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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범죄하면기억하는 성도들(렘 26:15-16)
이성훈 | 승인 2018.11.11 21:33

요즘 언론을 보면 지금 이 시대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양진호 회장 같은 경우에는 보면 볼수록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언론에서는 벼락부자, 졸부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이 단어는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을 뜻하지만, 보통 이 단어를 쓸 때, 그다지 좋은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언론에서 그런 단어를 붙여서 말할 정도로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강서구 PC방에서 살인을 행한 김성수라는 사람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언론에서 거의 매일 한 명씩은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15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
16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사실 세상의 이런 문제들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너무나 자주 들어왔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교회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도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교회가 분열되어서 개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가끔씩 나온 적이 있었고, 이단 교회에 대한 이야기들은 자주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나오고 있는 교회의 이야기는 목회자들이 행한 범죄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단순하게 기독교인인데 악한 일을 하는 사람, 기독교인인데 정신이 이상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목회자 중에서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교단에서 정한 법을 어기고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교회에 비자금이 800억이나 있었고 이 돈을 목사가 어떤 식으로 썼는지 아무도 모른다던가, 어떤 교회의 목사는 교회에서 준 사택을 자기 멋대로 빌라로 재건축하고 임대료를 자기 주머니에 챙기고 있었다던가, 어떤 교회의 목사는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 중고등부 청년부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중고등부 여학생들을 유혹하여 몇 십명에 달하는 여학생들과 성관계를 맺어왔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기독교 언론이 아니라 일반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성직자가 무조건 올바르기만 한 때는 없었습니다만, 요즘처럼 기독교인들이 점차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목회자들의 범죄나 목회자들의 비리 문제는 뼈아프게 다가올 뿐만 아니라 그냥 둬서는 안될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문제들이 비단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아닌데, 왜 교회는 이러한 목회자들의 행태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목회자들의 잘못은 점점 더 커져갔고,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임에도 대부분의 소속 교인들은 목회자를 옹호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목회자가 잘못을 범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잘못을 범하면 어떻게 되는지 수많은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작은 잘못을 했을 때에는 우선 죄를 고백하고, 죄의 용서를 구하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제사장을 통해서 속죄제를 드리게 됩니다. 때때로 심한 잘못을 했을 때에는 구약성경을 따르자면 돌에 맞아 죽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일반인들에게 적용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성직자인 제사장들이 죄를 범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요? 레위기 4장 2-12절을 보면 제사장들이 범죄 하였을 때에 관하여 나오는데, 대답은 간단합니다. 제사를 드리면 됩니다.

▲ 논쟁하는 예레미야 ⓒGetty Image

지금은 교회의 제도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목회자가 죄를 범하면 교회에 헌금을 하면 됩니다. 헌금을 바치면 그의 죄는 사하여 집니다. 제사장을 목회자로, 제사를 헌금으로 바꾸는 일차원적인 치환이기 때문에 우스워 보이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만, 구약 전통을 지금의 방식으로 옮겨보자면 이렇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의 과정을 거치자면,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신약에서 말하는 회개를 진정으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이 말한 대로 회개하려면, 우선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범한 사람과 화해하고 두 번 다시는 동일한 잘못을 범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회들이 해왔던 회개의 방식은 첫 번째 단계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아무리 범죄해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한다면 하나님께 용서받게 됩니다. 영화 밀양에서나 봤던 ‘나는 하나님께 용서받았습니다.’라는 대사를 현실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만, 아무튼 인천의 김 모 목사는 하나님께 뜨겁게 회개하고 용서 받았답니다. 보통 인체의 온도가 36.5도이기 때문에 인체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대게 뜨겁게 느껴집니다. 눈물이 뜨거웠다고 해서 정말 뜨거운 회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 안에서 목회자가 범죄 하였을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어떤 벌을 주어야 하는가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목회자를 향한 처벌 규정은 성경을 열심히 해석해야만 찾아낼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만 성경에서 제사장들이 잘못을 했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그들을 벌하신다는 이야기는 찾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4장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 앞에서 악했기 때문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두 아들을 방치했던 엘리도 그 소식을 듣고 뒤로 넘어져 죽습니다. 심지어 비느하스의 아내마저도 죽습니다. 하나님의 직접 개입에 의한 심판입니다.

예언서들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는 이야기는 예레미야, 에스겔, 12예언서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 시대에 죄를 범하는 목회자들이 당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오히려 여기에서 발생해버렸습니다. 악한 목회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죄를 범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엘리처럼 뒤로 넘어져 죽지도 않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극적으로 혼이 빠져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 당당해졌습니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렇기에 그 목회자를 따르던 성도들은 목회자의 그 당당함 역시도 지지합니다. 그리고 우리 목사님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목사님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너희가 마귀 사탄이라고 말합니다. 목회자의 통제 수단이 하나님의 심판밖에 없기 때문에 벌어지게 된 상황입니다.

반박하는 사람들

저는 오늘 저희가 읽은 예레미야 본문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해결의 단초, 하나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반박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6장에 따르면,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는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가 전한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실로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레미야가 언급한 실로는 ‘이제 사용되지 않는 성소’라는 의미이겠지만, 그 안에는 또한 심판받은 제사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분노하며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제사장과 선지자들 앞에 이스라엘의 고관들과 백성들이 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고관들과 백성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려고 하는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던,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앞을 막아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저는 지금 시대에 교회를, 특히 잘못된 목회자들의 행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한 가지 단초를 보게 됩니다. 먼저 예레미야와 같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의 존재, 예언자적 소명을 가진 이들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분들은 이미 예전부터 존재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예레미야의 옆에서 그를 지지해주었던 고관들과 백성들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예레미야를 지지해주었기에 예레미야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죄를 고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목회자로도 대체될 수 있는 예언자들의 목소리보다 성도님들의 목소리입니다.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성도님들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지지하는 이들의 음성이 더해졌을 때,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게 되고, 조금이나마 죄에서 물러설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는 일의 필요성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저 ‘지지한다’라고 말한다고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26장 후반부를 보면, 17절부터 지방의 장로들이 앞에 나와서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왜 예레미야를 죽이면 안 되는지를 말하는데,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 그 이유를 말합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자 미가가 예언했지만 그를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회개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를 죽이는 일은 자신들의 생명을 스스로 해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뒤이어지는 이야기 예언자 우리야의 이야기는 앞선 미가의 이야기와 대조적인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의 문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개의 이야기가 별개임을 알 수 있는데, 앞선 히스기야 시대의 이야기와 여호야김 시대를 대조시키기 위해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죄를 묻는 예언자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회개하였으나, 여호야김의 시대, 즉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죄를 묻는 예언자를 쫓아가서 죽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행동이 올바른 행동인지를 구분하기란 쉽습니다. 이미 장로들이 19절에서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며, 여호야김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조건이란, 역사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또 한 번 바꿔 말하자면,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예언자들의 음성을 지지할 것인가? 당연히 성경을 근거로 지지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교회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고린도전서를 보면, 초대교회 안에서 은사를 받은 사람들과 받지 못한 사람들로 교회가 분열되고,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하하는 일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초대교회에서만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7, 80년대 한국 교회 안에는 방언을 할 수 있는 분과 그렇지 못한 분들이 당연히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방언을 하는 분들은 방언을 못하는 분들을 향해 믿음이 없다던가 신앙이 부족하다며 교회 안에 계급을, 신분을 만들어갔습니다. 이런 모습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일부 목사님들은 교회 안에서 방언 사용하는 일을 과감하게 금지시켜버립니다. 초대교회에서 벌어졌던 분열의 역사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어떤 교회들은 방언과 같은 은사를 받아야만 참된 교인이고 못 받았으면 아직 부족한 교인으로 여기며, 교회 안에서 계급을 나누고 신분을 나눕니다. 교인을 분열시켜놓고 교인들이 교회 내에서 더 높은 계급과 신분을 차지하려고 아웅다웅 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동력이라고 말합니다. 전 이들이 교회의 역사를 전혀 기억하지도,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교회의 크기를 키우려고 하는 사업가로밖에 안보입니다. 고린도전서만 제대로 읽었어도 이런 방식으로 교회 운영을 할 수 없습니다.

나가는 말

목회자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는 비단 목회자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잘못을 행했을 때, 이를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는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한 이들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목소리가 교회의 역사 속에서 묻혀버렸다면 그 이유는 그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삼아 잘못된 이들을 함께 고발할 수 있었던 지지자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사의 말씀보다도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의 역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스스로가 교회의 잘못을 바로 잡는 예언자가 되실 것이며, 예언자를 핍박하려는 무리의 앞을 가로막는 지지자들이 되실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굳게 세워나가는 아름다운 지체가 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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