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시각 장애인의 혼자 사는 즐거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함께 가진 채로 혼자 사는 사람 이원준 씨 (51세)
“혼자 사는 게 오히려 편해요”
“사실 여럿이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오히려 더 편하지요”

올해로 시각장애인(1급)이 된 지 34년, 혼자 산 지 11년 된 이원준 씨(51세, 안성 옥천동)의 알쏭달쏭한 이야기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 그 말의 이유는 이렇다.

혼자 사는 게 편한 이유



▲ 보청기를 사용해야 겨우 들리는 귀와 뜨고 있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진 이원준씨이지만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며 당차게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13년 전, 어머니가 11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같이 살 때 좋은 것도 많았지만, 불편한 것이 있었지요. 내가 놓아둔 자리에 물건이 없다든지, 바닥에 물건이 떨어져 있다든지 하면 당황하거나 걸려 넘어지곤 하지요. 혼자 있으니까 내가 둔 자리에 틀림없이 물건이 그 자리에 놓여 있으니까 편하지요. 뭐든지 감으로 물건을 옮기고 찾는 나로선 참 편리해요.” 듣고 나니 정말 그렇겠다 싶다. 직접 듣기 전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는데 말이다.

후천적으로 찾아온 시각장애와 청각장애

그는 어렸을 적부터 야맹증이 있는 등 시력이 약해지다가, 17세 되던 해에 급격히 시력이 약해져 안 보이기 시작했단다. 그 때 조차도 자전거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던 그는 감으로 자전거 수리를 한 자전거 전문가이기도 하다. 23세 되던 해까지 자전거 수리와 판매를 했다고 하니 가히 놀라운 일이다.

그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은 또 있다. 그의 귀에 끼어진 보청기가 바로 그것. 그는 보청기가 없으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5급)이기도 하다. 그나마 평생 같이 살았던 부모님들도 돌아가시고 나니 혼자서 생활한지 어언 11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낯선 곳에 가는 것은 큰 모험이지요.”

“정면은 보이지 않아도 양 옆으로 조금씩 보이는 것과 자꾸 다녀 보는 감각으로 인해 평소의 길은 잘 다니는 편이지요. 맹인용 흰 지팡이를 7년 전부터 사용하면서 한결 수월해졌어요. 그 지팡이가 제겐 정말 효자예요. 그 지팡이가 없으면 혼자서는 도저히 바깥에 못 가죠."

"하지만 낯선 곳에 가는 것은 제겐 큰 모험 이예요. 경험해보지 않은 곳은 엄두도 못내요. 이때까지 내가 다니던 길을 가보지 않은 경험은 시각장애인협회 행사 때 동료들과 함께 가본 것이 유일한 거죠.” 이만하면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생각의 거리로선 충분한 듯.

“내 요리를 맛 본 사람이 맛없다는 사람 못 봤어요.”



▲ 순전히 감으로만 물을 따르고 있는 이원준씨는 요리 실력도 상당하다.

그는 요리 실력도 수준급이다. 시각장애인 협회 회원들이 술 한 잔 하러 집에 오면 그는 손수 요리를 한다. 그가 한 요리를 먹은 동료들은 “ 아, 그것 참 맛있다.”를 연발한다고.

“내 앞이니까 그들이 그러겠지요. 허허허허허허”라는 그는 혼자 살아온 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두부찌개, 된장찌개, 콩나물국 등을 직접해온 요리경력자이다. 나에게 손님을 대접한다고 직접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어 컵에 따라주는 실력을 보니 평소 감각으로 요리하고 생활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해진다.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게 있어요. 다른 장애인들끼리 만나면 서로 자기가 더 힘들다고 말하거든요. 신체 장애인은 우리더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걷기라도 하고, 팔이라도 움직이지 않느냐’라고 말하고, 시각 장애인은 신체 장애인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그래도 눈으로 보고 살지는 않느냐’라고 하지요. 하지만 사람 사는 거는 똑같지요. 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평소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나도 몇 번 자살시도를 하곤 했지요. 그런데 결국 안 죽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죽을 운명은 아닌가보다 했지요. 30대 초반에 크나 큰 절망감에 빠져 헤매기도 했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마음도 편해지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돈 주고도 들을 수 없는 한 인간의 인생담을 혼자 듣는 특혜를 누리고 있는 나는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이 설렌다.

“정말 일하며 살고 싶어요.”



▲ 많은 대문 들 중에서 자신의 집이라는 표식으로 냉장고를 건드려야 하는 이원준씨는 모든 사물이 친구일 수밖에 없다. 그의 주위엔 필요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앞으로 원룸 아파트에 이사 갈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그는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니 삶이 참 무료하고 무기력하다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부업거리를 찾아봐도 마땅한 게 없단다. “만약 눈을 뜰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얄궂은 질문에도 “내 힘으로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라고 대답한 그를 보면 얼마나 절실한 소원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주위 모든 사물이 친구가 될 수밖에

자신의 집을 잘 찾아 들어가기 위해 놓여 진 그의 집 앞 낡은 중고 냉장고(사진 참조), 어디까지 들어 왔는지 알 수 있는 현관문 앞 나무 턱,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는 현관문 앞 빨래줄 등. 그에게 있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은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어느 것 하나도 그의 삶을 도와주지 않는 것은 없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그 누구보다 모든 사물에게 감사 할 수밖에 없는 착한 사람이 된다. 적어도 그의 주위에 있는 물병, 냉장고, 빨래줄 등에게는.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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