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흐리고 비
손 때문에 내 신분을 속일 수 없다. 얼굴이야 파운데이션으로 바닥을 하얗게 칠한 다음에 색조로 덧그림을 그리면 되지만, 내 손만은, 파티에 나온 서양여자들처럼 장갑을 낀다면 모르지만, 잔주름으로 긁혀서 다 닳아버린 손톱, 손톱 새에 낀 거무튀튀한 때, 마디마다 옹이진 손가락 등 농사꾼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밭일을 하면서 장갑을 끼라는 보스코의 말이 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목장갑을 찾으러 갈 틈도 없다. 또 풀 한 포기를 뽑아도 맨손, 그 손각락 끝의 섬세한 감각을 이길 게 세상에는 없다.
무도장에서 “부인, 저랑 함께 한 바퀴 도시겠습니까?”하는 신사의 손에 이 손을 얹어 스테이지를 돌 일도 없겠지만, 설령 캬바레에 나가 놈팽이의 손을 잡아도 "싸모님, 제비 한 마리 키우시지 않겠어요?"라는 유혹 대신 "아줌마, 오징어껍질 많이 벗기셨네?"라고 대뜸 반말이 나올 게다. 내 손을 늘 애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보스코의 눈길이 전부인 터에, 손의 미학의 기준을 타인들의 시선에서 내 효용 중심으로 전환시키기로 마음 먹으니 남 앞에서 쫄 일도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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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일은, 어려서 시골에서 살아본 여자들이 시골생활을 더 싫어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서상에서 만난 부인도 지긋지긋했던 논밭,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던 밭일 논일, 그 가난과 그 지저분함, 그 헐벗음이 싫어 자긴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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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밭고랑을 타고 앉지만 손에 만져지는 흙의 감촉이 전혀 생소하지 않다는 사실이 고맙다. 지렁이까지도 친숙하다. 굼벵이나 달팽이, 엄지공주를 노리는 두더지영감은 싫다. 그 영감이 텃밭에 터널을 파고 다니면 모든 농작물이 뿌리가 들려 누렇게 말라죽어버리므로 엄지공주만 아니고 시골 할매 할베들이 다 싫어한다. 농협에서 파는 “두더지까자(과자)”를 구멍 입구에 놓아보지만 먹고 간 기색도 그 영감 부고장도 받아본 일 없다.
인천의 친구 체칠리아씨가 3년 전 받은 다리수술로 벋정다리가 되었단다. 나도 무릎수술을 받고서 벋정다리가 되었지만, 시인 김남조씨가 그 고생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고서, “남은여생 3, 40년을 벋정다리로 고생할 순 없지.”하고서 치료에 나섰다. 다행히 북가좌동에 사는 이집사님에게 1년 이상 치료를 받아 무릎을 꺾고 원상으로 회복되었다. 빵고도 학교에서 당한 무릎 파열과 도가니뼈 탈골로 두세 번이나 무릎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3, 4일 만에 스스로 무릎을 꺾고 걸었단다. “주님의 제단에 엎드려 무릎 꿇는다.”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으로! 체칠리아씨도 맘먹고 나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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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층 마루방에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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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층 벽돌방에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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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층 식당에도 겨울식구가 가득해졌다 | ||
어제 화단에서 화분으로 옮긴 꽃들을 모조리 집안으로 데려왔더니 마치 전서방한테서 낳아온 자식들 보듯이 보스코가 눈을 흘기고 혀를 차지만, 이 꽃들도 나도 겨울채비 마쳤으니 한 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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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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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