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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장공의 부활체와 사후생 이해 (2)스티븐 호킹의 사후세계부정 발언에 기하여
김경재 고문 | 승인 2011.05.31 19:25

지난 15일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후세계부정'발언과 관련하여 장공 김재준 선생이 이해한 사후생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취지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덧붙여 이 글은 본지 고문위원인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제 24회 장공사상연구 목요강좌에서 발표했던 원고임을 밝힙니다.

장공의 성서적 실재론 ②

오늘날 고도로 전문화되고 다양화된 성서연구방법론 입장에서 보면, ‘성서적 실재론’은 보수신앙의 성경관처럼 보일런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이해를 신학적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궁극적 결단과 가치관의 바탕으로 삼는 신앙인에게는 이상에서 말한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 ‘성서적 실재론’을 지나간 시대의 소박한 성서적 실재관이라고 보지 않는다. 장공 김재준 목사는 20세기 사람이요 21세기 최근의 성서연구동향에는 학문적으로 접하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성서관은 1930년대부터 1980년대 생애 말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앞서 언급한 ‘성서적 실재론’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공의 입장이 ‘성서적 실재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군데 글을 인용하여 보겠다.

일본과 미국에서 각각 최첨단의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주의적 보수신학을 고루 경험하고 귀국한 장공은 1930년대에 세 가지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연구」논문 안에서 장공은 튀빙겐대학교의 키텔교수를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교는 역사적 종교로서 특수한 인격과 장소와 시간에 관계된 구체적 사건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우선 역사적 의미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성서가 증언하는 ‘사실의 진실성’은 철학적 해석이나 과학적 설명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장공은 복음서의 ‘빈 무덤 설화’와 ‘부활현현 기사의 다양성’을 근거로 하여 그동안 제기된 예수의 잠정적 ‘가사설’(假死說), 심리적 ‘환상설’, 희망적 부활 기대심리의 ‘와전설’ 등을 하나 하나 논박하고서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을 주장한다.

물론 자연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때 부활은 불가해한 것이며 경험을 초월한 것이니 자연법칙을 중시하는 철학자 과학자로서는 이에 용훼(容喙, 말 참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하신 일이다.…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으로 보아 움직일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일진대, 이 사실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해석이 이 사실자체의 진정성을 좌우할 수 없는 이상 우리는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신의 위대하신 기적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서적 실재론은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앙에 뿌리박고 있으며, 하나님의 실재를 믿는 믿음에 기초한다고 말했다. 장공은「욥기에 나타난 영혼 불멸관」이라는 30대 중반시기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욥기의 중요한 고백구절인 욥기 19장 25~26절의 성서주석 입장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을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5~26). 장공의 성서실재론은 그 부분을 이렇게 이해한다.

욥은 (i)하나님이 반드시 그의 결백한 것을 변호해 주시리라. (ii)그가(욥) 틀림없이 그의 눈으로 하나님을 뵈올 것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신앙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느때 어떻게 이것이 성취될 것인가 하는 것은 그에게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다.…여기서 그가 참으로 나타내려고 한 것은, 그야 살던지 죽던지 “땅 위에서의 하나님의 의”와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며 또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성서적 실재론’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성서를 ‘역사적-문헌비평적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신앙적 지성’과 성서가 증언하는 ‘계시적 말씀의 권위’를 동시에 살려내는 문제였다. 그것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성서관이 ‘성서적 실재론자’의 성서관이다. 그 점에 대하여 장공은「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1950년 3월) 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성서무오설을 배격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를 정당한 기초 위에 수립하려는 까닭이다. 성서 자체의 사실이 문자적 무오를 입증해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구차스럽게 그 학설을 고집한다는 것은 ‘경건한 기만’ 이다.…우선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자. 성경에 원본은 없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지금의 사본이 원본과 꼭 같다보면 사실 성경에는 문자적 오류와 과학적 역사적 부문의 오류가 있는 것이다.…성경의 목적이 무엇인가? 성경의 목적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요 영생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이렇게 성경을 설자리에 서게 하고, 그 목적론적 면에서 성서무오설을 수립할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을 향해서나 대담하게 전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서적 실재론’의 특징으로서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성과 존재양식의 한정성에 대한 장공의 입장을 살펴보자. ‘사후생’에 대한 신념을 갖는 것은 성서적 사유세계에서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본래 흙으로 지음 받아 철저히 시공한계 안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로서 인간의 피조성과 유한성을 고백하는 성서의 기본적 관점은 ‘죽음’을 창조질서로서 이해하고, 타락이라는 원죄 댓가로서의 징벌과는 관계없는 유한한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자연스런 제약성이라고 보는 견해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1:23) 등 예로 열거한 여러 성구가 말하는 사후생을 장공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현세와 내세의 불가분리성과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안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신비의 세계를 믿었다.

우리가 내세의 자세한 그림은 그릴 수 없어도, 아버지의 세계는 우리의 상상에 넘치는 크기와 넓이를 갖고 있으며, 영의 세계는 우리가 아직 유치원생 정도로도 탐색하지 못한 신비의 세계라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우리를 용납하신다는 것. 그러므로 죽어도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리스도 계신 곳에 있으리라는 것쯤은 믿고 말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장공의 신앙은 ‘성서적 실재론’을 지닌 진보적 역사참여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다른 인용문장을 더 이상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본론에서 자연스럽게 관련한 언급이 많게 될 것이다. 이제 장공의 신앙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인간생명의 본래성, 죄성, 그리고 영화될 몸의 가능성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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