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믿음’의 두 에너지로 일구어가는 에큐메니안

1.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다이빙 벨>을 보았다. 잘 들었듯이 MBC 해직기자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가 감독의 한 명으로 참여한 세월호 다큐멘터리였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세월호 유족 두 명과 더불어 이상호 기자가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생각했던 바이고 크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영화에서 사고가 일어난 직후 얼마 안 되어 언론이 어떻게 수많은 구조인원과 함선과 헬리콥터와 구조장비들의 이름과 숫자까지 거론하면서 완전히 거짓으로 실행되고 있지 않는 구조행위를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했는지가 다시 잘 보여졌다.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고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제작 감독한 이상호 기자조차도 오늘날 방송매체가 사실적 진실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특히 방송매체의 최전선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말과 글로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나 기자들의 경우 그 말과 글이 ‘사실’과 다른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것을 스스로 쓰거나 확인한 것도 아니고, 단지 이미 정해진 내용과 텍스트들을 읽거나 받아써서 전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이야기를 다시 ‘관행’이라고 전하는 이상호 기자에게 나는 재차 물었다. 이러한 일을 관행이라고 “이해”해주지 말고, 여기에 대해서 싸우고, 그 아나운서가 읽은 텍스트가 거짓이라고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그 텍스트를 처음 그렇게 저술하거나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역추적 하는 방식을 통해서 진실과 조작된 의도를 드러나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왜 어떤 일보다도 명약관화할 것 같은 그 일을 하지 않느냐고 재차 묻자 모두가 웃었다.

2. 지극히 사적인 개인적 삶에서도 ‘사실’과 다른 거짓말을 하는 일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부자유’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을 향해서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말’하는 일을 ‘관행’으로 ‘이해’하고 사는 우리네 삶은 과연 어떤 삶인가? 그래서 나는 에큐메니안에게 바라는 제일 처음의 일로 어떠한 경우에도 ‘사실’과 ‘진실’을 저버리지 말고, 그 기초와 원자료들을 어떤 이차적인 의도와 목적을 위해서 희생시키지 않을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위의 사람들의 웃음처럼 이러한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 하나의 ‘영적 교만’(arrogance)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우리 시대, ‘인민’과 ‘시민’과 ‘의견’과 ‘취미’의 시대일수록 이 일이 매우 긴요하고, 그것은 우리의 어떤 의견과 취미라 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토대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 판단의 공통적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여 그 일을 다른 어떤 저널보다도 에큐메니안이 해주기를 바란다. 간디는 자신의 신앙이 ‘신은 진리’(God is Truth)라는 믿음에서 ‘진리가 신’(Truth is God)이라는 고백으로 나아갔다고 밝히고 있다. 인간의 정신사에서 또 다른 차원의 역사를 연 그의 ‘진리실험’(an experiment of truth)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거기서 얻어진 실질적인 큰 열매가 인도의 독립이었다.

3. 다음으로 바라는 일을 한국 유교전통의 언어로 ‘선여인동’(善與人同)으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선을 행한다’라는 뜻인데, 위의 ‘진리파지’(眞理把持)의 일을 혼자서만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협력하면서 나아갈 때 더욱 힘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전 율곡 선생은 이상국가의 꿈을 실현할 방법론(聖學輯要)을 논하는 자리에서 지도자가 “천하의 눈을 내 눈으로 삼는다면 보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하의 귀를 내 귀로 삼는다면 듣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천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으면 생각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이것이 성스런 왕과 현명한 군주가 천하를 고무시키면서도 심력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먼저 혼자서 보는 것의 한계를 지적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적 진리를 모으는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그것을 해석해 내고 의미화 하는 일에 있어서도 오늘날 언론의 일과 역할은 예전 통치자의 그것과 잘 비견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일을 수행하는 데서 훌륭한 통치자는 세상의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마치 자기 몸 바깥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자기의 눈과 귀로 여겨서 그들로부터 듣고 배워 자기 통치의 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나라 전체의 사람들도 활발하게 살아가도록 한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우리가 많이 이야기하는 ‘다중지성’ 또는 ‘집단지성’의 지혜와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나는 에큐메니안이 지금보다도 훨씬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훌륭한 다중지성으로 성장해 가기를 요청하고 기대한다. 화교 그룹보다도 더 넓고 다양하게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하는 ‘한민족 벨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의 자랑 1-2위를 다투는 한국의 ‘아줌마’들을 에큐메니안 통신원과 저자들로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일, 지금 큰 위기 가운데 빠져있는, 일본식 허무주의와 개인주의에 점점 더 물들어가면서 생명과 삶의 의지와 활기를 잃어가는 젊은 그룹들, 각 대학, 신학대학 젊은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에큐메니안을 통해서 울려 퍼지도록 하는 일, 사회적 약자와 이주민, 이웃종교와 ‘다른 시각과 관점’들이 보다 용이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런 모든 일들이 지금까지의 어느 언론 매체가 하지 못했던 뛰어난 다중지성으로서의 에큐메니안을 일구어가는 일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박차를 가해주기를 바란다.

4. 세 번째 바라는 일은 오늘 우리 사회를 가장 보편적으로, 밑동에서부터 흔들고 뿌리 뽑히게 하는 악과 불의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특히 먼저 ‘교육’에서의 불의와 더불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오늘 한국 사회의 어느 가정, 어느 개인, 어느 교회가 이 교육으로 인한 폐해로 고통을 당하지 않는 곳이 없다. 지금까지 교육은 아주 국지적인 일이고, 마이너한 일이며, 특히 종교나 교회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가 교육의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며 관여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민중들의 절망과 가난과 고통, 젊은이들의 억눌림과 희망 없음, 인간 실존적 성찰의 부재, 가정의 파괴, 농촌의 황폐화, 신학의 쇠퇴와 지성의 몰락 등이 모두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가족이 가족생활을 포기하고, 부모세대는 끊임없는 노동과 가난에 시달리고, 도시는 크게 과부하 되어가지만 농촌은 비어가고, 노동자들의 생활임금도 보장하지 않고서 착취해서 외국 교육기관에 쏟아 붓는 등, 우리 시대와 사회의 핵심 악들이 모두 이 교육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본다. 지금 우리가 처절하게 겪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비극에도 그 핵심에 자식들의 교육 앞에서 모든 것을 내어놓는 한국 부모와 세대의 무지와 수동이 놓여있다. 그래서 나는 에큐메니안이 이 문제를 자신의 핵심과제로 삼아서 한국 교회로 하여금 이 문제에 눈을 돌리게 하고, 기독인들과 종교인들로 하여금 이 거대한 세계적 착취의 고리를 알아채게 하여서 거기서부터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역할 할 것을 요청한다.

5. 이미 지난 세기 6-70년대에 ‘탈학교사회’를 외친 가톨릭 신학자 이반 일리치는 오늘의 소비 자본주의 사회를 계속 돌아가게 가는 소비자 공급원으로서 학교와 대학이 어떻게 그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잘 밝혀주었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치유책으로서 서구 기독론의 오래된 배타주의와 우월주의를 걷어내는 일을 들었다. 생래적이고 삶 중심적인 인간 가능성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이웃 종교와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학교와 제도교육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보다 용이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현재의 근대 교육제도와 이념을 비판하는 일을 통해서 특히 앞으로의 한국 사회와 교회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이웃종교와의 대화도 더욱 활발하게 구체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오래된 종교 전통이란 한 마디로 종교와 교육, 삶과 배움, 종교적 성찰과 삶의 수행이 하나가 된 전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를 착취하는 현재 교육에 대한 저항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전통과의 조우를 가능케 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에큐메니안이 우리 교육문제와 더불어 이웃종교전통과의 만남의 일을 크게 신장시켜주기 바란다.

6. 우리의 모든 정치와 교육, 종교와 문화, 경제와 가족생활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우리 삶의 참된 인간화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존중받고 무시되지 않는 사회,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재능과 활기를 맘껏 구가하며 억울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요절이나 급사, 폭력적인 죽음이 흔하지 않은 사회, 현재의 지구적 의식과 창조가 더욱 전개되어 앞날의 전개와 미래가 매우 기대되고 설래임으로 기다려지는 시대, 이런 함께 함과 시대를 그린다. 이 일에 에큐메니안이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비록 적은 수의 실무자들과 기자들과 일꾼들이지만 우주를 마음에 품고, 한국을 지렛대로 삼아서, 말과 글과 그림을 가지고 시대를 흔들면서, 하루 한 걸음씩(日步) 작지만 꾸준히 나아가며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좋은 매체가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가 말했다. 기자의 역할은 억울한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라고. 예전 종교적 사제의 일을 오늘은 언론이 해주고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언론이 중요해졌다는 말이겠다. 에큐메니안은 우리 시대의 어느 다른 언론매체보다도 특히 신앙적인 언론매체로서 자기 자신을 세웠다. 종교와 언론, 신앙과 진실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삶의 원리를 모두 품어 안았으니 그 역할과 책임이 더욱 크고 기대된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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