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hn Steeple Davis, ⟪The Covenant Confirmed⟫ (19세기 말) ⓒWikipedia
▲ John Steeple Davis, ⟪The Covenant Confirmed⟫ (19세기 말) ⓒWikipedia

1.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과 규례’를 주실까?

우리는 ‘명령’과 ‘규칙’, ‘규례’라는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굳어집니다. “자유롭게 살기도 바쁜데, 또 지켜야 할 게 있나?” “신앙은 마음이지, 왜 이렇게 자꾸 하라, 마라가 많지?” 이런 생각이 우리 안에 솔직히 올라옵니다.

오늘 본문은, 민수기 전체를 마무리하는 한 절입니다. “이것은 …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들이다.” 민수기의 끝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살았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선택을 했다’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명하신 명령과 규례이다.” 즉, 이 광야의 모든 여정, 실패와 눈물, 회복과 은혜의 역사의 배경에는 항상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가 있었다는 고백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한 절을 붙들고, 세 가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명령과 규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어서, 민수기 전체의 흐름 속에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살리는 은혜로 받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명령과 규례’의 참된 의미

먼저, ‘명령과 규례’가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명령은 ‘미츠보트’라고 하고, 규례는 ‘미쉬파트’라고 하는데, 우리말에서 느껴지는 그런 법적인 규칙이나 하달사항이 아닙니다. 언약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성경이 말하는 ‘명령’은 길 안내 표지판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길이 생명의 길이다. 이 방향으로 걸어라’ 하고 가르쳐 주신 길입니다. 광야에서 어느 지파가 어디에 진을 치고, 누가 언제 나팔을 불고, 누가 성막을 메고, 어떻게 제사를 드리고, 무엇을 정결하게 하고,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규례’라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의 현실 삶과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구조가 된 것입니다. 땅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약한 사람의 기업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이에게는 어떻게 피할 길을 줄 것인가, 재판은 어떻게 공정하게 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죠. 공동체가 서로를 살리기 위해 지켜야 할 질서와 공정의 원칙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건 명령이고, 이건 규례야’ 하고서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내 마음대로, 내 편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대로 살도록’ 제시해 주신 안내입니다.

명령과 규례는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족쇄가 아니라, 우리를 생명 쪽으로 돌려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과 규례’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네 맘대로 살아라’ 하고 방치하지 않으시고, ‘이 길로 와라, 이렇게 살아라’ 하시며 우리 삶에 방향과 울타리를 세워 주셨다는 뜻입니다.

3. 민수기 전체를 흐르는 하나님의 의도

이제 오늘로 민수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는데요. 민수기는 세 덩어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장부터 10장까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가나안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내용입니다.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11장부터 25장까지인데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시험 이야기입니다. ‘백성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광야 시험장’입니다. 26장부터 36장 끝까지가 마지막 부분인데, 새로운 세대를 다시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새로운 세대를 다시 세워가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민수기는 단순하게 광야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들려주는 이야기책이 아닙니다. 민수기 전체를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명확한 의도가 있습니다.

(1) 질서를 세우신 후에 움직이게 하시는 하나님 (1–10장)

민수기 첫 부분을 보면,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출발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거의 두세 달 동안 이 첫 부분을 반복하고 반복해서 말씀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인구조사를 통해서, 누가 하나님의 군대에 속해 있는지를 면밀하게 셉니다. 가문별로 진영을 배치하면서, 성막을 중심으로 각 지파의 자리를 꼼꼼하게 정하십니다. 레위인의 직무를 맡기시고, 나실인 규례를 정하시고, 갖가지 제물과 제사의 규칙을 정해주십니다. 그런 뒤에 비로소 나팔을 불어 행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대충 가다 보면 되겠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광야길을 가는 동안, 이스라엘이 그들 가운데 중심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질서를 세우십니다. 그 질서를 이해하고, 그 질서에 순종하고, 그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언약의 땅으로 가게 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너희의 삶의 위치, 삶의 역할, 모든 행동과 모든 쉼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대로 세워진 후에야, 진짜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가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그분이 정하신 질서와 말씀 안에서 경험됩니다. 교회 안에는 예배의 질서가 있고, 직분과 사역의 질서가 있습니다. 가정에도 관계의 질서가 있고, 사랑의 질서가 있고, 섬김의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신비한 체험을 하면서 ‘와, 하나님이 여기 계시네?’ 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거룩한 질서 속에서 우리가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그 복을 누릴 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곳에 어떤 질서가 있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부여하시는 질서는 무엇일까?’를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이, 그 질서와 말씀 안에 깊이 뿌리 내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광야: 명령과 규례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마음 (11–25장)

그런데 질서가 세워졌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이 자동으로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먹을 것 때문에 불평합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차지해라’ 하고 명령하셨는데도, 키 큰 사람들 덩치만 보고 두려워 돌아섭니다. 고라의 무리들은 ‘나도 거룩하다’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권위를 흔듭니다. 결국 광야의 많은 사건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불신과 두려움으로 가득한지를 드러내는 장면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반역과 불평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살 길을 여신다는 것입니다. 반역의 한가운데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로 재앙을 거두십니다. 저주하라고 불러온 발람의 입에서 놀랍게도 축복의 말씀이 흘러나오게 하십니다.

광야는, 명령과 규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확인하는 장소라기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긋난 자리에서조차 하나님은 다시 은혜의 길, 순종의 길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질서를 잘 지켜라’ 하는 것보다 앞서서, 먼저 ‘질서에 비추어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령을 내려놓고서 ‘이대로 하면 복 주고, 이대로 안 하면 벌준다’ 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명령을 통해 질서를 가르치시고, 우리의 삶이 이 질서대로 맞춰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분이 아니라,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보살핌이고, 자비로우심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3) 세대가 바뀌어도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26–36장)

그래서 민수기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마침내 불신앙의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다시 시작됩니다. ‘말 안 듣던 사람들은 다 죽었다’가 아니에요.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 새로운 백성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해 주십니다. 정복전쟁을 어떻게 할지, 기업을 어떻게 나눌지, 새로운 후계자는 어떻게 할지, 어떻게 가나안에 정착할지, 상속자가 없는 집안은 그 가업을 어떻게 할지, 절기와 제사와 서원과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정해 주십니다. 다시 말해, 광야 마지막에 하나님은 새로운 존재들에게 ‘새로운 명령과 규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전의 습관과 기준, 세상의 상식에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명령과 규례에 따라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새로움은 한 번의 새로움이 아닙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로 새로워지는 우리를 향해, 날로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옛날의 규칙 몇 가지를 평생 지키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입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자리에서, 그 동일한 말씀을 어떻게 순종할지를 또다시 새롭게 묻는 삶입니다. 우리는 ‘이미 아는 말씀’을 가지고도 ‘오늘 나에게 주시는 새로운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준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명령이 바뀐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우리 존재가 날로 새로워지기에, 그 말씀 앞에서 새로 순종해야 할 몫이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한 번 순종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주님, 오늘 제게 주시는 순종의 길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미 아는 말씀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령께서 비추시는 빛 앞에서 그 말씀을 새롭게 듣고 새롭게 실천하는 백성으로 서야 합니다.

4. ‘명령과 규례’와 오늘 우리의 삶

광야를 움직인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명령과 규례였습니다. 오늘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계셔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한 자리에, 하나님께서 불러 세운 자리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따르는 삶은,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이스라엘의 불평과 반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이 나에게 정말 좋은 길일까?” “이 명령이 정말 나를 살리는 길일까?” “이 규례가 정말 우리 공동체를 위한 걸까?” 그래서 만나를 주셔도 불평하고,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도망치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흔듭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리를 기뻐하지 못했던 겁니다.

오늘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그렇게 살면 손해 보는 것 아닌가요?”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나 민수기는 분명히 증언합니다. “명령과 규례를 거부하는 것은 단지 규칙을 어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 앞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명령과 규례로 구체화된 은혜 위에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명령과 규례를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율법의 목적이 드러났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판에 하나님의 뜻을 새겨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워서 억지로 지키는 율법’이 아니라 ‘마음이 변화되어 기쁨으로 따르는 명령과 규례’ 속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교회 공동체 역시 그냥 ‘좋은 사람들 모임’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명령과 규례가 살아 있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질서, 약자를 보호하는 규칙,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되, 회개하는 자를 품어주는 복음의 질서, 재정과 사역을 투명하게 나누는 공의의 구조….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묶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안전하게 하고, 복음이 머물 수 있게 하는 울타리입니다.

5. 명령과 규례, 짐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민수기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신 명령과 규례이다.” 광야 40년의 길 끝에서, 하나님은 한 번 더 “내 말 안에서 살아라, 내가 정한 질서 안에서 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 앞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는 나를 억누르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려는 은혜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손해 같고, 돌아가는 길 같아도,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라면 그 길이 생명의 길임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나의 생각과 계산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과 규례가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인생의 기준이 되게 하겠습니다.”

광야의 끝, 모압 평야에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다시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각자의 인생 광야 한가운데에서, 또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이 시대의 한복판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할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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