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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의 감정 정치적의 계보학⑧
김엘리(성공회대 젠더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24.05.22 01:34
이 글은 「종교와 평화」(2024년 3월 14일)에 먼저 게재되었다. - 편집자 주
▲김엘리 성공회대 젠더연구소 연구교수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감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수강생들은 모욕감, 수치심, 혐오를 거론한다. 그런데 누구도 적대감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지나치리만큼 과잉된 감정이라 어쩌면 일상에서 의식하지 못한 감정일 수도 있겠다. 적대감이야말로 역사적으로 한국 사회에 깊이 배어 있는 감정이다. 70여 년 동안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대립하면서 누적된 분단사회의 감정이다.

‘주적’을 운운하는 논쟁이라든가, 북한의 미사일을 경유해야 말이 이어지는 남북한의 관계라든가, 특정 집단을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릴 때 종북세력이라고 지시하는 것은 적대의 감정이 여전히 만연하다는 표시이다. 그리고 감정의 대상이 북한에서 특정 집단이나 지역으로 치환되는 것을 보면 감정은 순환적이고 수행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정은 개개인이 느끼는 것이지만 타자들과의 사회관계에서 형성되고 그 사회의 규범에 영향을 받아 움직인다. 문화연구자 사라 아메드(Sara Amed)는 감정을 몸과 대상 사이의 접촉을 통해 몸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힘으로 본다. 거기에서 압축된 문화적 의미들이 일어나고 사회규범이 작동하는데, 이는 몸들 사이의 근접성을 다르게 배치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대상과 밀착시키지만, 적대감은 몸들 사이의 거리를 넓히며 긍정적 감정들과는 다른 규범적 사회 공간을 생산한다.

적대감은 안과 밖을 나누고 우리와 적을 구별하는 경계를 만든다. 사람들을 구분 짓고 그들이 무엇인가를 규정한다. 적은 난폭하고 야만적이고 평화를 파괴하는 반면, 우리는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의로운 집단이라고 말한다. 적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일이고, 우리는 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불안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적을 이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지속적으로 자기검열을 하며 강박과 불안증에 매여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 적대감은 단순히 북한과의 대립에서 파생되는 감정이 아니다. 선재하는 적의 존재성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아닌, 국가안보와 통합을 위해 조성된 정치적 감정이다. 적대감은 갑자기 분출되는 감정이 아니라, 정해진 양식, 연상과 이미지들, 범주를 나누고 평가하는 인식틀 안에서 일어난다. 교육과 전시, 박물관, 노래, 글쓰기, 포스터, 의례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서 적대감이 실행되고 전승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 사건과 이미지들 안에서 탄생한 ‘빨갱이’라는 말은 바로 적대감을 구체화한 언어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은 군대의 여성 부대에 입대하거나 산업 또는 농장 노동에 참여하도록 장려되었다. ⓒWikipedia

그런데 그 사건과 이미지, 담론들은 남성과 여성의 부정의한 관계를 보여주는 질서들로 만들어져 있다. 정치철학자들이 ‘정치’라는 것이 세계를 친구와 적, 적과 동지로 구별하는 행위라고 논한 바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남성들의 정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이다. 세계대전 시기 때 살포된 전쟁포스터를 분석한 샘 킨(Sam Keen)은, 적의 이미지가 동물로 비유되곤 했지만 여성의 얼굴로는 재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성은 적에게 성적 착취를 당하는 대상이거나 아군의 남성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그려졌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정치적 지도자들, 말하자면 적들은 아군의 여성을 탐하는 호색가로, 평온한 가정 질서를 파괴하는 자로 그려졌다. 우리를 이루는 친구도 이질적인 적도 남성 주체이다. 전쟁은 남성의 일이고 싸움의 주체는 남성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남성이 싸워야 할 대상은 남성이지 여성이 아니었다.

여성이 ‘적’의 이미지로서 등장하는 경우는 성적 유혹자로서이다. 이것은 적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투영된 남성적 환상이다. 일례로 1948년 여순 사건 때 회자된 여학생부대의 일화가 있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빨갱이’가 배제의 대상에서 ‘죽여도 되는 존재’ 혹은 ‘죽여야 하는 존재’로 그 의미가 변용된 계기가 여순사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촉진시키는 것이 여학생부대 일화라는 것이다. 여학생이 군경을 유인한 뒤 치마 속에 감춘 총을 꺼내 쏜다는 일화는 실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었으나 당시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다.

여성의 유혹으로 예기치 않는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한편에서는 유혹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람들의 불안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 유혹당하지 않고 반공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길은 빨갱이를 섬멸하거나 정복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죽여야 하는 빨갱이는 여성의 몸으로 구체화 되었다.

여성화된 빨갱이는 유혹적이지만 치명적인 속성을 지닌다. 불순한 균이 내 몸에 침투하듯 우리는 오염될 수 있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반공주의를 남성적, 성적 환상으로 풀어낸 빨갱이담론은 여성에 대한 매혹과 혐오를 그대로 드러낸다. 여순사건을 연구한 사회학자 김득중은 『빨갱이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반공주의가 남성성과 결합하여 여성의 몸을 동원함으로써 적대성을 고조시켰다고 분석한다. 당시 빨갱이의 이미지는 유혹하는 요부와 같은 여성화된 형상으로 나타나기 일쑤였는데, 이것은 여간첩의 일화에도 이어진다. 유혹과 위험 그리고 정복의 서사는 국가의 정화를 뜻한다. 건강한 국가와 남성 국민을 확고하게 세우는 기틀은 유혹하는 여성과 적을 섬멸하는 데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국제정치의 싸움판에 남성들과 같은 전사가 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나 이미지 재현에서 이미 여성들은 남성들과 힘을 겨루는 전사로서 등장한지 꽤 오래됐다. 공룡과도 싸우고 나쁜 남성 범법자들을 해치우며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여성들의 영웅이야기는 이전의 전통적인 여성들의 이미지 재현과는 달라졌다. 물론 싸우는 모성의 힘이 근저에 깔려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평화 페미니즘의 물음은 계속된다. 적대감은 지금도 살아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적대감이 반드시 우리를 생존하게 만드는 것일까? 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군사력을 키우는 정치를, 뛰어넘는 지혜로운 이야기가 절실하다.

김엘리(성공회대 젠더연구소 연구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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