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제도 거부, 차라리 감옥이 나아

병역거부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국방의 의무, 군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짊어져야할 의무라고 생각해 2011년 5월 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소 생활 자체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단지 군대라는 곳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훈련소 안에는 ‘보복하자 천안함, 잊지 말자 연평도’ 같은 문구가 있었고, 훈련소장의 연설도 똑같았다. 굉장히 극단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군인으로 그런 주장에 동참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거슬렸다.
심지어는 생활관 안에 ‘4대강 홍보’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거의 4대강 사업 홍보장 같은 느낌을 받았고, 비판할 여지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시민의 의무라는 것들이 단순한 억압에 불과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의무가 아닌 잘못된 선택(병역)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다.

병역 거부를 선택하면서 갈등은 없었나?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도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병역거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훈련소 이후, 군대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굳였을 때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병역거부를 선택할 만큼 신념과 사상이 강한지, 혹은 단순히 병역이 싫어서 피하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봤다.
사실 훈련소에 있을 때도 크게 힘든 점을 느끼진 못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했었고,  단체생활에 익숙했다.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제일 컸다. 물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조금씩은 감수하면서 산다. 그러나 이건 내가 전혀 원하지 않는 것이고, 보람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선택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군대와 감옥,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 군대를 가도, 감옥에 가도 고통스럽다면 내 정치적, 철학적 신념이라도 지킬 수 있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감옥에 가면 위안거리라도 있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군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처음 병역거부를 고민할 때,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나는 모든 군대를 반대하는가?’였다. 병역거부를 결정하면서 만난 ‘전쟁없는 세상’에서 활동하고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군대라는 곳이 모두 똑같다고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대한민국 군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잘못된 점이 너무 많았다.

특히 공부를 하다 생각한 것인데 우리 사회에 있는 군사주의가 비인권적, 비윤리적인 문제를 부추기며, 사회적인 부의 분배까지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 정로도 매우 특수한 상황이다. 독재정권에 인권이 완전히 무시되는 국가가 아닌 이상 이런 식으로 군대를 운영하지 않는다.

시민의 의무 군대, 대우는 인권 후진국 수준

한국사회 군사주의에 대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병역거부 사안에서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군대가 반드시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군사주의화 되어도 감수해야 하며, 그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더라도 개선해 가야한다.

어릴 때부터 불합리한 부분을 인정해야 하거나 경쟁과 권위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극한에 있는 것이 군대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도 남성 군필자를 선호하는 이유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잘 견딘다.’고 한다. 하지만 매우 부당한 대우, 법적으로 보장 받아야할 권리가 침해되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하게 하는 태도를 군 복무 기간 동안 익히게 된다.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주적이며, 주적이란 엄연한 위협이 있기 때문에 막대한 국방비를 소모하도록 만든다. 심지어는 부패나 비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정당도 ‘안보’라는 이름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정치의식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군대, 군사주의가 사회적으로 끼치는 악영향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징병제를 운영하는 국가 중 노르웨이의 경우를 보면, 군 복무를 거절하면 면제가 되고, 사회 복무를 원하면 대체 복무 기회가 주어진다. 핀란드의 경우 90년대까지만 해도 징병율이 90%(한국 85%) 정도였던 나라였다. 핀란드도 대체복무를 원하면 전환시켜 준다. 군 복무 중에도 상관없다.

특기할 점은 전쟁, 비상사태, 계엄 등에도 대체 복무를 마친 사람은 징병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전시에 징병된 사람도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면 위원회 심사를 거쳐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 핀란드는 냉전시기 소련과 전쟁도 했고, 지금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우리와 비교했을 때 전쟁의 위협이 현저하게 적다고 할 수 없다.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우리나라는 병역 거부자 인권에 대해 유엔으로부터 권고도 여러 차례 받았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결의할 때마다 ‘병역 거부권’과 ‘대체복무제’을 합의하고 온다. 세계적으로 인권에 대해 논의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체복무제는 유로연합 가입 조건이기까지 하다.

군대의 폭력적인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우 ‘징병제’를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군대에서 군번줄 나눠 줄 때는 ‘국가의 귀속물’이란 표현을 쓴다고 한다.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황당한 이야기 아닌가? ‘시민의 의무’라며 징병해 놓고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시민을 노골적으로 그런 취급을 하는 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인권에 대해 동일한 수준을 논하기 힘든 국가일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이 들으면 소위 ‘개념없다’고 하겠지만 일급 기밀이 아닌 이상 부대 내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우리보다 직접적인 긴장감이 큰 나라이자 동일한 징병제 국가인데 허용 된다. 이 밖에도 서적, 노래방 노래 등을 검열한다. ‘안보’라는 말로 필요한 부분이 아님에도 이데올로기화 되어 인권 침해적 요소가 많다.

한국사회 군사주의, 개선될 수 있다.

병역 거부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자신을 어떻게 보이길 원하나?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병역 거부는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다.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폭력의 문화를 재생산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정치, 사회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병역 거부를 한 개인에 주목하기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어떤 오류가 있는지 봐줬으면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좋아진다는 생각했으면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병역 거부를 선언했으니 며칠 안으로 병무청에서 고발할 것이다. 4월 중에 경찰 조사가 들어가면 5월부터 재판에 들어가서 6월에는 판결이 날 것이다. 아마 감옥에 갈 것이다. 그 전까지는 ‘전쟁없는 세상’의 병역거부팀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병역 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 모임이나 병역 거부에 대한 UCC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병역 거부에 대한 생각을 나눌 간담회도 기획하고 있다.

활동하고 있는 ‘전쟁없는 세상’은 어떤 단체인가?

반전,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로 2003년 병역 거부자를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여성주의 활동가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종교 집단으로 병역 거부 활동을 독자적으로 하고 있는 ‘여호와 증인’을 제외한 정치, 종교, 철학적 신념으로 병역 거부를 선언할 때 함께 하는 단체이다. 반전, 반 군사주의와 관련해서도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바레인 최루탄 수출 금지 캠페인을 함께 벌이기도 했으며, 비폭력 트레이닝도 하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나는 종교가 없다. 병역 거부도 정치적 신념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 종교적 신념에 의해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그분들에 의하면,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종교가 군사주의에 대해 왜 이렇게 둔감한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소수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병역 거부나 군사주의에 대해 기독교가 목소리를 낸다면 신자들만이 아니라 사회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좀 더 평화적인 가치를 존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특히 종교인들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기대가 있다.

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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