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일 토요일, 흐림

작년에 간 치수가 높이 나왔다고 간초음파를 하라는 보험공단의 지시가 내렸다. 과로 때문이라나. 그렇게 치자면 시골 할매들은 다 간을 꺼내놓고 살아야 한다, 날마다 초음파를 하게 시리.... 나야 목숨 걸고 농사지을 것도 아니고 늑장부린다고 나무랄 사람도 없는데.... 무슨무슨 치수라는 게 늘 사람을 괴롭히고 검사를 시키고, 공단은 시키는 검사는 꼭 받아야지 안 받으면 이담에 거기 아플 적에 불이익을 준다는 협박까지 하니 정말 좋은 의료보험시대에 우린 살고 잇다.

검사를 받으러 읍내 홍인외과에 가니 어르신들의 행렬이 끝이 안 보인다. 내가 검사받는 시각에 보스코도 허리와 어깨의 물리치료를 받을 생각이었지만 그 엄청난 인파를 보고는 제풀에 지쳐 그만두었다. 진찰료 1200원, 약값 1300원이면 할 일 없는 노인들 심심풀이 삼아, 소일꺼리로 병원순례를 다닌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사실 농사꾼이 그 나이 돼서 몸이 안 망가진다면 그게 이상하다. 소일거리 병원순례는 도시 노인네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문정리에서 읍내로 나가는 길에,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을 태웠는데 유노인, 가밀라 아줌마, 그리고 ‘키큰 아줌마’가 탔다. 김옥규씨와 요안나 아줌마는 자리가 없어 못 태웠다. 차안의 두 아줌마는 함양 가서 다시 거창으로 가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야 한단다. 요즘 양파를 심으로 다니니까 허리가 끊어지게 아파서 약을 먹고 가서 일을 해야 한단다.

그냥 집으로 가려던 보스코를 달래서 명인한의원에 밀어 넣고 나는 카페 ‘빈둥’에서 정옥씨를 잠간 만났다. 엊저녁 손님이 많았었는지 카페 주인이 오늘은 늑장을 부려 손님이 여남은 명 카페 앞에서 문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 당당한 주인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꼬마들이 긴 상을 차지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어른들은 수다를 떤다. 아가손님까지 고객인 카페가 우리나라에 흔치 않으리라.

치료가 끝난 보스코랑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을 시켜 나누어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닥재를 넘으면서 차를 세우고 나는 산국을 꺾고 보스코는 쑥부쟁이를 뽑아왔다. 내일이 주일이라 제대에 꽂으려는 참이고 남으면 집에도 장식할 게다. 꽃꽂이를 하러 공소에 가니 토마스2와 체칠리아씨가 청소를 하고 있어 몇 주 동안 닦지 않은 먼지를 함께 말끔히 쓸어내고 씻어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먼지가 더 판친다는 이치를 터득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스코의 말대로 땅은 1년에 1cm씩의 먼지가 쌓여 100년이면 1m씩 묻히게 마련이란다. 그래서 2000년이 지나면 최소한 20m의 깊이로 지하에 묻힌다는 계산이 나온다. 과연 로마의 유적지를 발굴하려면 지금의 지면보다 20여 미터는 파내려 가야 한다.

공소 청소를 마치고 집에 올라오니 보스코가 내가 추수해야 한다고 걱정하던, 땅콩을 거두고 나서 마저 울콩을 따고 있었다. 나도 이때다 싶어 광주리를 들고 내려가 토마토를 마저 따고 호미를 찾아서 생강을 캤다. 5000원어치 씨 생강이 새끼를 쳐서 라면박스 하나를 가득 채운다. 4년만의 쾌거다. 여러 번 생강농사를 지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씨 값도 안 나왔었다. (안타까운 일로 우리 텃밭 구석에는 그동안 몸을 앓던 풍산개 풍이가 죽어 있었다. 어제 아침까지도 먹이를 주었다는데...)

▲ 올해 땅콩 농사는 완전 망했다!

▲ 배나무에 높이 감고 올라 간 울콩을 따는 보스코

▲ 생각농사는 흡족하고 남았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보스코는 울콩을 까고 나는 내일 공소식구들과 함께 먹을 케이크(파인애플케이크)를 구웠다. 보스코는 그 귀한 시간에 무려 4시간을 바쳐 울콩 한 광주리를 다 깠다. 엄지손톱이 어지간히 아픈가 보다. 다행히 밤 10시부터 PBC에서 지난 달 24일 있었던 “원선오 신부와 함께하는 콘서트”가 녹화 방영되고 있어서 그것을 시청하면서 그는 자정까지 울콩을 깠다.

내가 심지도 않고 재작년 심은 줄기에서 떨어진 씨앗이 한 광주리의 콩깍지를 낳았으니 하느님은 얼마나 푸짐하신가! 보스코는 콩을 까면서도 콩알마다의 그 포근하고 매끄러운 잠자리, 콩마다 하나씩 번갈아 좌우대칭으로 엄마 젖꼭지를 물려주는 배려, 건강한 콩알들은 곧잘 튀어나오는데 병들어 찌든 콩알은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는 배려, 콩깍지의 그 단단한 질긴 껍질을 두고 철학교수답게 '콩나무의 지혜'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파인애플 케이크 만들기>

배합비  계란 4개               럼주 ½컵, 파인애플 즙 ½컵
        밀가루 200그램         파인애플 통조림 1통
        설탕 200그램           소금 2그램
        버터 150그램           베킹파우더 5그램
        아몬드 100그램 (잘게 다져둔다)

공정  ① 버터 + 설탕을 거품기로 저으면서 먼저 계란노른자, 다음 흰자를 넣어 크림화 한다.
              럼과 파인애플 즙을 미리 섞어둔다.
          ② 밀가루에 베이킹파우더를 섞어 체로 친다.
          ③ 앞의 ①과 ②에 준비한 것을 한데 섞어 반죽한다.
          ④ 아몬드 다진 것 70그램을 넣어 반죽을 계속한다.
          ⑤ 반죽을 계속 한다.
          ⑥ 럼과 파인애플즙 혼합액을 반죽에 섞는다.
          ⑦ 팬 바닥에 설탕 큰 숟갈 5, 물 큰 숟갈 1을 넣어 카라멜화 시킨다.
          ⑧ 카라멜화 시킨 것을 팬바닥 종이 위에 깔고 그 위에 파인애플 조각 5~6개를 얹는다. 
               남은 아몬드를 그 위에 마저 뿌린다.
          ⑨ 그 위에 반죽을 얹어 180도에서 40분간 구워낸다.         

          구워낸 것을 거꾸로 뒤집으면 파인애플 케이크가 나온다.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http://donbosco.pe.kr/xe1/?mid=junprofi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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