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가 봅니다. 밤에도 더워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자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가을 날씨입니다. 한낮에는 따가운 햇볕이 내지 쬐다가도 밤에는 쌀쌀합니다. 이런 날씨에 벼이삭과 곡식들은 쭉정이에서 알곡으로 여물어간다 합니다. 우리도 이삭을 여물게 하는 가을의 날씨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뜨거울 때에는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다투기도 하다가, 쿨-할 때에는 냉철하고 지혜롭게 판단하면서 서로를 이해한다면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더욱 성숙하게 여물어 갈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이 받은 비판과 책망

예수님을 찾아온 율법학자가 종교적 의식을 상대화시킴과 동시에 사랑의 실천을 절대화하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은 그를 극찬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언한 예수님이 그를 “하느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 율법학자 집단의 생각이나 행동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책망합니다. 그들을 “더한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율법학자들의 말을 거부하고 뒤집습니다.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면서 메시아,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일 수가 없고 오히려 다윗의 계보를 능가하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다윗이 거룩한 영에 의하여 스스로 말했다. ‘주께서 내 주께 말했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다윗이 스스로 그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지배자만을 바꾸는 메시아사상은 다윗 왕조의 재건을 통한 지배이념을 거부한 것입니다. 통치자나 정치적 권력만을 바꾸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무관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야훼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무리가 그의 말을 기쁘게 들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무리, 백성들이 바라는 메시아는 다윗 왕조의 부활을 의미하는 메시아사상과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민중들에게 메시아의 모습은 왕에게 맞서서 야훼신앙을 지키려한 엘리야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냐 아니냐는 논란 거리였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1:1)이라고 하지만, 마가복음은 하느님의 아들(1:1)이라고 합니다. 물론 마태복음의 족보를 자세히 보면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이 단지 다윗의 왕권을 회복하는 메시아로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율법학자들은 경계하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밝히는 이유는 여섯 가지입니다.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회당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기를, 식탁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한다.” 종교적 위선으로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 행동하고, 그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를 자행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빙자해서 그 사랑을 가장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착취합니다. 그들은 경건과 믿음을 빙자해서 자신들의 치부를 채우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더한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라고 혹독하게 책망합니다.

율법학자들(서기관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여기에서 율법학자는 서기관입니다. 서기관들, 랍비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 당시에 백성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포로기 때에 성서를 해석하고 번역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나타나기 시작한 서기관들(느헤미야 8장)이 후에는 율법에 관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법률가와 도덕선생으로서 율법을 해석하였고, 그렇게 해석된 율법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들은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과 함께 살았으며, 회당에서 제의를 인도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성서를 현재와 연관짓는 방식으로 그것의 강론들을 만드는 성서해석가들(exegetes)이었습니다. 그들은 법정의 판사와 같이, 실제적인 상황 내에서 율법을 집행하는 법학자들(jurists)이었습니다(cf. Sir 38.24-30). 그들은 CE 1세기 이후 존재했던, 소년들을 위한 회당들과 학교들에서 그들의 가르치는 행위를 통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서기관들이 산헤드린에 참여하고 회당의 중요성이 증가하게 됨에 따라, 서기관들은 “랍비”라는 칭호가 시사하듯이, 보다 더 큰 권력과 명성을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말리엘의 제자였고,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서기관들 중에는 사두개파 사람도 있고, 바리새파 사람도 있었습니다(마가 2:16; 누가 5:30; 바리새파의 서기관들). 마가복음에서는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논쟁하고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는 주된 역할을 하지만,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아울러 비판이나 책망도 받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서기관들을 추종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서기관들과 거의 같은 부류로 여겨졌습니다. 율법과 장로들의 전승을 지키는데 있어서 바리새파 사람들의 중심에 율법학자들이 있습니다.

바리새파는 보통 중산층으로 구성되었는데, 개개의 사제들, 특히 평신도들, 수공업자들, 농부들, 상인들이 속해 있었고, 그들은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살았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공동체는 요세푸스의 사료에 의하면 6,000명 이상의 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공동사회에 가입하려 할 때는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가입 신청자는 우선 바리새파 전통의 모든 부분에서와 십일조, 그리고 정결의식 및 음식에 관한 모든 규례들을 그대로 지킬 것을 서약하였습니다. 그런 후에는 수습기간에 들어가는데 이 기간 동안 바리새파 존속여부에 대한 면밀한 심사를 받았고, 이 과정을 거치면 정식으로 바리새파의 일원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바리새인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책망하는 욕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치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 정도로 복음서에서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예수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논쟁하고 방해하는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들은 매국적인 대제사장들이나 사두개파 사람들과는 달리 민족적이며, 자기의 경건 생활에 철저한 사람들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요세푸스가 평가한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가장 정확한 해설자이며, 사상적으로 지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어서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완전한 삶의 방식을 제공한 랍비들이었습니다. 바리새주의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개방성입니다. 요세푸스가 바리새인을 ‘합리주의자’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에는 진보주의자들에 속해 있었습니다. 핑켈슈타인(Finkelstein)은 바리새인은 민주주의 정당뿐 아니라, 국민이 일으켰던 진보적 종교운동의 선봉자였으며, 사두개인들은 낡은 성직제도와 지주 귀족층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비판한 종교(인)

그러면 왜 예수님으로부터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혹독한 비판을 받고 책망을 들어야 했을까요? 성서의 형성사적 측면에서 보면 사두개파보다 바리새파에 대한 예수의 비난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실제 역사적 예수의 입장보다는 초대교회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붕괴된 이후에 초대교회는 더 이상 사두개파와 갈등관계에 놓이지 않았으며, 바로 바리새파와 경쟁적 갈등관계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복음서만 보면 그들은 아주 몹쓸 사람들처럼 비쳐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과 정치적이든 종교적으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던 대제사장들과 헤롯당원들과도 연합해서 음모를 꾸밀 정도로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이 그만큼 부담스러웠고 가혹했기 때문입니다. 왜?

당시의 서기관들, 특별히 바리새파 서기관들은 종교나 도덕적 의무 등 모든 것을 율법의 범주 안에 다 집어넣고 그 법을 지키기만 하면 그것이 곧 의(義)라고 판단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학자들의 사상을 가장 광범위하고도 논리적으로 전개시켜 바리새파 사상의 중심으로 끌어왔습니다. 바리새파는 모든 생활 환경과 관련하여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는지 밝히려고 노력함으로써 생활 전체를 통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전통을 보수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로서 모든 불결을 제거하려는 성격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울타리를 친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던 규정들은 점차 그것 자체가 하나의 원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구체적인 문제의 해답을 성서의 구절에서 일일이 찾으려고 애썼고 그렇게 무엇을 해야 옳은지 찾아내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더 자의적인 해석으로 흘러 결국은 자신의 판단이 성서(하느님의 뜻)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의식상 정결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율법의 울타리밖에 있었던 이방인들과의 엄격한 분리를 가져왔고, 정결법에 대한 해석 때문에 사마리아인들과 분리를 초래하였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처럼 정결의 법이나 십일조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지 못하는 동료 유대인들을 멸시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생각에 자기들의 입장과 근접해 있던 예수님이, 어떻게 세리들이나 죄인들과 교제할 수 있었으며(마가 2:15; 누가 15:1-2), 어떻게 안식일 규정을 초월할 수 있었으며(마가 2:23-3:6), 정결의 계명을 무시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율법의 외적인 준수만을 생각하고 마음의 정결을 모르는 위선자라고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누가 11:39-43). 세심하게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어 전적인 순종을 드리는 데는 등한히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판은 그들의 외식과 위선과 관련된 종교적 행위, 실질적인 권력을 잡게 되었을 때에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일에 대해서 입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규정을 모든 상황에 적용하려 하였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거부했던 것은 어떤 종류의 종교였을까? 그것은 자화자찬하기를 즐겼던 바리새파처럼 자신들의 미덕을 거들먹거리는 모든 종교들이었다. 멋대로 판단하고 비난하며, 고통스러운 짐을 나누거나 덜어주려 하기보다, 쉽게 더욱 더 많은 짐을 지우려는 독선적인 모든 종교들이었다. 자신들의 지도자들만을 찬양하고, 그들을 치장하는 것을 자랑하며 그를 위해 값비싼 기념물을 세우는 모든 종교들이었다.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부자들을 이롭게 하는 종교, 버림받은 자들을 경멸하고 속세의 지배자들에게 아첨하는 모든 종교들이었다.” <하인리히 호프만(Heinrich Hofmann)의 “그리스도와 젊은 부자”>

나를 돌아보며...

가을입니다. 계절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법정 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글 중에서 한 대목을 읽으며 묵상합시다.

"누구 탓을 하지 마라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 있는 생물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 우주의 법칙은 자력과 같아서,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밝은 삶과 어두운 삶은 자신의 마음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 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사람은 저마다 홀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속에 떨어진다.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며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을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오늘날 인간의 말이 소음으로 전락한 것은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소음과 다름없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전부 말해 버리면 말의 의미가 말의 무게가 여물지 않는다.

말의 무게가 없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메아리가 없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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