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미지는 이 칼럼과 무관하다는 점을 알린다) 한 초등학교 가을축제 모습. ⓒGetty Images

사립학교는 회사와 비슷했다. 그도 그럴것이 사립학교에선 학부모가 내는 등록금이 학교운영을 위한 절대적인 수입원이기 때문에 학생은 서비스를 받는 ‘고객’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고객을 유치하는 ‘신입생 모집’과 ‘홍보’는 학교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 된다.

물론 기업으로 따지면 ‘쌤숭’과 같은 초일류로 분류되는 곳은 가만히 있어도 신입생들이 줄을 서서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같은 곳은 무엇보다도 신입생모집을 위한 ‘홍보’가 최대의 역점 사업이 된다.

어느 해 가을, 학교에선 ‘유치원 초청행사’ 축제를 준비하느라 한창이었다. 새롭게 임용된 교장은 재단의 눈에 들고자 이 부분에 특히 공을 들였고, 화려하고 볼만한 공연들을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교사들을 갈아넣었다.

하지만 그 멋진 행사들은 우리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닌 오직 ‘홍보’ 그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마도 현재 아이들은 이미 잡은 물고기라 생각하고, 이제 잡아야 할 물고기인 유치원생들을 주 타겟으로 했을 것이다.

2학기가 시작되고 대운동회를 끝낸 시점에 또 가을축제라고 연일 공연준비를 하니 수업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매일 같이 수업을 빼서 운동장에 나가 줄을 세우고, 공연 대형을 맞추고 이런 일과가 10월중순부터 11월까지 이어졌다.

비록 사회초년생이고 처음으로 학교의 업무를 배워가는 과정이었지만, 이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해야하는 공연준비를 건너 뛰고 나는 너무나 ‘대담하게’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공연 준비를 모니터링하던 교장이 갑자기 성난 얼굴을 하고 우리 교실로 들이닥쳤다.

“선생님, 지금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아, 지금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행사 준비는 어떻게 하고요?”
“교과 진도가 좀 밀려있는데다, 제 판단으로는 아이들이 이미 충분하게 공연 준비를 마쳤다고 봅니다.”
“아니, 지금 중요한 행사가 바로 코앞인데 한가롭게 수업이나 하고 있을때입니까? 그리고 누가 선생님 마음대로 이렇게 행동하라 했습니까!!”

교장의 폭풍과 같은 질책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도 대충 알고 있었다. 저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선생님, 우리 다시 책 덮고 나가야 하나요?”
“아니, 이미 혼날 것 다 혼났으니 연습은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하던 것 마저 해야지.”

그렇게 교사와 아이들을 갈아 넣어서 준비한 가을축제는 어찌어찌 마무리가 되었지만, ‘대체,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나뿐만이 아닌 학교 구성원 모두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해 말, 학교는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학부모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으로 교장은 다음 해에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 교장의 퇴진으로 폭풍 속의 학교는 어느 정도 평온을 찾게 되었지만 ‘수업’보다 ‘홍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에서 내가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앞으로의 사립학교 생활 내내 나를 따라다니는 고민거리가 되었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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