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교회와사람 전순란의 <휴천재일기>
"한국의 학살'을 당신이 그렸소?" "아니오, 그것은 당신들이 그렸소!"<전순란의 휴천재일기-2014.12.4>
전순란 | 승인 2014.12.09 11:22

2014년 12월 4일 목요일, 지리산에는 눈 눈 눈

아침에 눈을 뜨고 내다본 세상에 눈이 가득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창밖으로 내리고 녹고 또 쌓였다. “여보, 오늘 크리스마스트리 합시다. 눈도 내리는데 무드도 있고... 당신이 나무를 세우고 꽃전등을 두르면 내가 방울을 달고 아래층에 구유를 만들면 어떨까?” “그러지 뭐.”

   
 
그는 73세의 나이에도 여덟 살짜리 시아처럼 신이 나서 3층 다락에서 성탄장식품 상자들을 꺼내서 들고 내려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가지들을 박고 반짝이 꽃전등을 두른다. 반짝이는 전구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눈길이 너무도 귀엽다. 결혼 첫해부터 시작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우리에게 언제까지 이런 열정이 남아 있을까? 언젠가 “여보, 크리스마스트리 할까?”라는 한편의 물음에 다른 편에서 “어휴, 귀찮아!” 할 날이 올까? 내게는 그런 날이 안 올 것 같은데, 그럴 바엔 차라리 천국으로 올라가 하느님의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려 반짝이는 꽃전등 하나가 되고 싶은데...

   
 
   
 
   
 
   
 
창밖으로는 펑펑 함박눈이 내리죠, 휴천재 이층 마루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죠, 아래층 식당에는 성탄 구유가 꾸며져 있죠... 카페라떼를 한 잔씩 놓고서 저 논과 앞산을 바라다보면서 우리 둘의 얘기는 의사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이 애달프던 러시아 코카서스 평원에서 시작하여 게리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이어지고,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와 “한국의 학살”을 떠올린다. 피카소의 화실을 찾아온 나치대원이 그 그림을 가리키며 “당신이 그렸소?”라고 묻자 “그것은 당신들이 그렸소!”라고 대답했다는데...

“게르니카의 학살”은 스페인 선거를 뒤집고 군사반란을 일으킨 프랑코 정권을 지원하여 나치 공군이 무차별 폭격으로 저지른 대학살이었다!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은 인천상륙작전을 거친 미군이 북한으로 진격하여 황해도 신천에서(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삼만오천삼백팔십삼명(35383)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을 그린 그림이란다! 지금의 우리 시국에도 똑같은 문답이 오갈 법하다.

   
 
   
 
엊그제 경향신문에는 아흐메드 알 다라위라는 이집트 유복한 가문 출신의 젊은이 얘기가 실렸다. 2011년 “아랍의 봄”에 이집트 무바락 독재자를 축출하는데 앞장섰지만 정권을 장악한 혁명세력이 이슬람 근본주의와 현실주의로 양분되었고 그 틈을 타 군부의 쿠데타로 혁명이 무산되자 그는 “이슬람국가(IS)”의 군대에 가담했다 얼마 전 이란 전선에서 전사했다는 뉴스였다. 그곳 젊은이들에게 “아랍의 봄이 주었던 희망이 어떻게 절망으로 변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평이 나왔다.

유럽에서 수천 명 젊은이들이 왜 헤밍웨이 소설의 로버트 조던 교수처럼, 소아시아로 건너가서 “이슬람국가”에 가담하는지, 지금 대한민국의 양심 있는 지성인들이 왜 그리도 깊은 속병으로 신음하고 있는지, 저렇게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왜 내 동창 임순혜는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조희연 교육감 기소규탄 기자회견’이며 경찰청 앞에서  “권오헌 선생 자택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는지, 그런데 우리 부부는 지리산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따뜻한 몸을 웅크리고 따스한 커피를 들면서 저런 시국을 왜 말로만 얘기하고 있는지...

흰눈이 내리고 내려 아랍인들과 팔레스타인들과 한반도의 진보지식인들이 당하는 처참한 인간유린을 덮어버릴 수 있으면 오죽 좋으련만 거기서 흐르는 붉은 선혈과 뜨거운 눈물은 우리 양심의 고동을 결코 지우지 못하느니... 밤이 늦도록 눈발은 멈추지 않고 저 눈길을 걸어서 올바른 세상을 꿈꾸며 산으로, 만주로, 사막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인류사가 종막을 고하고, 한겨레가 꾸려가는 역사가 끝나고 “하느님이 태초에 떠놓으신 거대한 작품을 펼쳐 보이실 제 핏빛 구슬 하나 하나 되어 어느 귀퉁이에서 반짝이게 해주십시오.”

(http://donbosco.pe.kr/xe1/?mid=column05&document_srl=2930)라는 보스코의 기도문(40년전의 글)을 새기며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http://donbosco.pe.kr/xe1/?mid=junprofiie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