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예수, 민중의 상징; 민중, 예수의 상징』 권진관 (동연, 2009.04)

우리 시대가 앓고 있다. 특히 시대의 표징을 읽고 밝혀야할 교회가 불길한 열정에 사로잡혀 역사의 흐름을 역류하는 세력들에게 포로가 되어가는 동안, 교회에 대한 절망이 깊어가고 교회의 절망도 커져간다. 주의 몸 된 교회를 향한 탄식이 산처럼 쌓여 그 사이에 슬픔과 절망의 골짜기가 패여 가는 가운데, 다시 촛불 하나를 밝히자고 외치는 책이 나왔다. 권진관 교수의 『예수, 민중의 상징; 민중, 예수의 상징』이 바로 그 책이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온 <민중적 예수에 대한 희망>과 <예수적 민중에 대한 신뢰>를 쏟아놓고 있다. 그에게 이 희망과 신뢰는 갈라터지는 모든 상처를 싸맬 수 있는 정신이요, 영(spirit)이다.

무엇이 갈라터지고 있는가? 신과 세계가 갈라지고 있다. 구원의 방주가 된 교회가 세속주의적 사회를 떠다니고 있다. 탐욕스러운 믿음이 메마른 시대정신과 서로 싸운다. 교회가 근본주의라는 밧줄로 스스로의 목을 메고 죽어가는 동안, 시대의 정신이 무신론적 광풍으로 그 죽음을 조롱하려 한다. 여전히 역사의 무게를 지고 가야 할 기독교 신앙이 가질 희망은 무엇이고, 어디에 신뢰를 두어야 하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교회가 “민중적 예수”를 희망하고, 역사는 “예수적 민중 (79)”을 길러낼 때, 이 갈라터지는 상처가 아물 것이라는 것이 답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민중신학이 그 고향 땅에서 외면당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항상 가장 큰 이유는 내부에 있다. 시대의 흐름이 학문적 기조마저 바꿔가며 다채로움을 선사할 때, 민중신학은 새로운 목소리를 갖기에는 너무 노쇠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아왔다. 아버지는 늙어가고, 자식들은 집을 나가버렸다. 와중에 권진관은 쓸쓸한 고택을 지키면서 시대의 오고감이 주는 교훈을 안으로 끌어 모았다. 그리고 옛 교훈과 지혜를 바탕으로 오늘의 관심과 해석을 조명하였다.

간략하게 보자면, 70년대 후반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을 외치며 근대주의를 망령으로 몰아가기 시작하자, 이 주장은 이내 큰 물결을 이뤄 서양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이 흐름이 90년대 초반 한국에 상륙하여 마르크스주의와의 연계를 풀고 자유하려는 한국의 진보적 지성을 휩쓸었다. 그 열기가 식어 현실을 되돌아 볼 여유를 갖게 될 때, 그것은 단지 후기구조주의라는 프랑스 철학에 가담한 사람들만의 주제가 아니라, 그 시대를 고민하던 대부분의 학문적 방법론들이 취했던 기본적 태도와 관계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 정신이 무르익어 이제 그것마저 넘어서고 있다.

오늘의 학문은 분명 또 다른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그 과제는 두 가지의 편향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돌아가는 사태를 주의 깊게 주시”하며 “심사숙고하는 해석학적 공동체 (272)”를 형성시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각만이 오직 하나의 참된 진리라고 절대화하는 근대주의의 망령(modern absolutization of one truth)을 제거하는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는 포스트모던적 자유(postmodern relativization of all truths)를 절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제를 “분리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에 대한 통전적 이해 (159)”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자신의 “민중신학적 조직신학”이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해석학으로 “연대 다원주의 (pluralism of solidarity, 300)” 즉, “분리 다원주의 (300)”라는 시대의 유행이 아닌, <다원적 연대성>를 채택한다. 민중신학적 전통의 새로운 구축이 오직 다양한 진리들을 심사숙고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조화로운 지혜>를 통해 가능하다면,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능케 할 “사고의 유연성 (13)”이라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권진관은 이를 위해 “상징”이라는 방법론을 도입하여, 민중신학의 핵심 전통인 <민중과 예수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성>을 설명한다.

총 3부 1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민중신학적 조직신학”을 구성하려는 권진관 교수는 자신의 과제를 “선배 민중신학자들의 창조적인 통찰들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재해석 작업은 민중사건에 대한 단순한 <증언의 신학>을 넘어서, 변화된 시대의 상황을 담아낼 “조직신학적 형성신학(a systematic-constructive theology, 14)”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신학은 한편으로는 지난 시기 세계적 수준의 진보신학이 마련한 해석학적 지평과 폭넓은 대화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민중운동과 민중신학에 대한 깊은 반성을 담아 다양한 조직신학적 주제를 포괄한다.

1부에서는 민중신학적 문제의식의 특징을 개관한다. 그에게 민중신학의 “새로운” 문제의식은 오래된 민중신학적 전통에 대한 새 해석이다. 한편에서는 과정철학의 유기체적 생명론의 지평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네글리와 하트의 정치철학이 지닌 역동적 다양성이란 관계론의 지평을 확보하여, 오늘날의 변화된 상황 속에서의 <민중>을 <예수>와 연관 짓는다.

신학적 방법론으로 “상징”을 도입하여, 예수는 “민중의 상징”으로 해석되고, 민중은 “예수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이 민중과 예수의 관계는 서로 존재론적 유사성이나 공통점에 근거한 관계라기보다는 상호간의 차이성 속에서도 서로 만나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받는 상징적 관계이다. 양자는 서로에게 “역동적 상징 (66)”이 되어 서로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바로 알기 위해서 그의 관심의 초점인 민중을 알아야 하고, 민중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삶과 희망을 재연한 예수를 알아야 한다.

예수와 민중 사이의 상징적 관련성은 단순히 이론적 설명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역사적 운동의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민중신학적 전통이 강화된다. 즉 “민중의 운동을 예수의 운동과 직결”시키는 것이 그의 민중신학적 특징이 된다. 권 교수는 민중운동이란 “인간과 역사의 부활을 지향”하는 운동이요, “희생자가 더 이상 없는 종말적 세상을 선취하는 운동”이요, “자발적으로 고난당하는 십자가 운동”이요, “십자가의 희생을 낳는 역사적 구조를 극복하는 운동 (80)”이라는 점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민중과 예수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성”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민중의 하나님과 예수의 하나님이 같다는 것이고, 예수를 이끌었던 영과 동일한 영이 오늘날 민중으로 하여금 예수의 삶을 재연하게 한다는 점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민중신학적 주장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이 담아내고자 했던 본래적인 관심사와 동일한 것이 아닌가? 다만 전통신학의 교리주의적 왜곡을 만들어낸 신학적 전제들을 걷어내고, 다시 오늘날의 민중과 교회가 역사적 예수와 성서의 본 뜻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하는 신학적 과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2부는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신학의 전통 주제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상징과 계시, 삼위일체론, 우주론, 죄론, 구원론, 속죄론, 교회론 등의 폭넓은 주제를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대화상대자와의 토론을 통해 재구성해낸다. 첫째, 상징으로 해석된 계시는 더 이상 역사적 이성을 제압하지 않고 “올바른 판단과 실천”을 할 수 있게 하여 “자유와 해방”으로 이끄는 “신적인 지혜 (80)”가 된다. 이 지혜는 우리를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해방시켜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다준다.

주관주의적 열광과는 전혀 다른 이 계시체험은 실상 “성령체험과 동일한 것 (114)”으로써, 그것은 십자가로 상징되는 ‘약자와 고난당하는 자’에게로의 회심을 동반한다. 다시 말해 계시체험은 우리에게 “가난한 민중의 눈과 가슴이 성령의 진정한 활동을 분간하는 시선 (103)”임을 깨닫게 해준다.

둘째, 과거의 민중신학자들이 삼위일체론이라는 전통신학의 주제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을 가졌다면, 권진관 교수는 거기에 담긴 관심사 즉 전통신학의 초월주의적 유신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삼위일체론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전통적 유신론은 신에게 변하지 않는 전지전능의 자기완결성만을 과도하게 부여함으로써, 피조세계와 끊임없이 교통하며 생명력을 불어넣는 하나님, 그리하여 피조세계로 하여금 신성(divinity)이란 가락으로 “생명의 춤 (119)”을 추도록 이끄는 하나님을 놓쳐버렸다.

권진관 교수는 이것이 성령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하면서, “성령에 의한 삼위일체론”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성령은 “끝없는 교통과 관계적 생명력”이란 신적 본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분이자,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새로운 지평을 경험하게 하는 “끊임없이 넓어지는 지평 (122)” 자체이다. 우리 안으로 오신 이 분은 끊임없이 우리의 세상을 초월하도록 이끄신다. 그 초월은 “저 세상적 초월이 아니라, 이 세상 안에서의 초월 (133)”이다.

권진관 교수는 여기에서 “영성”의 참된 의미가 드러난다고 본다. 영성이란 “세상과 나, 그리고 우리 주위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어, “생명에의 사랑을 지향”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이 영성이 뛰놀 세계관의 지평을 마련하는 일에 전통신학의 유신론은 실패했다고 권진관 교수는 진단한다. 그리고 신학적 세계관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우리 시대의 영성이 정초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도록 이끈다.

이 토론에서 저자는 전통적 초월신론과 범신론 그리고 이시대의 무신론을 차례로 비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이 신 안에 존재한다”고 보는 범재신론이라는 오늘의 보편적 담론을 더욱 밀고나가 “신재범론”이란 동양적 사유를 주창한다. 여기에 “설득의 힘”으로 “설득의 혁명”(152/58, 125)을 일으키는 분으로 성령을 보는 생각, 그리고 세계와 “함께 고통당하는 위대한 동료”(132)로 신을 그리는 과정신학의 관계론적 사상을 덧입힌다.

이러한 신학적 세계관 위에서 전통신학에 대한 재구성은 가속화 된다. 전통신학의 핵심을 이룬 죄와 구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것과 밀접하게 결부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란 주제가 새롭게 조명된다. 죄를 개인의 실존적 영역의 문제로 제한했던 전통적인 “대속적 속죄론”은 현실에서 정의의 문제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죄악의 현실에 대한 무감각(insensitivity)까지 용인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죄란 실존적 차원을 넘어 모든 삶의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보편적 상황으로 우리 사로잡아가는 역동적 작용이다. 따라서 구원이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세상 권력자들의 방식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사랑을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198).” 이 구원은 “공동체와 사회운동을 필수항목으로 하는 운동 (207/212)”의 형식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기독교 신앙의 사회운동으로의 용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다루는 저자의 생각에는 최소한 과거와 현실에 대한 두 가지의 반성이 담겨 있는 듯하다. 하나는 죄를 구조악으로 단순화 할 때 나타나는 죄의 현실에 대한 “통전적 전망과 타당성의 상실 (161)”이요, 다른 하나는 “대안이 없다고 외치는 현실 (191)”의 무기력의 뿌리에 대한 성찰이다.

어떻게 우리는 죄의 사슬을 끊고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신앙의 가장 핵심적 문제인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정직한 재해석에서 찾아진다. 전통적인 해석방식이었던 “만족설”과 “배상설”로 인해 예수의 십자가가 왜곡되고, 부활의 중요성이 사족으로 변해 버리는 잘못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제안된다. 첫째는 신앙의 언어는 실체론적 언어가 아니라 상징적 언어라는 이해이고, 둘째는 예수의 십자가를 종말론적 전망 위에서 이해하는 방식이다 (251). 이때 “십자가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정의 결과이며, 그의 피는 그분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표지이다 (252).”

예수의 피는 “고난과 충성”을 상징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따름의 윤리”를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도록 만든다. 성서의 근본 메시지는 이것을 통해 보여주는 “하나님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울은 그것을 “자기 비움의 영성”으로 보았고, “이 패배처럼 보이는 십자가와 죽음은 부활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신들의 승리라고 믿었던 세상 권세를 누르고 그 안에 갇혔던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해방시킨다(252)”고 보았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만족설에 입각하여 보았던 전통신학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만이 아니라, 예수와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의 삶의 방향에 관한 이해까지도 왜곡시켰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를 마련한 미국의 근본주의와 그 영향을 대부분 흡수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폭력으로 번역하고, 예수의 <헌신과 사랑의 복음>을 <성공을 향한 힘의 복음>으로 뒤바꾸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세상을 위협하는 근본주의 세력으로 웃자라고 말았다.

한국 교회가 근본주의 세력이 득세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있는 가장 깊은 이유를 한국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믿음의 양식인 <속죄론적 만족설>에 찾고 있는 이 책의 지적은 유념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제 한국 교회가 교회를 갱신해나갈 과제를 계획할 때 단순히 윤리적 태도의 조정에 그쳐서는 아니되며, 그 믿음의 양식을 재구성하는 과제로까지 나아가야 함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3부는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제안들을 마련하여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근본주의적 교회현상과 제국주의적 흐름에 관한 비판적 고찰을 바탕으로 교회론과 종말론에 관한 새 전망을 다룬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현실적 악의 승리를 “비판정신이 없는 삶의 습관 (263/4)”에서 발견한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악을 일소할 수 있는 진리의 보검은 과거에 형성된 교리나 사상에 대한 충성에서 찾아질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세상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일하시고, 세상은 그 신의 것을 육화하여 새로움을 시시각각으로 뱉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는 오늘의 모든 것을 결코 포착하지 못하며, 문자주의적 신앙의 열심은 교회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고 만다. 오직 “새롭게 변화되는 상황에서 정의를 위해 가장 적합한 행동을 추구하는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 262)”가 요구될 뿐이다. 그리고 이 해석학의 과제는 <성서의 가르침>과 <기독교 신앙의 본성> 그리고 <시대의 정신>을 깊이 있게 해석해내는 사려 깊은 교회 공동체의 탄생을 갈구한다.
 
이 공동체는 민중적 예수를 희망하며, 어리석게도 민중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짊어지고 죽음 속으로 들어갔지만 하나님에 의해 일으킴을 받은 그 신앙의 원 사건을 사려 깊이 해석한다. 그리고 이 “민중적 예수”에 대한 희망을 “예수적 민중의 탄생”이라는 삶으로 이어간다. 이 “예수적 민중”은 고난과 부르짖음을 통하여 역사의 영을 깨우고, 스스로 “영을 받은 존재로서 정의를 허리에 동여매고 성실로 몸에 띠를 삼는다(160).” 이들에 의해 역사는 단지 “외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움직이는 성령을 새롭게 재연 (111)”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외치는 민중신학적 신념이다.

권진관 교수의 새 책을 읽는 기쁨은 세계적으로 형성된 새로운 학문적 성과들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녹여낸 흔적들을 발견하는 것에서 오기도 한다. 그는 앞서 말한대로 과정사상이라는 형이상학적 철학만이 아니라, 정치철학적 실천사상을 깊이 있게 수용하여 신학적 지평을 확대한다. 남미의 해방신학적 노력이 보여주는 성과에서 오는 교훈(60, 71, 76, 279)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여, 한국의 민중신학을 조직신학적, 재구성주의적 방법으로 끌고간다. 한국의 역사에 천착하려 했던 민중신학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민중신학 1세대에게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던 종교다원주의적 포용성을 담아내었다.

역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라는 근대주의의 한계를 안고 있던 기존의 해방 담론을 생태여성신학의 관계성(244, 374)의 범주로 개조해 나간다. 과학신학과 종교신학의 주요 성과들과의 대화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열심을 통해 현재 한국 교회가 망각하고 있는 <지성의 의무>를 새롭게 수행해 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권진관 교수가 전통신학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체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전통신학과 깊이 있게 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과거의 민중신학이 지닌 약점을 보완하는 것으로써, “교회의 신학”이란 타이틀을 좋지 못한 이름으로 기억하며 그것에서 떠나버렸던 기존의 민중신학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민중신학은 과거에 ‘민중사건을 증언하는 신학,’ ‘민중운동에 참여하는 신학,’ ‘민중교회를 지원하는 신학’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보편적 교회의 신학”으로서의 과제는 회피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과제로 여겨져야만 한다. 권진관 교수의 <재구성주의적 민중조직신학>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가 마지막에 “민중의 입장에서 성령론, 그리스도론, 신론, 삼위일체론”을 저술하려는 계획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 계획이 이루어져 자신의 바램과 신념대로 오늘날의 “제도교회들이 ‘민중교회’의 모습을 띠도록” 변혁되어가기를 바란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소중한 책 한 권이 탄생했음을 기뻐하며, 오래된 우리의 탄성을 질러본다. 할렐루야!

(김희헌, 한신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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