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시절,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이 한일 양국에서 모여 그간의 여정을 되짚으며 양국의 연대를 되새기를 시간을 가졌다. ⓒ임석규
▲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시절,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이 한일 양국에서 모여 그간의 여정을 되짚으며 양국의 연대를 되새기를 시간을 가졌다. ⓒ임석규

유신정권의 간첩 조작으로 청춘을 빼앗긴 재일동포 유학생들과 국내 대학생들, 그리고 이들과 35년간 연대해 온 일본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11.22 사건 국내양심수 동우회, 국가폭력생존자회 등 8개 단체가 21일(금)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에서 ‘11.22 사건 50주년 -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치유와 평화의 한마당’ 첫날 행사를 연 것이다.

향린교회 대예배실을 가득 채운 참석자들은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과 일본 구원회 활동가들의 발언, 재심 변호인단의 분석 등을 들으며 박정희 정권의 소위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의 진실과 그 이후 50년의 여정을 되새겼다.

앞서 11.22 사건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재일동포 유학생 17명과 국내 대학생 16명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4명이 사형을 선고받았고,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심 권고 이후 피해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은 뒤 문재인·이재명 대통령이 공식으로 사과했다.

“사형 선고받고 인간 이하 대우…국가보안법 철폐해야”

강종헌 서울의대 간첩조작사건 생존자는 “군사독재 시절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겪었다”며 “국가폭력의 근원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분단과 적대 시대를 반영한 헌법 영토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승일 11.22 사건 국내양심수동우회 총무도 “11.22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공안 사건임이 명백하고, 잔혹한 국가폭력은 학생운동 위축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지적하며 “사법부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용규 자수 간첩 사건’으로 알려진 거문도 간첩조작사건의 생존자인 김영희 씨는 “국가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던 아버지는 끝내 교도소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고 눈물로 증언하면서 “대통령 간담회에서 위로를 받았으나 50년이 지나도 상처가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한신대사건 피해자 김명수 충주 예함의집 원목 역시 “재일동포와의 만남만으로 간첩으로 몰려 고문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회고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와 피해자 대상 명예 회복, 사회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일 양국의 참석자들은 대화 한마당을 통해 사건들의 의미를 재조명했다. ⓒ임석규
▲ 한일 양국의 참석자들은 대화 한마당을 통해 사건들의 의미를 재조명했다. ⓒ임석규

“일본 전역 40여 개 구원회, 전원 석방 이끌어”

한일문제를 생각하는 히가시오사카 시민모임 소속 다무라 고지 씨는 “1975년 이후 일본 내 구원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100여 명의 재일한국인 양심수가 석방됐다”고 설명하며 “1990년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결성 후 35년간 공동행동·재심소송 지원·출판기념회 등 활동을 이어왔다”고 밝혔다.

11.22 재일 한국인 유학생·청년 부당 체포자를 구원하는 모임 회원 안노 가츠미 씨도 “11.22 사건 후 일본 내 40여 개 구원회가 조직돼 한국 방문·서명운동·단식투쟁, UN 활동 등을 전개했다”며 “구원회 활동을 통해 일본 사회 내 재일한국인 문제 인식이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1975년 남산 지하실에서 고문과 강제 자백을 당하고 출소한 뒤 양심수동우회를 결성해 재심투쟁을 이어온 이철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회장 역시 “피해자 45명이 무죄를 받았으나, 재일동포 특별법 제정 등 제도적 해결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정권 국가범죄 반성…사회적 가치 대전환 필요”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이사장인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재일동포 피해자들에게 과거 정권의 고문, 투옥, 살인 등 국가범죄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다”면서 “50년이 지난 지금, 희년과 부활의 의미를 피해자들에게 전하고 치유와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다.

11.22 사건 국내양심수동우회 대표인 전병생 한국기독교장로회 전 교회와사회위원장도 “중앙정보부에 의해 체포, 고문, 허위자백을 강요받았고 가족들이 사회적 고통을 겪었”던 끔직한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는 국가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제도 개선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여순항쟁 유족이자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로서 2대에 걸친 국가폭력을 경험한 김양기 국가폭력생존자회 부회장 역시 “무죄 판결 이후에도 배상금 문제, 지연이자 미지급 등 국가의 불충분한 사과와 보상이 문제”라 비판하고 “실질적 지원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대화한마당을 정리하면서 문국주 전국시국회의 운영위원장과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은 “국가폭력의 비극과 사회적 무감각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기록과 후속 작업, 정부 차원의 피해자 신원 파악과 위로, 재발 방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재일동포 음악인을 중심으로 11.22 사건 및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인권회복 투쟁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콘서트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문화한마당’이 22일(토)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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