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의 회개와 경제정의: 청지기 비유에 대한 새로운 이해(눅 16:1-13)

*한신대학교 신학과 이병학 교수님의 <경영인의 회개와 경제정의>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기독교적 기업 경영인들이 가져야할 성찰에 대해서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서론적 성찰
2. 죽음의 시장경제 체제에 저항하는 경영인
1) 불의한 경제 제제에서 오염된 청지기
2) 청지기의 회개와 탕감
3) 약자들과 연대한 청지기에 대한 예수의 칭찬
3. 결론

2) 청지기의 회개와 탕감

 주인은 매우 유능하고 믿음직한 사람을 골라서 위탁 경영인으로 삼았다. 청지기는 위탁 경영인으로서 주인을 대리해서 다른 사람들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계약 체결을 서류로 작성함에 있어서 발생하는 모든 법적 책임은 전적으로 주인에게 있다. 그러므로 청지기가 체결한 계약은 주인이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고 또 즉시 효력을 발생한다. 가난한 소작인들과 계약을 체결할 때, 청지기는 항상 주인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 갈 수 있는 조건으로 계약 문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만일 주인이 청지기를 해고하면,  그 청지기는 비록 해고 통지가 부당하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를 떠나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주인의 해고통지에  맞서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이 청지기가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의심하고 해고를 통보하였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1-2절). 여기서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했다는 것은 결코 주인의 재산을 몰래 훔친 횡령이나 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탐욕스러운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윤의 극대화를 통해서 주인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이익이 청지기의 계약 체결에 기대한 만큼 충분하게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주인의 재산적 손실을 의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청지기의 업무에 대한 주인의 비난 혹은 불만의 기준이 그 청지기의 양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최대의 이윤과 재산 증식에 가치를 두는 그 주인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윤리적인 책임성 때문에 주인의 이익을 위해서 충성하였던 과거의 행태를 수정하여 이제부터 점차 조금씩 약자들의 입장을 고려한 청지기의 변화된 계약 체결 행위가 주인의 불만과 해고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갑작스러운 해고 통지는 그 청지기에게 있어서 재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하나의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 청지기는 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한 주인으로부터 의심을 받고 해고된 이상, 낙인이 찍혀서 그런 비슷한 직업을 다시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그는 억울하다고 할지라도 무정한 주인에게 해고를 철회해주기를 간청할 수도 없고, 또 복직을 위해서 투쟁할 아무런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에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3절).

사회적으로 허용되었고 또 요구되었던 시장경제 체제가 가난한 자들의 삶뿐만 아니라, 이제는 청지기 자신의 삶을 파괴하기 위해서 위협한다. 해고 통지라는 압박의 상황에서 약자의 처지에 놓이게 된 청지기는 대출과 이자를 매개로 하는 시장경제 체제가 약자들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죽음의 경제인 것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재물과 자본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적인 경제 구조로부터 오염된 자신을 되돌아보았으며, 비로소 청지기 본연의 자세로 살지 못하였음을 뉘우치고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교활하게 약자들에게 부과한 빚을 탕감하는 것이 빚진 채무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자유와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경제를 실천하는 일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4절).

 그 청지기는 과거에 부채에 시달리는 가난한 소작농을 무정하게 대하였고, 채무징수에 매우 엄격하였다. 그는 항상 주인의 재산증식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까다로운 계약서를 작성하는 법적 지식을 통해서 문맹자들과 힘없는 소작농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을 서슴없이 해왔다. 그러나 이제 약자의 처지에 놓이게 된 청지기는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기 위해서 그들을 불러서 불리하게 작성된 계약서를 다시 고쳤다: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5-7절).

계약서를 고쳐서 빚진 가난한 자들을 탕감하는 청지기의 행위는 불의한 경제체제에 대한 저항이다. 청지기가 계약서를 고처서 자기 주인에게 빚진 채무자들을 탕감해 준 행위는 불법적인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관리하는 일체의 일은 위탁 경영인인 청지기의 고유 권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름 백 말과 밀 백 섬은 원금이 아니라 이자가 포함된 총액이다. 청지기는 채무자들과 계약을 맺을 때 주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높은 이자를 원금에 포함시켜서 계약서를 작성하였던 자신의 과거의 관행을 이제까지 덮어두었는데, 지금 그것을 스스로 완전히 깨뜨려버렸다.

자신의 해고 통지를 통해서 불의한 경제 체제의 가혹성을 경험한 청지기는 부채에 시달리는 수많은 소작농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러한 경제 체제의 희생자들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으며, 과거의 계약 문서들 꺼내어서 주인에게 재산상의 이익으로 돌아갈 몫인 빚 총액에 포함되어 있는 높은 이자 부분을 탕감해주었다. 특히 밀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빚 탕감의 의미는 채무자들의 가족이 먹을 양식이 부족하여 굶주리는 상태에서 그의 탕감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청지기의 행위는 이자를 받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의 궁핍을 도와주라는 구약성서의 율법의 요구에 일치한다(참조, 출 22:24; 레 25:35-37; 신 23:19-20).

불의한 경제에 저항하는 청지기의 회개는 가난한 자들의 빚을 탕감하는 행동에서 진정성이 확인된다. 탕감을 위한 계약서 원본의 수정은 청지기 자신과 채무자에게 있어서 어느 편에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약서 원본에는 청지기의 서명뿐만 아니라, 채무자의 서명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합의해서 직접 문서를 고쳐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계약서를 지운 흔적이 뚜렷하거나 한쪽의 서명만 있으면, 계약파기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청지기의 승인과 협력 없이는 계약서 변경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청지기는 자신의 법적인 지식과 기술적인 지식을 모두 약자들의 해방을 위해서 계약서를 변경하는 데 사용하였다.

3) 약자들과 연대한 청지기에 대한 예수의 칭찬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청지기 비유는 1-7절에서 끝나고, 8-13절은 누가복음의 저자가 편집한 부분으로 청지기 비유의 메시지를 사회와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할 것을 권고하는 예수의 평가이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8-9절).

8절의 “주인”은 비유 속의 부자를 지칭하는 3절과 5절의 “주인”과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인 예수를 지칭한다. 예수는 불의한 경제 체제에서 오염된 청지기가 회개를 통해서 청지기로서의 본연의 사명을 회복하여 자신이 과거에 불의하게 작성하였던 계약서를 고처서 억눌린 가난한 자들의 빚을 탕감하여줌으로써 그들에게 자유와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한 그의 연대적인 행위를 칭찬하였다.

이병학(한신대학교 신학과 신약학 교수)

한신대학교 신학과, 연세대학교 대학원,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

독일 보훔대학교 개신교 신학부 신학박사

경영인의 회개와 경제정의: 청지기 비유에 대한 새로운 이해 (3)으로 이어집니다.

이병학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