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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생명철학에 대하여<박재순 칼럼>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 승인 2015.07.15 10:52

씨알사상은 동양의 전통철학과도 대화를 나누고 서양의 고대철학과 탈근대철학과도 대화를 나누고 배워야 한다. 서양철학은 개념과 이론이 정교하고 치밀하다. 그러나 씨알사상은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동서고금의 정신문화가 합류하는 가운데 역사적 실천을 통해서 닦여지고 형성된 철학사상이다. 역사적 뿌리가 있고 실천적으로 검증된 사상이다.

니체는 서구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와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성(로고스) 중심의 서구 주류철학과 기독교의 낡고 무력한 도덕주의를 깨트리고 원초적 생명의지에 충실한 철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니체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니체가 서구정신사의 낡은 과거를 깨는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이성중심의 주류철학도 기독교의 정신도덕도 진지하게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건전한 이성철학, 생각하는 주체의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 함석헌과 니체.
니체가 원초적 생명의지에 충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씨알사상에서처럼 없음과 빔의 ‘얼 생명’, 하늘의 자유, 탐진치를 멸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다. 니체의 초인사상이 수성(獸性)을 극복하고 솟아난 얼나와 같지 않은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니체의 초인은 못난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 거칠고 오만한 초인으로 여겨진다. 니체의 초인이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주(主)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극기복례(克己復禮)와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니체 자신이 얼마나 거칠고 오만했나? 유영모와 함석헌은 높은 깨달음의 자유에 이르렀으나 얼마나 겸허했나

물질과 몸에서 생명의 원초적 의지를 거쳐 맑은 지성과 높은 영성의 대통합에 이르렀으면서 씨알의 낮고 겸허한 자리를 지켰다. 햇빛에 그은 농부의 얼굴이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고 다석 유영모가 말한 것은 씨알사상이 말하는 초인, 자유인이 흙 묻은 초인, 낮고 겸허한 농부의 모습을 한 초인임을 말해준다.

대중에 대한 니체의 멸시도 씨알사상을 형성한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의 자세와는 너무 다르다. 대중의 못나고 모자란 모습을 이들보다 더 절실히 경험한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이들은 못나고 모자란 대중의 속에 숨겨진 위대하고 아름다운 힘(씨알)을 보았다. 그래서 민중을 어른으로 어버이로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받들고 섬겼다.

니체가 민주정신과 철학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대중에 대한 그의 오만함과 거침이 많은 사람을 나치의 파씨즘으로 몰아간 것도 사실이다. 물론 니체가 파씨즘을 선동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니체의 글 속에 담긴 생명의 힘과 자유는 보물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것마저 버리는 것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리는 것이다.

서구철학사는 플라톤의 이성주의와 니체의 생명주의로 쪼개졌다. 그리스의 자연과학철학 전통을 계승한 플라톤은 수학과 기하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형성했다. 수학과 기하학의 이성적 원형이 이데아이고 현실의 구체적 존재자들은 이데아를 모방하고 흉내 낸 모사품 시물라크르(simulacre)으로 보았다. 스스로 하는 주체와 전체의 일치를 생명의 본성과 목적으로 보는 생명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이런 사고는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물론 수학 중심적인 이런 사고는 과학적 사고를 발전시켰고 우주의 물질적 존재와 생성을 설명하는 데는 수학의 수식과 법칙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스스로 하는 주체를 가진 생명과 정신을 수식과 법칙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는 없다. 플라톤과 니체는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니체가 서구철학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오늘의 한국철학과 세계철학에서도 그렇게 중요한지는 모르겠다.
 
이(理)와 기(氣)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와 기는 중세 유교의 세계관에 따라서 인간의 심성과 우주의 존재와 원리를 설명한 개념이고 틀이다. 기는 이를 전제하고 이와 맞선 개념이다. 기만 따로 떼어놓고 기철학을 만들려는 시도가 성공할 것 같지 않다. 중세 유교의 세계관에서 벗어난 현대인들이 이와 기의 사고를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또한 오늘날 생명과 정신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다원적일 뿐 아니라 새롭게 변화 발전하고 진화하고 고양하면서 본성과 실체를 새롭게 바꿔 가고 있다. 동서고금의 정신과 문화가 합류하며 급변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하나의 개념과 이론으로 새 철학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구철학과 동양의 고대철학에서 배우면서도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생명과 기와 얼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 보자. 생명은 물질에서 시작되고 물질(몸) 안에 존재하면서 물질과 몸을 넘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의 차원을 진화사적으로 열어왔다. 물질서 생명으로 생명서 의식과 감정으로 의식과 감정서 맑은 지성으로 지성에서 영성과 신성으로 새로운 존재의 차원을 열어온 것이다. 생명은 존재의 사다리를 올라온 것이고 이 존재의 사다리는 사람 속에도 있다. 생명은 솟아올라(초월) 앞으로 나아가는(진보) 존재다.

기(氣)는 정기신(精氣神)이라고 해서 사람의 생명을 이루는 세 요소 가운데 하나다. 정(精)은 밥을 먹고 얻은 에너지 호르몬이고 거기서 몸과 정신을 아우르는 기(氣)가 생겨나고 그 기에서 생각과 정신이 피어난다고 다석은 말했다. 정이 변하여 기가 되고 기가 변하여 생각과 정신이 된다. 생각과 정신이 초월적으로 변하여 얼과 신이 된다. 목숨이 말숨(말과 생각의 숨)으로 바뀌고 말숨이 얼숨(영과 신의 숨)으로 바뀌어야 한다.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p994@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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