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0부활주일

십자가의 길 - 영광의 길

(마태복음 28:1-10; 고린도후서 4:10-18)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그 의미를 되새깁니다. 부활을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죽음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죽임 당함이었습니다. 고난과 죽임 당함의 과정을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길 끝에 죽임 당함이 있고, 그 죽임 당함 너머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은 죽임의 세력을 이기고, 죽음의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심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느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을 영광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의 고별기도(17:1-26)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하느님이 맡기신 일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버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으로, 나를 아버지 앞에서 영광되게 하여 주십시오.”(1,4-5절)

그리고 그 영광을 다시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22-23절)

 영광은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평판과 능력으로서 하느님의 실재를 인정하거나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은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태어남을 증거하는 성육신에서(1:14; 2:11; 11:40),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길인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13:31).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름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고, 미래의 영광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롬 8:18.21).

우리는 고난과 영광을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난과 영광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경향 말입니다. 순종의 결과는 영광이요, 고난은 불순종의 결과라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고난 후에 영광이 온다고 합니다.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영광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고난과 영광은 이렇게 분리되거나 선후관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고난과 영광은 서로 등짝을 맞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고난과 믿음 사이에는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이 고난과 영광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과 실천으로 고난 속에서도 영광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거나, 고난 속에서도 영광을 희망하기 위해서 고난의 순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우선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난을 직면한다는 것은 현재 나에게 일어난 고난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고난과 영광 사이에서 고난 받는 사람들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고난을 겪을 때 우리는 온 몸과 마음을 다해서 그 고난을 우리의 삶에 수용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럴 때에 고난과 영광은 이미 내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은 죽임 당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다시 갈릴리로 갈 것이다. 거기서 너희를 다시 볼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유대 민중들이나 그들이 원했던 사람은 ‘갈릴리 나자렛 사람 예수’가 아니라 ‘위대한 다윗의 자손 예수’였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처형된 ‘갈릴리 나자렛 사람 예수’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님의 부활도 원치 않았습니다. 설사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님이 다시 부활한다 해도, 갈릴리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부활이라면,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죽었다가 부활하는 갈릴리 나자렛 사람 예수보다, 죽지 않고도 승리하는 다윗의 자손 예수가 더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다시 갈릴리로 가시고 거기에서 제자들과 만나자고 했을까요?

부활한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보다 앞장서서 갈릴리로 가는 사실에서 경험됩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치열하게 살고 있는 현장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갈릴리의 삶에 참여할 때에 비로소 그들은 부활을 경험하고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의 삶을 위한 해산의 고통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들 - 예수님을 따르는 오늘의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그 죽음과 부활에 함께 참여하도록 초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시작을 제시할 뿐, 그 완성을 안겨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분명 영광이지만 그 속에 십자가의 길을 품고 있습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난 곳이고, 예수님과 함께 활동했던 본거지였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섬겼던 여인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지는 것까지 지켜보았던 여인들, 예수님의 시신이 내리워져 아리마대 요셉의 돌무덤에 묻히는 것을 지켜본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남긴 말은 “갈릴리로 먼저 갈 것이다. 그곳에서 나를 볼 것이다.”입니다.

최후의 식민지라고 할 정도로 역사 속에서 차별과 억압을 온 몸으로 받아왔지만, 예수님을 따르고 섬긴 여인들이 들은 약속의 내용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라” 하는 약속에 의해서 새로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제 갈릴리는 더 이상 억압과 착취의 땅이 아닙니다.

로마 제국주의와 부재지주들에 의해서 빼앗기고 당하기만 하는 땅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약속과 부활로 갈릴리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루살렘에서 끝난 예수운동을 원점인 갈릴리에서 다시 일으키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감정을 새로운 힘으로 승화시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로 삼는 사람은 갈릴리에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민중들과 함께 하였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그를 잊지 못하고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힘을 줍니다.

그들은 이제 갈릴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 바로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역사 속에서 실현하려는 사람들, 비록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나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언하는 사람들, 뒤따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무쳐서 그들의 길잡이가 되는 사람들, 예수님의 활동 본거지였던 갈릴리와 같은 현장을 찾아서 다가가는 사람들, 그들의 행동 속에서 예수님은 지배자들의 정치적 음모를 깨뜨리고 부활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 미래가 절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 부활한 예수님이 주신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합니다. 그 때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만났던 생생한 체험을 오늘 우리의 삶에서 다시 일으키라는 약속입니다.

바로 그 곳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갈릴리는 진도 앞바다 세월호입니다. 왜 죽임당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생명들의 울부짖음이 있는 곳입니다. 무덤 같은 물속에서 울부짖는 소리는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때리면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재촉합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이미 죽임당한 유족들과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과 해외에서까지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고 슬퍼합니다. 특히 나흘이 넘게 어둡고 차가운 물속에 갇혀있는 생명들을 두고 최선을 다해서 구조하겠다는 말뿐, 실제로는 상황과 절차와 지휘계통을 핑계 삼아 제대로 구조활동을 하지 못하는 대책현실에 분노합니다.

동료 목회자들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부활절을 맞이할까 하는 고민을 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하늘뜻펴기 준비를 하려고 해도 머리는 하얗게 비어버리고 그저 먹먹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목숨을 달리한 분들은 죽임당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규제완화로 폐기처분된 배를 사들여 900톤이 넘게 층축까지 한 자본가에 의해서 죽임당했습니다.

사고발생 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더 빨리 구조하지 못한 모든 해당 기관에 의해서 죽임당했습니다.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일베충들과 빨리 구조하라는 가족들의 요구를 종북좌파로 매도하는 사람들, 현장을 방문하여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하면서 자기의 정치적 입장을 선전하려는 정치인들에 의해서 죽임당했습니다. 전쟁 위협의 분위기를 만들어서 바다에서 군사훈련을 감행하는 전쟁광들에 의해서 죽임당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이나 구조활동 현황과 실종자들의 생사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감추려고 하면서 우왕좌왕 하는 정부와 그에 놀아나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죽임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오늘도 기억하면서 그의 삶을 따르려고 하듯이 오늘의 일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 이 세상이 자본과 권력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고 한 생명이라도 귀하게 여기는 생명평화의 세상이 될 때까지 기도하면서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을 대속하였듯이, 헤롯에게 학살당한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의 생명을 대속하였듯이, 오늘 세월호 침몰로 죽임 당하고 있는 생명들이 우리를 대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생명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로 죽임의 세력을 이기고 죽음의 현실을 극복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느 생명 하나라도 허투루 대할 수 없기에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생명경시의 세력들과 싸우는 일에 연대하고, 생명살림의 기운이 온 몸과 마음에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어떤 정치가가, 어느 정당이, 다른 남이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아파하고 기도하면서 법을 고치고, 감독기관을 압박하여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일, 다시는 이런 혼란하고 무능한 구조현장이 보이지 않게 다시는 거짓말로 도배하는 앵무새 언론이 설치지 못하게 하는 일, 국민의 세금으로 자기 정권의 연장과 권력을 향유하는 데에 쓰지 말고 전복된 배에서 생존자를 구출할 방법과 장비를 마련하라고 요청하는 일도 예수님의 부활을 지금 여기에서 증거하는 일입니다.

허탈함과 무기력함과 분노와 죄송한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희생당한 생명들의 대속과 예수님의 부활을 적극적으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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