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에서 계약신학은 선민사상으로 자주 환원되어,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증언이 교회 중심주의나 기독교 배타주의에 대한 옹호로 변질되곤 했습니다. 근대의 교회가 역사의 창조를 주도하기보다는 제도와 집단의 보존이란 관심에 순응하면서 순수한 신앙에로의 교리주의와 문자주의로 오해되어 길들여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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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오후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에서 열린 '제 2회 기장생태목회자대회'서 김희헌 박사(한신대 연구교수)가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기독교장로교 총회 제공 | ||
계약신학에서 창조신학으로 기독교 신학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한 그는 "신앙인의 창조적 삶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 그 신앙의 현실은 신앙인 사이의 허약한 사교나 종교적 외교의 수준에 서성이고 말 것"이라고 비판한 뒤 '서구에서 기독교 문명이 몰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계약신학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박사는 "폐쇄된 계약신학에 고착된 낡은 정신은 여전히 그 계약사상의 뜻조차 분별하지 못한 채 자기보존만을 위한 사유구조에 갇혀 있다"면서 "그럴수록 기독교는 자기 신앙의 뿌리를 갉아먹으며 죽어갈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체를 끌어안고 살려 낼 수 있는 새로운 영성이 필요하다며 창조신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나님과 창조세계, 그리고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유기체적 관계성에 주목하는 창조신학은 구원의 확실성과 신앙의 신실성으로 계약사상의 뜻을 지켜가면서 그 뜻이 이뤄질 계약지평을 궁극적으로 확대하여 창조세계 전체를 보듬고 나가려는 이상을 길러냅니다."
교회가 창조신앙을 통해 신학적 맹목과 선교(목회)적 무기력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한 김 박사는 "창조신앙은 제사장적 영성과 예언자적 영성의 조화로움 가운데 꽃이 핀다"며 예언자적 제사장과 제사장적 예언자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 되어 '모든 생명의 정의로운 관계를 통해서 평화를 누리게 되는' 비전을 이루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공 김재준 목사의 표현을 빌려 "기독교 신학은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확립해야 한다"며 "이 비전을 상실 할 때 신학은 자신의 고상한 어록에서 지독한 세속성을 드러내고 말며, 교회는 지켜야 할 배타성과 허용해야 할 포괄성을 분간치 못하는 조악함으로 신앙을 저열하게 만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 김박사는 기장이 생명평화의 교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한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생명평화의 교회, 신학, 선교 뿐이라는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 실행으로 △생명평화공동체 지역 운동 본부 만들기 △새로운 교회공동체의 질서와 규율 조성 △평신도 운동 활성화 △생명평화의 목회와 선교 사례 창조 발굴 전파하여 교회선교의 방향 제시 등을 제안했다.
한편, 이날 기장생태목회자대회에서는 김 박사의 기조발제 이후 '농촌교회에서의 생태적 목회', 지평교회 사례를 통해 본 도시목회, 지역에서의 생명평화선교와 교회의 역할' 등 다양한 생태 목회 모범 사례들이 소개되고 토론의 시간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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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 생명평화의 교회공동체로!’를 주제로 한 기장생태목회자대회에서 기장총회 배태진 총무가 “생태선교를 위한 책임 있는 목회활동이 전국 각지에서 샘솟듯이 솟아나고 겨자씨와 누룩처럼 확산되길 기대한다”며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기독교장로교 총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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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기장생태목회자대회에서 발표한 김희헌 박사의 기조발제 전문.
(기장 생태공동체운동본부 제2차 목회자 대회, 2011.02.14)
기장, 생명평화의 교회공동체로!
성서적ㆍ신학적 관점에서 본 생태공동체의 지향점과 목회적 방향
김희헌(한신대 연구교수)
1. 한국 교회현실과 일차적 과제 : 낡은 정신의 포로상태로부터의 해방
미국의 한 신학자(Philip Clayton)는 작년에 출판한 책(Transforming Christian Theology for Church and Society)에서, 미국의 주요교단이 지난 4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해왔고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절반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 이유 9가지를 열거했는데, 그 가운데 몇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오늘날 미국인들은 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교회출석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둘째, 사람들이 교회출석을 하나님과 충분히 강한 연합을 유지하는데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믿지 않는다. 셋째, 전통적 방식의 교회교육이 삶에 필요한 중요한 가르침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넷째, 오늘날 목회자는 자신이 속한 지역공동체의 구심이 되지 못하고, 신학자들은 민족 전체를 향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다섯째, 교회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목을 위해 강력한 신학을 더 이상 구상하지 않고 있다.
이 신학자는 우선 미국교회의 쇠퇴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고 있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기독교식으로)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교회 외부인들의 팽창, 또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의미는 존중하지만 ‘보이는 교회’를 불신하는 교회 비평가들 때문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영적 지도력을 상실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선도자가 되지 못하고 주어진 제도의 관리자로 전락했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교회의 몰락 원인이 아직 이루지 못한 결핍에 있지 않고 이미 실현해버린 과잉에 있다는 점입니다. 결핍에 있다면 앞으로의 실현에 희망을 둘 수 있지만, 과잉에 있다면 자기 자신의 근본적인 재구성 외에 미래란 없게 됩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교회는 소위 대부흥운동이라는 영적각성을 촉구하는 대중적인 흐름을 대체적으로 성공시켜왔습니다. 서구 기독교 문명의 전반적인 쇠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형)교회는 교회사역의 현대적 모델로 (특히 한국에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 미국교회(가 해온 경영기법)의 성공적 실현이 도리어 기독교 신앙을 근본적인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신학적 판단이 커가고 있습니다. 낡은 신앙의 <성공적 과잉>이 기독교 자체에 대한 <전반적 부정>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난 시기를 주도했던 교회활동의 대중적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이미 130년 전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의 아버지도 목사였던 독일의 한 철학자는 낡은 신앙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를 보며 탄식했습니다. “누가 저들을 저들의 구세주로부터 구원시킬 것인가!” 제도의 종교로 전락하여 성공과 번영을 약속하는 구세주를 신봉하는 기독교가 자신의 구세주“로부터” 구원받아야만 할 지경에 놓였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토록 처참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대부분의 교회는 낡은 세계관에 고착된 교리주의와 창조적 모험을 위험시하는 교권주의를 고수하며 스스로의 위기를 심화시켰습니다. 그럴수록, 교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아니라 시대의 정신으로 구원받아야 할 가련한 대상이 되어갔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은 앞에서 말해 온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의 불균형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양적 성장마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젠 거의 분명해졌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교회가 보여준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서 많은 지성인들은 교회활동의 결과물보다 교회가 실현하고자 하는 신앙의 “이상(ideal)” 자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즉 교회의 이상이 실현되지 않아서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요, 교회의 이상이 그 힘에 의해서 관철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더욱 암울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미래를 계획하고자 한다면, 교회에 대한 이런 엄중한 평가를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교회를 사로잡았던 성장주의 정책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나라 운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아왔지만, 이젠 그 질문의 방향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의 성장주의란 자기 이상에 대한 배반일 뿐만 아니라, 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무지와 결합된 소심한 영혼의 관념적인 현실도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새 시대의 빛을 소유하기 위해 먼저 자신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미래를 구상할 때 일차적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낡은 정신의 포로상태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2. 기독교 신학의 패러다임 이동 : 계약신학에서 창조신학으로!
기독교 신학은 오랫동안 <계약신학, covenant theology>의 전통 위에서 신앙을 해석해 왔습니다. 여기서 계약신학이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계약(covenant)이 성경의 본질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에서도 계약사상을 핵심적 원리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의 계약사상은 두 가지에 관심합니다. 첫째, 계약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표현합니다. 언약(계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확고하다! (창9:15, 출6:5, 레26:42, 시105:8, 겔16:60) 둘째, 계약은 계약 백성의 “신실성”의 표현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레11:45, 출19:6, 레 11:44, 민15:40) 따라서 계약신학은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증언과 신앙의 신실성 촉구라는 두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에서 계약신학은 선민사상으로 자주 환원되어,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증언이 교회 중심주의나 기독교 배타주의에 대한 옹호로 변질되곤 했습니다. 또한 근대의 교회가 역사의 창조를 주도하기보다는 제도와 집단의 보존이란 관심에 순응하면서, 신실한 신앙에로의 촉구는 교리주의와 문자주의로 오해되어 길들여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계약신학의 언어는 여전히 치열합니다. 그러나 그 치열한 언어가 신앙인의 창조적 삶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 종교적 치열함은 폭력적인 수사학으로만 존재할 뿐, 그 신앙의 현실은 (신앙인들 사이의) 허약한 사교나 (하나님과의) 종교적 외교의 수준에서 서성이고 말 것입니다. 계약신학에 기초한 서구 기독교의 선민주의 신앙은 실상, 구원을 마치 종교적인 거래의 결과물로 여기고, 그 종교적 외교에서 성공한(했다고 여긴) 집단의 안전한 내적 사교에 관심했습니다. 서구에서 기독교 문명이 몰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이것과 결부되어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계약신학이 몰고 온 이런 폐단에 대한 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1934년 독일의 선교학자 하르텐슈타인(Karl Hartenstein)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말하면서 교회중심적 선교모델을 비판했을 때, 계약신학에 기초한 전통적인 신앙 또한 재평가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는 계약의 주체로 이해되어왔기 때문에, 교회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계약신학의 근거를 부정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에서 선교를 교회의 활동(activity)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본래적인 속성(attribute)으로 보았던 것은, 계약신학에 기초한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 즉, 교회의 배타적 신학과 신앙인의 왜곡된 충실성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분출되기 시작한 유럽의 정치신학과 제3세계의 해방신학은 계약신학(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총체적 비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계약신학에 기초한 신앙의 미덕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지키는 충실성에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계약을 지키기 위한 충실성을 간직하고 또 스스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지키는데 성공했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평가된 교회의 현실은 매우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억압적인 정치사상과 불평등한 사회제도, 그리고 약탈적인 경제구조를 지탱하는데 계약신학이 활용됨으로써, 그런 제도의 번성을 마치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킨 결과로 얻은 축복인 것처럼 해석하는 이데올로기에 도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신학과 해방신학은 유럽의 제국주의적 영광의 신학으로 귀착된 계약신학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신학이라 할 것입니다.
1970년대 이후 (진보적인) 기독교 신학은 이전의 전통적인 신학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서 성서의 해방 전통을 계약의 본래정신으로 복권시켜 사회역사적 억압과 약탈의 제도를 총체적으로 비판하며, 계약의 범주 역시 인간과 역사에서 자연과 우주로 확대하여 온 생명의 유기체적 관계성에 기초한 신학적 세계관을 길러갑니다. 이러한 의식적인 전환은 계약신학의 비판적 재구성을 통한 확대라고 말할 수도 있고, 계약신학에서 창조신학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1970년대 이후의 거의 대부분의 학문, 즉 신학뿐만 아니라 여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역시 사물의 관계성과 생명의 유기체적 창조성을 중시하는 방향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라나서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 문명의식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의식의 혁명이라고 불릴만한 이 변화는 계약신학에 기초한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틀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창조신학을 증진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시대적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 오늘날의 신학은 기독교영성이 폐쇄된 신앙구조 안에서의 충실성(fidelity)이란 가치보다, 창조 세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누릴 평화에 대한 감수성(sensibility)의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네 명이 맺은 계약구조 안에서 넷이 서로 계약에 충실할 때 다섯 번째의 사람은 항상 이방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네 명이 맺은 계약구조 역시 그것을 둘러싼 전체 생명의 도움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깨달은 정신은 그 계약의 뜻을 도리어 묻습니다. 이렇게 뜻을 추구하는 정신/영혼/영성은 계약준수로 얻게 될 자기 몫의 향유가 아닌, 보다 넓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생명세계의 평화를 세우는 일에 관심합니다.
창조신학은 새로운 영적 감수성을 요구합니다. 이 감수성은 시대정신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정신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회학이 필그림의 후예들이 자행한 인디언 학살을 정당하다고 말하겠습니까? 오늘날 어떤 정치경제학이 비기독교권의 제3세계 민중들의 고통 위에 세워진 유럽 기독교문명의 풍요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찬양하겠습니까? 오늘날 어떤 종교인류학이 기독교신앙의 이름으로 불상을 훼손하고 토착종교문화를 폄하하는 것을 용인하겠습니까? 그러나 폐쇄된 계약신학에 고착된 낡은 정신은 여전히 그 계약사상의 뜻조차 분별하지 못한 채 자기보존만을 위한 사유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그럴수록 기독교는 자기 신앙의 뿌리를 갉아먹으며 죽어갈 뿐입니다. 전체를 껴안을 수 있고, 전체를 살려낼 수 있는 새로운 영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창조세계, 그리고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유기체적 관계성에 주목하는 창조신학은, 계약사상의 뜻(구원의 확실성과 신앙의 신실성)을 지켜가면서, 그 뜻이 이루어질 계약지평을 궁극적으로 확대하여 창조세계 전체를 보듬고 나가려는 이상을 길러냅니다. 이 이상은 관계와 소통이 파괴된 세상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에 대한 기독교신앙의 응답이자, 기독교영성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길러낸 긍지입니다. 기독교회가 창조신학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재구성하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요, 성경이 시절을 따라 새롭게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적 신실함의 징표라 할 것입니다.
3. 성경 속의 신앙의 이동경로 : 계약신앙 확장을 통한 창조신앙의 보편적 가치 획득
우리 기독교인은 성경을 구약(옛 언약)과 신약(새 언약)으로 구분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관점에서 신앙을 해석하는데 익숙합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수많은 계약(언약) 언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과 맺은 계약 이야기는 신앙의 원형(archetype)처럼 이해되곤 합니다. 사실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핵심사항 가운데 계약사상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성경은 계약신앙에서 창조신앙으로 발전해 간 이스라엘 신앙의 변화를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변화는 계약 범주의 끊임없는 확장 즉, 배타적인 부족이나 민족 단위의 계약신앙에서 온 인류와 우주라는 포괄적인 범주로 확장해 간 이스라엘 신앙의 성숙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성숙은 ‘자기보존을 향한 배타성’에서 ‘보편적 가치를 위한 신실성’으로의 자라남입니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문자주의와 교리주의는 피해야 할 가장 큰 적일 것입니다. 구약성경 안에 있는 계약신앙의 언어는 대부분 신화적인 이미지로 채색되어 있고, 또 본래 부족신앙이란 좁은 세계관에서 태어나 그 세계관에 어울리도록 형상화되었기 때문에, 계약신학은 문자적 충실성보다 그 의미의 해석에 관심해야만합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침공과 점령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마치 야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였다고 해석한다면, 오늘날의 (신앙)양심은 성경의 그 증언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더군다나 침공에서의 승리와 점령에 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 수용하기 위해, 계약을 지킨 백성에게는 그에 합당한 선물이 주어진다는 식으로 문자적 증언을 교리주의로 뒷받침하려 한다면, 성경의 본래 정신은 훼손되고 말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에 나타난 계약사상의 두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1장부터 11장까지의 (2장을 제외한) P문서와 12장부터 50장까지의 J문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두 문서는 같은 계약 언어를 사용하지만 계약의 범주와 약속에 대한 이해가 다릅니다. J문서에 나타난 아브라함(15,17장)과 야곱(28:10~22)의 이야기는 계약 당사자인 족장에게 주어질 <땅과 자손의 축복>에 관한 약속에 관한 것이지만, P문서가 기록한 노아 이야기(9:8~17)는 노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에 관한 것으로서 그 범주가 피조물 전체로 확대되며 그 약속은 <모든 피조물의 생명과 평화>입니다. J문서와 P문서 사이에 있는 이러한 차이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십여 세대 동안 겪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이런 대조는 구약성경 전체를 역사적 안목에서 바라볼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J문서가 기록된 왕조시대의 신앙과 P문서가 기록된 포로기 신앙 사이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경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언자들의 등장입니다. 예언자들 역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중요성을 강조 했습니다 (사49:8, 렘11:4, 겔16:60, 호2:18). 그러나 그 언약의 내용은 보존(reservation)이란 가치가 아니라 의(righteousness)의 가치를 지키는 것으로서, “평화의 언약”(사54:10, 겔34:25) 또는 “생명과 평화의 언약”(말2:5)입니다. 그 언약은 할례나 제사나 율법의 준수에 의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따르는 신실함에서 지켜집니다. “시온은 정의로 구원을 얻고 돌아온 사람들은 공의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1:27)”는 메시지는 예언자들의 정신을 대변합니다. 이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언약은 그 범주마저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호2:18)”에게까지 확장됩니다. 우리는 예언자들에 의해 새롭게 세워진 계약정신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여 정경으로 등록시킨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성숙을 통해서, 본래 부족이나 민족이라는 제한적인 구조 속에서 자기보존의 논리로 출발했던 계약사상이 보편적인 이상(생명, 정의, 평화)으로 정화되어갔음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계약의 범주 역시 창조세계 전체로 확장되어갔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바벨론 포로 경험입니다. 이 경험은 계약백성의 자기보존이라는 낡은 논리 즉, 하나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교리적 이해의 파산을 의미합니다. 낡은 계약사상의 논리로 볼 때, 계약백성이 포로로 끌려간 현실은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공동체는 하나님의 경륜(언약)을 보다 커다란 지평으로 확장시켜,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사40:26)”하고 자문하면서, 창조신학을 통해 스스로를 낡은 계약사상에서 해방시킵니다. 포로기의 경험은 위기를 통해 재창조된 신앙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 신앙공동체의 세계관은 창조세계 전체로 확장되었고, 그 신앙은 창조주의 보편적인 구원의 경륜 앞에서 실존의 위기를 해석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계약사상은 줄곧 작동하지만, 그 내용과 의미는 예언자의 시대와 포로기를 거치면서 재편성됩니다. 그리고 이 변화를 통해서 이스라엘 신앙은 부족종교를 넘어선 고등종교의 필수요소인 보편성(universality)을 얻습니다. 그 신앙이 보편적일 수 있는 것은, 첫째, 부족/민족 단위의 사고에서 창조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세계관의 확장 때문이요, 둘째, 자기보존과 내부 구성원의 번영에 대한 관심에서 생명ㆍ정의ㆍ평화에 대한 철저한 신실성(sincerity)으로 그 윤리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계약신학의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문자주의와 교리주의에 기초한 배타적인 계약사상을 대변하는 신학적 과오는 피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닫힌 계약신앙에서 열린 창조신앙으로 성장해가며, 종교정신의 보편적 가치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 신앙은 사두개적 성전종교와 바리새적 율법종교로 굳어져가는 위기를 다시 맞기도 했지만, 스스로 길러낸 종교정신에 불멸의 영성을 불어넣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창조세계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엄중한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의 “영원”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신앙(전3:1~14), 인과응보의 제도교리에 맞서 싸우는 실존의 철저한 항거(욥기), 악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추구하는 신앙(합1:2), 이 모든 살아있는 종교정신들은 창조신앙의 광활한 지평 위에서 전개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주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평화의 바실레이아)과 사도바울을 통해 고백된 “성령의 생명과 평화의 정신(롬8:6)”은 성경의 긴 역사가 길러온 창조신앙의 정점에서 꽃핀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4. 창조신앙이 요청하는 신학적ㆍ선교적 감수성
기독교의 창조신앙은 성경의 신앙공동체가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세계관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온 우주의 상호관계가 만들어내는 창조적 사건을 신앙의 빛에 따라 해석하고 살아갑니다. 이 창조신앙은 창조신화를 교리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창조세계의 의미와 방향을 묻고, 창조주 하나님의 활동을 피동적으로 찬양하기보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창조활동에 주목하고 참여하고자 합니다. 또한 창조신앙은 신앙공동체의 고유한 독특성을 지키려는 생각에 빠져 종교적 배타성과 타협하기보다, 자기 시대를 불러일으켜 세울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의 낡은 사고방식을 변경하는 데 민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활동은 “우주만물을 통하여(엡4:6)”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주만물의 하나님 경험을 포괄하여 해명할 수 있는 보편성의 획득만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원”에 잇대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보편성은 특정한 종교사상이 일방적으로 소유하기에는 너무 크고, 또 철학적 사유에 의해 합리적으로 파악되기에는 너무 생생합니다. 만물을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게 (행17:28)”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인간이 모두 알 수 없다고 대부분의 시인들은 고백합니다. 물론 우리는 계시적 성찰(기도)의 순간에 하나님의 빛을 경험하고, 순수한 헌신의 순간에 하나님의 사건에 참여하는 희열을 맛봅니다. 그러나 “사망의 몸”(롬7:24)을 입고 분투하는 인간현실은, 오직 하나님만이 소유할 수 있는 보편성을 얻지 못하고, “멀리 숨어계시는(시10:1)”는 하나님을 경험할 뿐입니다. 따라서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를 지나가면서, 오직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3:11)”으로 살아가는 적멸의 지혜가 신앙의 실존논리를 채웁니다.
그러나 문제는 삼라만상의 다채로운 경험이 만들어내는 만화경의 세계 속에서, 신앙인의 “영원 사모”가 어떤 방식의 삶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과연 “죽일 때와 치료할 때, 허물 때와 세울 때, 입 다물 때와 말할 때”는 어떻게 분별되는 것입니까? 긍정과 부정의 기준, 배타적으로 지킬 것과 포괄적으로 허용될 것의 범주는 어떻게 확정되는 것입니까? 이 질문은 신앙의 실존이 매 순간 부딪치는 문제로서, 변별의 감수성을 지닌 직관을 필요로 합니다. 창조신앙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학적 감수성과 선교(목회)적 감수성을 요구됩니다.
기독교 신학은 종종 스스로를 하나님의 진리로 간주하는 자아도취적 유아론에 빠지거나, 창조주의 무한성과 피조세계의 유한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에 심취함으로써 신학적 감수성을 일그러뜨려 왔습니다. 신학자 P. 틸리히는 제도적인 신학의 두 가지 왜곡을 비판했습니다. 첫째는 피조세계의 특정 제도(질서)와 사상(교리)을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현실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신학적 마성화입니다. 둘째는 현실제도를 뛰어넘기 위해 발휘되는 노력도 결국 유한세계 안에서의 상대적(세속적) 놀음일 뿐이라고 조롱함으로써, 신앙의 모든 숭고한 분투를 부질없는 것으로 매도하는 신학적 불경화입니다. 마성화와 불경화는 기독교 신학을 타락시키는 대표적인 두 요인으로서, 감수성을 상실한 기독교 신학이 저지른 죄악이라 할 것입니다. 감수성을 상실한 신학은 “허물 때와 세울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지성의 죄악을 저지르고, 허물 것을 세울 것이라고 우기는 윤리적 죄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다른 한편 제도교회는 제사장적 역할과 예언자적 역할을 서로 구분시켜, 목회와 선교현장에서 빗나간 대처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유린하곤 했습니다. 제도교회는 (강자들의 억압에 대해) 예언자적 비판이 필요한 때에 제사장적 축복을 베풀고, (약자들의 고난에 대해) 제사장적 위로가 필요한 때에 예언자적 심판을 하기에 익숙합니다. 그럴수록 교회는 사두개적 제사장과 바래새적 예언자만 양산할 뿐, 세상의 탄식과 희망에 둔감해져 스스로 고립되어 갑니다. 세상의 탄식과 희망의 소리 즉, “문 밖에서(계3:20)” 두드리는 소리에 둔감해진 교회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교회로서, 무수한 예언자와 제사장을 거느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미래를 이끌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마저 소멸하여 영적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 교회는 창조신앙을 통해 신학적 맹목과 선교(목회)적 무기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신학적 맹목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주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길(행2:28)”의 재발견입니다. 장공 김재준의 말을 빌리자면, 기독교 신학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확립해야 합니다. 이 비전을 상실할 때, 신학은 자신의 고상한 어록에서 지독한 세속성을 드러내고 말며, 교회는 지켜야 할 배타성과 허용해야 할 포괄성을 분간치 못하는 조악함으로 신앙을 저열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창조신앙은 하나님께서 영과 육을 아울러서 만들어가는 창조세계의 충만한 기쁨에 참여하는 정신입니다. 이 정신은 영과 육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기보다는, “육의 마음판에 써진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고후3:3)”을 분별합니다. 이 신앙을 대변하는 신학적 세계관은 “영과 육의 싸움”을 생생한 감수성으로 포착하면서, “생명과 평화의 영(롬8:6)”이 이끌어 세워가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또한 교회는 창조신앙을 드높여 선교(목회)적 무기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창조신앙은 제사장적 영성과 예언자적 영성의 조화로움 가운데 꽃핍니다. 모든 창조는 과거의 양육과 미래의 새로운 가치, 이 두 요소가 오늘이란 지평에서 조화롭게 만날 때 이뤄집니다. 교회의 사목활동 역시 제사장의 양육정신과 예언자의 비판정신이 어우러진 활동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두개적 교권주의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 <예언자적 제사장>과 바리새적 교리주의에 취하지 않은 <제사장적 예언자>가 등장해야 합니다. 이 예언자적 제사장과 제사장적 예언자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 되어 “모든 생명이 정의로운 관계를 통해서 평화를 누리게 되는” 비전을 이루어갈 것입니다.
창조신앙의 신학적ㆍ선교적 감수성은 생명ㆍ정의ㆍ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정신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생명평화의 공동체”의 비전을 세워가는 것이 실로 중요합니다. 개혁교회가 본래 지닌 모험정신을 회복하여, “골인할 때까지!” 이 비전을 밀고나가는 것이 교회를 회복시키고 세상을 살리는 바른 길입니다.
5. 기장 생태공동체운동의 지향점 : 생명평화 공동체 형성을 위한 목회와 선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2008년 <기장생태공동체운동본부>를 설립하고, 매우 활발하게 일을 추진해온 것은 기쁜 일입니다. 기장의 생태공동체 운동은 짧은 기간 동안에 그 중요성을 직감한 깨어있는 목회자들의 헌신적인 참여로 실행/실무구조를 갖추고, 자매교회들의 두터운 후원으로 재정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작년 1월 초엔 100여명의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 이 운동을 드높이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이 힘이 2월 17일부터 237일 동안 진행된 <금식릴레이기도>로 나타났고, 이 활동으로 생명파괴의 대명사가 된 정부의 <4대강사업>에 맞선 기장인의 신앙정신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태공동체운동본부>가 사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장교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생명평화신앙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태공동체운동본부>가 지난 3년 동안 기초 작업을 잘 다져왔고, 또 교단 내에 존재하는 건강한 목회자 모임들의 결속을 이끌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보다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고, 보다 체계적인 활동이 가능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기장이 “생명평화의 교회 공동체”를 이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한 비전을 공유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고백할 수 있는 교회는 오직 <생명평화의 교회> 뿐이라는 믿음을 공유해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갈 길을 잃고 개 교회의 생존을 위한 약육강식의 논리에 빠져있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 교회 성장주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보다 절박한 심정과 보다 과감한 실행으로 생명평화의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신앙을 담을 수 있는 신학은 오직 <생명평화의 신학> 뿐이라는 믿음을 공유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교리주의에 빠져 반지성주의의 어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신조와 교리에 갇혀있지 않고 오늘도 생명과 평화를 꽃피우기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학과 고백의 자리는 생명평화의 일터요, 이 일터에서 얻은 지혜만이 오늘 일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기장이 간직해온 신학의 자유정신을 되살려, 새 시대에 합당한 새 고백을 써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교회가 해야 할 선교는 오직 <생명평화의 선교> 뿐이라는 믿음을 공유해야 합니다.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랑을 자신이 해온 방식대로 해가며 상대방의 존엄과 미래를 훼손하는” 배타적인 기독교 선교는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교회의 활동이 조롱당하고 있는 이 비극적인 현실에서, 이제 기독교선교의 진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죽음과 거짓, 가난과 파괴에 맞서 싸우다 얻은 우리 몸의 흔적(stigma) 이외엔 거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이 되었듯이, 아골 골짜기와 빈들에서 우리가 입은 고난의 상처는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위와 같은 비전의 공유를 전제할 때, <생태공동체운동본부>가 실행할 수 있는 당면과제를 몇 가지 제안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생명평화공동체 <지역 운동지부>를 만들어서, 이 운동이 자발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운동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010년도의 활동(릴레이금식기도회의 사례)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집중적이었기 때문에, 시작단계에 있던 이 운동을 알리고 힘을 결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지역 지부의 건립과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총회 평화공동체운동본부, 노회별 교회와사회위원회, 기장전국농목, 생명선교연대와 같은 공식 단위와 기타 비공식적 단위의 각급 모임을 고려하여, 보다 효과적인 연대와 활동이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여 지역지부 건립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 <생명평화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회공동체의 질서와 규율을 조성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지난 시기를 물들여왔던 “왜곡된 오만”과 “강요된 굴욕”으로 어긋난 교회간의 관계를 청산하고, 상생의 교회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교회를 뒤덮은 “대교회중심 성장주의 모델”이 초래한 가장 큰 교회 내적 폐해는 “거룩한 공교회 (catholic/ecumenical church)”의 고백을 상실한 것에 있습니다. 복음의 비본질적인 요소에 집착한 경쟁구도 속에서, 오직 생존과 성장이란 목표에 시달리는 동안, 공교회 정신은 죽고 성도간의 형제자매 의식은 거세되고 말았습니다. 성장주의 모델의 종말이 확연한 이때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회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에 맡겨진 교회간의 임무와 역할을 변경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대형교회는 지구촌교회를 퇴임하면서 이동원 목사가 했던 다섯 가지 참회 가운데 첫 번째 사항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중대형 교회는 왜곡된 영적 오만을 꺾고, 자매교회를 옭아내는 결과를 초래할 성장정책에 사용되는 인적ㆍ물적 자산을 전환하여, 보다 과감하게 예언자적인 사회선교를 벌여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가난한 교회의 고통과 탄식 속에 간직된 영적 순수성을 배울 수 있도록 교회간의 교류를 촉진시켜야 할 것입니다. 중소형 교회는 성장주의 시대의 유물인 “강요된 굴욕”에 머무르지 않고, 참된 생명평화의 제사장적 활동이 가능한 영역을 창조적으로 계발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는 (사11:6)” 그 나라에 관한 성경본문은, 이 시대 한국교회가 새로운 교회공동체를 꿈꿀 때 교훈으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그 활로를 지역단위의 공동체운동으로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위의 두 가지 과제를 해내려면, 평신도 운동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교회의 정력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한시 바삐 개교회 안에서 생명평화의 씨앗을 심고 길러가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생명평화의 공동체>의 주역은 깨어있는 평신도일 것입니다. 개 교회(와 지역의 연합교회)는 아주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해당지역의 요청에 부응하는 생명평화의 활동을 시작하고, 성도들이 그 활동의 주체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넷째, 생명평화의 목회와 선교의 사례를 창조ㆍ발굴ㆍ전파하여 교회선교의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성장주의 시대의 쇠퇴를 맞아, 교회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목회와 선교 프로그램을 계발해야 할 실정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의 활동사례와 선교정책에 대한 모델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는 대교회주의 매뉴얼에 의존하고 있는 목회현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장 교단이 보유하고 있는 선교 프로그램의 창조적 자산을 점검하고, 수렴하고, 또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계발을 해가면서, 생명평화의 목회/선교를 구현할 방향을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기장, 생명평화의 교회공동체로!”라는 주제를 마음에 품고 함께 모여 미래를 꿈꾸는 선후배, 동료 목회자들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신용철 기자 edito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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