에서라면 나도 별 말하지 않아도, 잘 보이려 하지 않아도,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도 될 것 같으니까.

돌이켜보면 폭풍이 지나간 것 같다. 큰아이의 사춘기 절정이 지나고 지금은 서로의 감정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그동안 나도 멘토인 목사님, 친구와 계속 이야기하면서 죄책감에서 많이 벗어났고,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는 것에서 아이들과 나누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폭풍의 흔적은 아직 남아있지만, 언젠가는 치유되거나 혹은 전부 다 아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살면서 겪는 모든 게 그런 거 아니겠나. 

“이번 여름방학 때 내가 올라가서 애들 봐줄게. 거리두기도 많이 풀렸는데 넌 어디 좀 갔다 오지 그러니?” 이석증 때문에 버스도 기차도 힘들어하는 엄마가 불쑥 말씀하셨다. 당연히, 난 거절하지 않았다. 흐흐. 그날이 벌써 온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구나. 이번 여름엔 엄마가 하나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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