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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존여비’ 세상에서 ‘남자’와 ‘여자’ 흉내까지 내야 한다고요?(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13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01.13 15:55
▲ 신윤복, 「무녀신무」

1.

제목을 보시고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 혹시 있으신가요? ‘남존여비(男尊女卑)’라면 옛날 이야기인데 지금의 세상이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근대 사회가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물론 지금 대놓고 ‘남존여비’가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남자 사람 여자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남자 사람이라서 여자 사람보다 낫다거나, 혹은 남자 사람 집단이 여자 사람 집단보다 낫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할 사람도 없을 테구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직장에서 일하고 노동을 하는데, “남자 사람이 주로 할 만한 일”, “여자 사람이 주로 할 만한 일” 이런 딱지가 은연 중에 붙어 있고 “남자 사람이 주로 할 만한 일”(앞으로 “남자 일”이라고 줄여쓰겠습니다)이 더 높은 가치로 취급을 받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지난 달부터 주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에 나오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트랜스남성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전화가 왔는데 ‘진상 손님이다’ 이러면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받는 답니다. 남자 목소리로 들리면 손님이 클레임을 못 걸거나 걸더라도 수위가 낮고, 여자 목소리로 들리면 클레임을 대놓고 걸기 때문이랍니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전자 제품 매장에서는 대형 제품에는 남성 직원이, 소형 제품에는 여성 직원이 주로 배치된답니다. 대형 제품 매장에 여성 직원이 배치되면 항의에 더 많이 시달린다구요. 그러니 대형 제품을 많이 파는 남성 직원의 실적이 여성 직원의 실적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2.

한 가지 풍경. 레즈비언으로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이 짧은 머리에 민낯이고 통이 큰 옷을 주로 입으니 “남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답니다. 그 사람의 느낌으로는 그걸 묻는 사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고 싶어서라기보다 어느 쪽으로든 정리를 해 두고 싶어서 묻는 것 같답니다.

그런데 거기에 덧붙이기를 남자들의 경우에는 물어보는 이유가 있긴 한데, 그 이유라는 게 자신이 질문하는 대상의 성별에 따라서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남자라면 남자 집단 내에서 서열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다른 풍경. 20-30대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호칭과 말투에 대한 엄청나게 정교하고 세분화된 판단 기준과 각종 노하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걸 소개한 어느 여성학자는 이 현상을 ‘누가 자신을 하대하는지’에 민감하다라고 해석합니다. 방심하면 하대를 당한다는 것이죠.

두 풍경이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입니다. ‘위계’에 민감하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남자들 사이엔 윗 서열과 아랫 서열 이런 식으로 따질 수라도 있는데, 여자들은 아랫 서열에 속할 수 있다를 기본적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3.

그런데 “남자 일”을 더 높은 가치로 취급하는 이면에는 기업이 “써 먹기 좋은 몸”을 우대하는 구조가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노동자를 “언제든지 기업이 맘대로 써 먹기 좋은 자원”으로 상정해 놓고, “임신, 출산” 등등해서 “언제든지”가 안 되는 여성이나 “맘대로 써 먹기 힘든 몸”을 가진 장애인 등은 아랫 자리로 밀어내는 거지요.

그래서 더 잘 써 먹힘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특히 남성들 사이에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윗 자리 아랫 자리 위계 싸움이 벌어지구요. “언제든지 맘대로 써 먹기 좋은 자원”이 될 수 있다면 여성도 장애인도 그 위계 싸움에 끼어들 수 있다 뭐 이런 식의 여지는 남기고 말이지요.

물론 (남성) 노동자가 “언제든지 써 먹기 좋은 자원”이 되는 건 그 당사자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고 누군가 뒷치닥거리를 해 줘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뒷치닥거리가 주로 여성에게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으로 부과된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고들 있으시겠지요. 그리고 그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남자 일”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어서 낮은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고 말입니다. 이렇게 “남존여비”가 완성됩니다.

4.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책에는 승진에 목매는 게이 교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냥 독신 남성 취급받는 게이 교사들이 승진에도 관심없다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뭔가 하자가 있는 거 아니냔 취급을 받게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승진에 목매고 그러기 위해서 남자들 간의 위계 관계에도 참여하고, “게이는 계집이라 여기는 선배들에게 술도 따르고” 하는 등의 일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가부장제의) “남자”를 흉내내는 셈이라고 하겠지요.

이 책의 다른 부분에는 성소수자들의 노동과 여성의 노동이 갖는 ‘쇼잉’이라는 공통점이 소개됩니다. 여성 노동자와 성소수자 노동자는, 일을 ‘열심히’ 하고 많이 ‘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뿐만 아니라 친밀과 배려까지도 계속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소수자의 경우) 그래야 혹시라도 나중에 회사를 물러날 때 “쟤가 ‘그거’라서…”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5.

지난 달에도 말씀드렸지만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 속에서 성소수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노동의 삶을 읽어내는 책입니다. 다음 달에도 한 번 더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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