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타리 밖에서 자기가 다니던 회사 안을 바라보고 있는 한 노동자. 안은 철망으로 가로 막혀 있고 회사 마당에는 용역들이 관리직원 행세를 하며 진을 치고 있다. ⓒ 에큐메니안 김희헌

벌써 45일째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억울한 자리로 몰아가고 있는가?
충남 아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 노동자 5백여명은 논바닥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성중이다. 이 더운 날에 말이다.

▲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임시농성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옆에 있는 고가철로에는 KTX가 수시로 지나 다닌다. 시속 300 킬로미터의 속도로 지나가는 시원한 열차 안에서는 이곳에서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 에큐메니안 김희헌

현재 회사측은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회사를 장악하고 있으며, 소위 공적권력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 경찰은 노동자들의 회사 접근마저 22일째 가로막고있다.

나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나서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사태가 2009년에 노사합의로 체결된 <합의사항>을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깨뜨리면서 생겨났다는 것을...

유성기업 노동조합은 회사측의 <합의사항> 파기에 대처하기 위해, 금년 들어 12번에 걸친 교섭을 가졌다. 그러나 서로 접촉점을 찾지 못하자, 노동조합은 충북지방노동위에 조정신청을 내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그러나 파업다운 파업 한 번 벌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뱀처럼 지혜로운 회사측은 파업 당일 직장을 폐쇄조치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출근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그후 회사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온갖 사적(私的)폭력을 저지르고 있다.

▲ 회사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대한민국의 공적 권력. 이들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이곳을 통과하는 것을 22일 동안이나 막고 있다.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7월의 더위에 비닐하우스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이들이 지키고 있는 뒤편 회사 안에는 용역들이 있다. 이날은 기도회를 드리러 온 사람들을 위해 막힌 길이 터졌다. 이런 중세시대가 어디 있을까? 종교인은 공적권력의 보호대상이지만, 노동자는 아니다. ⓒ 에큐메니안 김희헌

파업이 시작된 5월 18일 밤(19일 새벽)에는 정체불명의 대포차량이 노동자들에게 돌진하여 13명이나 피흘리며 쓰러지는 사태마저 발생했다. 그러나 경찰은 차량을 몬 의문의 사람은 불구속시키고 귀가시켰다. 그것도 교통과에서 조사를 한 후에. 대신 지난 6월 22일 이후 충남지방경찰청은 아산경찰서에 127명 규모의 합동수사본부를 차리고 이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한다.

도대체 누구를 수사하려고 하는 것일까?

7월 2일(토요일) 오후 3시,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위한 시국기도회"가 충남 아산공장 앞에서 열렸다. 경찰의 방해로 집회조차 갖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99 차례나 길거리 예배를 드려온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이 아산까지 달려간 것이다. 모처럼 열린 집회공간에는 유성기업 노동자를 비롯하여 원근각처에서 격려하기 위해 수백명이나 참석했다.

▲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이 주관한 예배 장면. ⓒ 에큐메니안 김희헌

받아든 순서지 맨 앞에는 이 예배가 무슨 믿음 가운데 드려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잃어버린 삶을 회복하는 새로운 기독운동이 절실한 때입니다... 한국교회 일반이 지극히 개인적 영성에 치우쳐 있는 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정치투쟁만으로 표현하는 데는 지극히 한계를 가집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참여의 영성을 키워나갈 장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을 훈련하는 장은 예배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통해 우리들의 영을 새롭게 하지 못한다면 이 시대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보다 앞서서 고난 받는 민중의 현장에 참여하고 계시며 그들과 함께  싸우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가장 필요한 현장을 찾아가 예배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시대에 가장 절실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창립선언문> 중에서.

▲ 예배 사회를 맡은 최헌국 목사 (생명평화교회, 예수살기 총무). ⓒ 에큐메니안 김희헌

예배는 사회를 맡은 최헌국 목사의 예배부름으로 시작되었다.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서는 얼굴을 돌리신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열심으로 선한 일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베드로전서 3장 12--14절)

함께 부른 찬송은 뜨거운 아스팔트보다 더 뜨거웠다.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이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임인수 목사(새암교회)의 중보기도 후에는 4명의 <시대의 증언>이 이어졌다.

첫 번째 증언자는 민주노총의 김영훈 위원장이었다. 김위원장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것으로 발언을 시작하였다. "오면서 신문을 봤습니다. 유성기업에서 납품하는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 일가의 재산 총액이 삼성 이건희 가를 앞질러 한국 최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액수는 7조원에 이른답니다."라고 말하면서, 재벌공화국을 비판했다. 이어서 유성기업에 노동자에 대한 경찰의 대처는 "무법천지" 자체라고 소리를 높이면서, "경비업법까지 위반하면서 용역깡패를 동원해 횡포를 부리는 회사측을 수수방관하는 경찰은 공권력을 어디에 사용하는가 ?" 하고 물었다.

▲ 시대의 증언을 하고 있는 유성기업비상대책위원회 윤영호 위원. ⓒ 에큐메니안 김희헌

두 번째 증언자는 윤영호 유성기업 비상대책위원이었다. 그는 노동조합 지도부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대신 나왔다. 윤위원은 "모처럼 회사 정문 앞에 서있으려니 감개무량하고 감사하다."고 운을 떼었다. 그리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밤에 잠을 자고 싶다는 것은 사치가 아닙니다. 평균 나이 42세의 노동자들에게 10년~20년의 야간 노동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렇게 일하다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퇴근버스에서 심근경색으로 죽거나, 은퇴 후에도 영문을 알 수 없는 돌연사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회사측과의 교섭과정이라는 상황에서마저 참지 못하고 자결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마저 벌어졌는데,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입니까?" 이 말을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탄식을 뱉어냈다.

세 번째 증언자는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상임대표였다. 그는 "45일째 투쟁하는 동지들께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잠 좀 자자,' '노사합의를 지켜라'라는 단순하고도 정당한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경찰과 법원과 회사가 합작을 이뤄 7,80년대 방식의 총체적 탄압으로 응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울러 "경찰이 민중의 몽둥이가 되어 살인미수범은 놓아주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노동자는 구속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함께 연대투쟁을 해나가자고 호소했다.

▲ 이화여대 민중연대실천단 <거침없이>의 공연장면. ⓒ 에큐메니안 김희헌

세 차례의 시대 증언이 있고 난 후, 이화여대 민중연대실천단인 <거침없이>의 공연이 이뤄졌다.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트위터에서 '대포차'에 치어 다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보면서, 연대투쟁 공연에 나설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설교자로 참석한 문대골 목사(한국기독교 평화연구소 소장)가 '몸으로 사는 특권'이라는 주제로 증언했다. 문목사의  성서증언에 대해 참석자들은 큰 공감으로 화답했다. 설교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살아갈 때 성막을 갖고 이동하며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성막 기구는 수레에 싣고 다녔지만, 가장 중요한 법궤는 몸으로 지고 다녔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몸으로 지고 가는 법입니다. 시대의 짐을 몸으로 지고 가는 사람이 역사의 주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이 역사의 주인입니다. 온 우주가 진화해 나간다면, 그것은 나눔이 확대되는 방향일 것입니다. 사슴과 다람쥐가 많은 반면, 힘센 호랑이가 멸종해가는 것은 혼자 독식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룬 것을 혼자 독식하는 자들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의 주인입니까? 나눔과 공감의 문화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 일에 함께 매진합시다!"

▲ 시대에 대한 성서의 증언을 하고 있는 문대골 목사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소장). ⓒ 에큐메니안 김희헌

이날 시국기도회에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격려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대전충남보건의료단체연대회의>에 소속된 다섯 단체 대표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야간노동철폐 투쟁을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시작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투쟁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시대가 요청하는 절박한 장소에서 드려진 이날의 예배는 기독교 신앙이 나아가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예배를 마쳤다.

▲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는 임인수 목사 (새암교회). ⓒ 에큐메니안 김희헌

▲ 시대의 증언을 하고 있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 에큐메니안 김희헌

▲ 시대의 증언을 하고 있는 진보연대 박석운 상임대표. ⓒ 에큐메니안 김희헌

▲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투쟁기금을 전달하고 있는 <대전충남보건의료단체연대회의> 대표들. ⓒ 에큐메니안 김희헌

▲ 시국기도회에 참석한 한 가족. ⓒ 에큐메니안 김희헌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회는 계속된다. 7월 4일(월) 오후 8시에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가 주도하는 촛불기도회가 아산 공장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이날 시국기도회를 담당했던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7일(목) 7시 30분 시청앞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100차 기도회를 연다.

김희헌 편집위원장  kimhiheo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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