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말은 기독교 일부의 방언이다. 신학을 접해본 사람 중에서도 일부만이 쓰는 방언이며, 누구나 소통 가능한 언어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에큐메니칼 정신 아니겠나.”

▲ 김상근 목사 - NCC개혁과발전특별위원장

인터뷰의 첫 머리에 김상근 목사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교회 안팍에서 스스로 세운 담에 갇혀있다는 문제부터 지적했다. 7-80년대에는 민주화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고, 교회가 상대적으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장애가 되지 않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진 한국 사회에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대중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김상근 목사의 또 하나의 강조는 ‘기독교 운동의 세대교체’이다. 30여년간 NCC 실행위원으로 활동해 왔다는 김 목사는, 선배들의 경륜이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있도록 만드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대중적 자기표현과 세대교체, 이 둘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어갈 김 목사의 후배들이 처해있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로5가'로 지칭되는 NCC를 비롯한 각종 단체들은 명맥 만을 유지한 채 시대가 요청하는 자기역할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에서 철수한 기독교운동은 외국인이주노동자 문제를 제외한 여타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그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 4월19일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성명에도 기독교계는 초청받지 못했다.

지난 4월 40대의 진보적 목회자는 교회의 과거사 반성 심포지엄에서 "현재 할 일을 찾지 못한 기독교운동이 결국 과거에 의지해 현재를 유지할려는 행사"라고 자조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 있을까? 혹 현 정부와의 동업자 의식 때문에 목소리를 죽이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김상근 목사는 “김대중 정부 이후 일부 교계인사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기독교운동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이야기할 뿐,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에큐메니칼 운동 내부에서는 또 ‘새 얼굴을 보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만큼 새로운 세대가 교회연합운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교회 만의 독특한 운동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아픔 속에서 몸부림치고 계실텐데, 과연 어디서 누구와 함께 몸부림치고 계신지를 정직하게 찾아야 한다”면서, ‘신앙적 감수성’을 후배들에게 주문했다. 남들도 다하고 있는 일, 그동안 해오던 일에만 안주한다면, 이미 지나간 하나님의 발자국만을 지키는 것일 뿐, 진정한 하나님 선교의 일꾼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김상근 목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아픔 속에서 몸부림치고 계실텐데, 과연 어디서 누구와 함께 몸부림치고 계신지를 정직하게 찾아야 한다”면서, 후배들에게 ‘신앙적 감수성’을 주문했다.

△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일반적 생각은?
에큐메니칼 운동은 하나님의 구원사에 초점을 맞추고 선교하고 실천하는 운동이다. 교회 안은 물론이고 교회 밖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쫓아 행하는 정의와 자유, 해방의 실천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말은 방언이다.
기독교 안에서도 신학을 접해본 사람들 사이에서 쓰는 방언으로, 그 영역을 벗어나면 전달력이 없는 말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인들은 물론이고, 기독교인이나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한 언어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작은 문제이지만, 누구나 다 알아듣고 반대하기도 하고 동의하기도 할 수 있는 말을 찾는 것이 에큐메니칼 정신이다.

△ 에큐메니칼 운동을 주도해오셨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면?
지난 시기의 경험과 틀과 규범이 오히려 지금 교회운동을 위축시키고 규정하고 좁힐 수 있다. 발전시키고 전진해야 하는데, 선배들의 영향이 너무 강하다. 자유로운 사고와 전진을 위해 지난 시기의 그림자를 걷어낼 필요가 있다.

△ 현재 에큐메니칼 운동이 침체된 느낌이다. 어떤 이유일까?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각과 좌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민중의 삶을 오늘에 이르게 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해방의 역사는 사회구원의 역사이다. 하나님이 이 역사를 어디로 가지고 갈 것인지에 시각을 맞추어야 한다.
지난 시기의 성과를 너무 강하게 쥐고 있으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선배들이 비켜줘야 한다. 하나님의 해방, 그것에 동참하기 위한 자기 개혁이 에큐메니칼 운동의 취약한 점이다.

△ 극복이 가능할까?
나는 급속한 변화 과정 속에 살았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아버지가 진지상을 받으시고 그 다음 남자들, 여자들 순으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둥근상을 만들어 오셔서는 남녀 식구는 물론 식모까지 한 상에서 밥을 먹게 하셨다. 그것은 혁명적 변화였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기독교 신앙에서 깨우침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 개입해오셔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시는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다. 우리가 빈궁할 때, 그 빈궁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7-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도 민주화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정의가 이긴다’는 생각으로 발악을 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는 이루어졌다.

지금도 하나님은 역사를 열어가고 계신다. 이미 우리는 경험했다. 하나님이 무엇을 열어가고 계시는지 찾고 뛰어드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게 교회연합운동이다.

△ 정치에도 참여하셨는데

▲ 정치에 대한 태도에 대해 김 목사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말은 정치의 몫이고, 교회는 은 옳고 그른 것을 이야기할 뿐이라고 말한다.

국민의 정부 때 정치에 참여했다. 그러나 사실 참여할 형편이 못되었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나는 1월에 기독교서회 사장이 되었다. 김 대통령 부름을 받았지만 4년 임기가 있었다. 그때 김 대통령에게 “목사에게는 교회가 준 직책이 크거나 작거나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정권이 1년도 못가서 위기에 빠졌는데, 그 원인이 제2건국위원회 때문이었다. 교회가 주장했던 것과 다름없었던 제2건국위원회가 정권의 장애가 되었을 때, 그 장애물을 내가 짊어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목사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역사가 기대하는 바대로 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는 신앙 고백적이고 선교적인 입장에서 정치에 참여했다. 그래서 그 기간동안 교회 일도 그대로 했는데, 그 때문에 많은 비판을 듣기도 했다.

△ 노무현 정부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 일부에서 '정권과의 동업자 의식이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동업자 심리 보다는 재조의 심리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도 정권 안에 들어가서 보니까, 그동안 우리가 비판할 때 보지 못했던 점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들도 다양한 상황에서 역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고통과 고뇌를 하고 있었고, 그런 재조의 정서를 경험하게 되었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정치권 주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런 경험과 정서가 교회로 돌아와 파급된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정치하는 곳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교회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걱정은 정치가 해야 한다. NCC에서도 때때로 ‘너무 몰아세우는 것 아닌가'하는 배려가 있는데, 이건 안 된다. 옳은 것을 밝힐 뿐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말은 정치의 몫이고, 정부가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 그러나 현실은 교회 운동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활동은 보이지도 않는다. 관심조차 없거나 어려운 일은 피해간다는 비판도 있는데?

그 문제는 정부와의 관계도 있지만, 교인들과의 관계도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미 가진 자들의 교회이다. 큰 교회일수록 큰 교단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미 교회 안에 비정규직 노동제도를 즐기고, 그럼으로써 부를 축적하고, 또 교회에 보탬이 되는 과정이 사슬을 이루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가 비정규직 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교인들이나 큰 교회, 큰 교단의 반발하지 않겠나.

△ 국가 지원 프로젝트 사업이나 안전하고 쉬운 운동만 하는 것은 시민사회운동과 차별성이 없거나, ‘낮을 곳을 향한다’는 기독교 운동 정신에도 맞지 않는 일 아닌가.

하나님께서 지금 뭘 하고 계실까? 어떤 해방의 역사를 하고 계실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픔 속에서 몸부림치고 계실텐데, 과연 어디서 누구와 함께 몸부림치고 계신지를 정직하게 찾아야 한다.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흥순 씨의 장례식 때, 상여 뒤를 따라가는 부인을 나와 가톨릭 신부가 부축하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걷던 부인이 갑자기 하얗게 맑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울부짖었다. “하나님 이 개새끼야!” 왜 구름도 없고, 왜 천둥번개도 치지 않느냐는 울부짖음인데, 그때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개새끼로 만들고 있구나’ 하는 자책감이 가슴에 닿았다.

시대의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나의 신앙적 감수성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적 감수성이 자꾸만 무뎌져 간다.

김혁 기자  omyste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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