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차 민중-달릿 신학대회에 다녀와서

지난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세계화를 통해 형성된 민중과 달릿의 지역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와 정의와 평화의 교회 만들기: 기독교 선교의 당위성과 동기와 운동에 대한 신학적 성서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제8차 민중-달릿 신학대회>가 열렸다. 한국과 인도 측에서 각각 7명 씩 발표한 이 대회는 모두 23명의 신학자와 목회자가 모여서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마칠 때 공동선언을 하였다.

첫째 날, 달릿연구센터의 부소장이자 델리에 소재한 성요한 교회에 시무하는 모노디프 다니엘 신부는 창세기 41장 1~8절을 본문으로,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양산되는 빼앗기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달릿-민중 신학자 대회의 의의에 대하여 말하였다.

인도측 대표 제임스 마씨 박사

이어서 50여개 대학의 연합체인 세람포 칼리지의 주임(registrar)이자 이사인 라비 티와리 박사가 환영사를 통해 인도의 신학(대학) 교육의 현황을 소개하면서 달릿-민중 신학의 건설적 대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아시아 신학의 협력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국 측 대표로 권진관 박사(성공회대, 조직신학)가 인도 측 대표로 제임스 마씨 박사(달릿연구센터 소장, 인도신학교육협의회 비서)가 참가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 대회는 달릿연구센터의 의장인 T. K. 존 박사가 주관하는 주제해설로 시작되었다. 먼저 한국민중신학회의 회장인 노정선 박사(연세대, 윤리학)는 “왜곡된 선교: 인민, 민중, 달릿, 그리고 통일신학의 관점”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선교 상황을 소개하면서, 두 개의 선교방식을 대별시켰다.

권진관 교수

하나는 성서의 가르침을 식민주의와 세계화과정의 약탈의 도구로 사용하는 왜곡된 선교요,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고통과 연대하는 정행적(orthopraxis) 선교이다. 노박사는 자신이 오랫동안 관심해 온 북한기독교의 상황을 <인민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형상화 해낸 후, 한반도의 정의, 평화, 통일을 위해 인민신학과 민중신학의 연대를 제안하였다.

이어서 이번 대회의 일정을 주도적으로 준비해 온 인도 측 대표인 제임스 마씨 박사는 대회주제를 포괄적으로 설명했다. 마씨 박사는 세계화를 통해 지역마다 정착한 약탈적 상황에서 달릿이 처한 형편을 설명한 후, 기독교교회가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공동체”를 창출하는 일에 매진해야 하며, 이 일은 기독교 선교가 “정의와 평화”라는 분명한 목표를 두고 나아갈 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세계화 과정의 희생자들(달릿과 민중)의 시각에서 이루어질 기독교 선교의 실제적 구현을 위해 필요한 신학 주제로 다섯 가지 제안을 하였다.

노정선 교수

두 사람의 주제발표가 끝난 후 20여명의 참가자들 모두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인도와 한국의 사회적/교회적 상황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교회의 본성에 대한 토론, 전통적 교회의 역사적 행태에 대한 비판, 기독교 선교가 지닌 정치경제적 차원의 성격, 제국과 세계화의 입장에서 확산되어 온 기독교 선교에 대한 반성, 미디어의 정치적 (역)기능과 민중적 선교의 소통 도구와 방법의 문제, 교회의 선교적 관심과 정의-평화-성장의 관계 등에 대하여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며 첫째 날 토론을 마쳤다.

둘째 날은 세람포 칼리지의 여신학자 라일라 비자얀이 주관하는 성서연구로 시작되었다. 비자얀 박사는 이사야 11장 1-9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달릿(민중)과 일치시키면서, “이새의 뿌리”를 주변부로 밀려나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상황으로 해석하였다. 이 뿌리에서 탄생할 새로운 왕과 새로운 공동체란 정의와 평화의 비전을 가진 자요, 정의와 평화의 공동체라고 말하였다.

라일라 비자얀 박사

둘째 날의 첫 번째 본 토론주제는 <기독교 선교의 당위성과 동기와 운동에 대한 성서적 관점>이었다. 레오나르드 신학교(자발뿌르)의 주임인 나빈 라오 박사가 주재한 이 세션은 한국의 이병학 박사(한신대, 신약학)의 발표로 시작되었다. 이교수는 요한계시록 18장 4절의 구절 “내 백성아, 그 여자를 버리고 나오라!”라는 주제로 기독교 선교는 오늘날 제국의 질서재편 방식의 삶으로부터 탈출할 명령을 가지고 있음을 역설하였다.

이어서 마리아 아룰 라자 박사가 “포로가 되지도 않고 포로를 만들지도 않는 달릿의 비전과 성서적 선교”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라자 신부는 아시아의 서부, 지중해 동안의 삶과 역사를 배경으로 탄생한 성서의 세계와 서남 아시아에 위치한 인도의 고단한 역사를 짊어진 채 형성된 달릿 세계의 친근성을 다각도로 분석한 다음, 두 세계의 만남을 창조적으로 해석할 시각을 제공하였다. 다양한 성서적 전거를 통해 오늘날 기독교 선교가 요청하는 생명 중심적 해석 방법론을 소개하였다.

최영실 교수

<성서적 관점> 세션의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최영실 교수(성공회대, 신약학)는 “갈등과 분단과 죽음의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어떤 형식의 선교를 통해 생명수가 흐르게 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을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발표하였다. 성결과 불결의 신드롬에 사로잡힌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그 뜻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 최 교수의 논문은 남성 예수를 해방시킨 사마리아 여인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기독교 선교의 당위성과 동기와 운동에 대한 신학적 관점>이라는 새로운 세션은 아이자울 신학교(모조람)의 학장인 로저 가이크와드 박사가 주관하였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권진관 박사(성공회대, 조직신학)의 주제는 “고난당하는 사람에 의해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해지는 선교”였다. 권박사는 선교모델을 세 유형으로 구분하여, 그리스도 대속교리에 집착하여 기독교 제국 확장에 힘쓴 <그리스도 선교, Missio Christi> 모델이 지닌 신학적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세계교회 에큐메니칼 진영의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모델을 넘어, 성령의 능력에 의거한 민중 선교 모델로 <성령의 선교, Missio Spiritus>을 제창하였다.

연합신학교(뱅갈로)의 윤리학 교수인 모한 라주 박사는 “세계화의 상황 속에서 달릿 되기와 새로운 공동체 되기: Imago-Dei와 Missio-Dei 사이의 역동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달릿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먼저 통계로 분석한 라주 박사는 컨퍼런스의 전체주제를 달릿의 관점에서 분명하게 서술해내었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서로 역동적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교” 모델이 세계화의 과정에서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포괄적인 제반 영역에서 회복시킬 도덕적 영적 능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지막 발표자인 임태수 박사(구약학)는 “기독교 선교의 위기와 해결을 위한 제안”에 대하여 말하였다. 십자군, 식민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정복자를 지원했던 기독교 선교가 처한 위기 상황은 지배당한 자들의 입장을 반영한 신학으로, 아래로부터 읽혀지는 성서 해석으로, 평화의 비전을 간직한 영성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날의 마지막 세션은 <기독교 선교>에 대한 포괄적 주제를 두고 패널 토의로 진행되었다. 동부신학교(조르핫)의 부학장인 리마툴라 롱쿠머 박사는 “기독교 선교에 대한 간디의 비평”이란 논문을 통해 인도에서 벌어진 유럽 선교사들의 개종주의적 제국주의 행태에 대한 비판을 하였다. 개종보다 대화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던 간디의 입장을 지지하며,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기독교 선교를 가능케 할 포괄적 비전 형성을 촉구하였다.

이어서 세람포 칼리지의 교육위원회 의장인 모한 라비르 박사는 인도의 사회개혁운동가였던 암베드카(1891-1956)의 입장에서 기독교 선교를 비판하였다. 인도에서의 기독교 선교가 결과적으로 카스트제도 상층부의 기득권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 하고 말았던 경위를 그려내고, 또 개종주의로 인도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거부하고 결국 인도 민중의 삶까지도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설명하면서 암베드카가 기독교 선교에서가 아니라 불교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귀의하였던 이유를 그려내었다.

조헌정 목사

마지막 발표자인 김희헌 박사(한신대, 조직신학)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 개신교의 총체적 위기 상황을 “무례한 복음을 가진 무례한 기독교인의 무례한 선교”로 표현하며,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된 네 가지 이유로 신학적 근본주의, 사회정치적 차원에서의 승리/성공주의, 종교 절대주의의 신앙유산, 지적 소비주의로 나타나는 해석학적 허무주의를 들었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의 성공 가능성을 이 네 가지 악을 극복하여 평화를 구현해내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에서 찾았다.

셋째 날은 조헌정 목사(기장, 향린교회)가 주관하는 성서묵상으로 시작되었다. 조목사는 요한복음 4장을 본문으로 하여, 참가자들을 이야기로 초대하여 성서를 풍요롭게 이해하고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아침시간을 인도하였다. 참가자들은 인간의 고통, 신분제도를 만드는 종교질서, 공동체를 꾸려낼 수 있는 새로운 영성, 고난당하는 자들이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깨닫게 되는 방식 등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석자가 모두 함께 찍은 모습

이어진 조별 토의는 이 신학대회에서 발표/토론 되었던 다양한 주제들을 심화/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두 조로 나뉘어 진행된 이 토론은 <대회선언서>의 기본적인 내용을 제공하였다. 오후 시간이 다가고 저녁 7시가 되도록 깊이 있게 진행된 이 토론은 <선언서>로 정리되었다.

참가자들은 2011년 6월 8~10일 한국에서 9차 대회를 갖기로 계획하고,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한 후 3일 간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정리: 김희헌)

김희헌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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