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교회의 선교역사(1983-2005)와 새로운 과제 ⑥

본지는 지난 회를 포함해 앞으로 6회에 걸쳐 황홍렬 교수(부산 장신대, 선교학)의 <민중교회의 선교역사(1983-2005)와 새로운 과제>를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연재 합니다.

①방법론: 민중의 사회 전기
②민중교회의 선교 역사- 형성기, 발전기
③민중교회의 선교 역사- 변형기, 전문화 시기
④민중교회 목회자의 사회전기
⑤민중교회의 선교에 대한 반성
⑥민중선교의 과제

V. 민중선교의 과제

1. 영성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초기에는 주로 이데올로기에 관심을 가졌지만 차츰 영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민중목회 경험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의식화나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종교가 지닌 가치관 뿐 아니라 삶의 방식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자기 자신들의 삶의 변화 없이 민중의 변화를 촉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민중교회 목회자들 스스로의 삶과 생활방식의 변화의 필요성과 이를 수용하는 것을, 종교 본래의 구도자의 삶을 영성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영성은 민중의 고난 가운데에서도 민중으로 하여금 민중해방을 향해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격려하고, 많은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하는 신앙의 힘이다. 인간의 지식은 행동을 담보하지 못한다. 영성은 자기가 알고 이해한 것을 실천하고 그대로 살고, 우리로 하여금 자기초월을 이루며, 민중신앙공동체로 하여금 사회변화를 위한 촉매로 살도록 도전하게 한다. 이런 영성을 민중 그리스도인들과 민중 교회를 위해 부단히 개발하는 것이 민중선교의 과제다.

민중교회의 교회됨과 민중 선교(활동)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영성이라면 그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세계교회협의회 안에서도 교회의 교회됨(신앙과 직제 운동)과 교회의 행동(생활과 봉사 운동, JPIC) 사이의 괴리는 양 운동 그룹이 세계교회협의회라는 단일 조직 안에 들어온 뒤에도 거의 반 세기동안 극복되지 못했음을 본다. 이런 괴리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우리는 예배의 체험과 영성의 심화 속에서 교회론과 윤리학 사이의 다리를 발견한다.”1) 교회운동의 양 진영의 만남은 예전의 갱신과 영성의 심화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체험하는 예배나 영성은 교회론과 윤리학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보다는 넓히는 예전주의, 영성주의의 유혹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예전적 코이노니아는 항상 윤리적 선언을 간직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런 코이노니아는 배반당하고 영성주의로 전락한다. 윤리적 코이노니아는 항상 예배 생활 (대부분의 경우 성만찬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런 코이노니아는 불완전하고 행동주의와 도덕주의로 전락한다.”2)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민중선교의 과제다.

2. 민중
산업사회에서의 빈부간 차이보다 정보사회, 지식기반사회에서 정보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가 더 심해지고 있다. 정보망은 항상 가진 자의 손에 있기 때문에 민중선교는 민중 사이의 의사소통의 연대를 추구해야 하며3), 이런 연대를 지역, 국가, 대륙, 전 지구적 규모로 확장하여 그물망을 짜야 한다.

민중운동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으나, 80년대 후반부터 시민운동이 새로 부상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연방 해체,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와 1993년 소위 ‘문민정부’ 등장 이후 시민운동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언론에 의해 과대포장 된 면도 있었지만, 근원적으로는 민중운동과 중간층 중심의 시민운동을 분리시켜 민중운동을 고립시키려는 정권의 전략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97년 이후 국제금융기구(IMF)에 의한 경제신탁통치는 시민운동이 사회변화에 끼치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민중운동이 저항하고 시민운동이 이를 지지할 때 사회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시민운동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민중운동을 지원할 때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도시산업선교는 민중 스스로의 조직을 통해 “민중 권력” 창출하는 것을 장점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역에 초보적인 민중조직을 만들어낸 것을 통해 “민중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낭만적”이다. 그런 민중조직이 지역에서 “보다 큰 권력게임이나 내적인 이익들의 갈등”의 목표가 되지 않도록 민중조직을 지지하는 여러 시민세력들이 반드시 필요하다.4) 민중선교의 과제는 시민사회 내에서 다양한 지지 세력과 연대함으로써 민중공동체와 민중신앙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이다. 또 지역의 민중조직은 전국적 민중조직, 대륙의 민중조직, 나아가서 전 지구적 차원의 민중조직과 서로 연결될 때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연대의 그물망을 짜는 것이 민중선교의 중요한 과제다.

민중에 대한 이해가 WCC CWME의 1980년 멜버른 대회에서는 복음의 담지자로부터 1996년 살바도르 대회에서는 문화의 담지자로 전환했다. 민중은 이제까지 소외되고 억압받고 가난한 자들로서 주로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측면, 민중이 갖지 못한 측면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제는 민중이 전통문화와 전통종교를 지녀온 자들로서 적극적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이주 노동자의 경우 그들의 “비참과 고난”을 통해 자신의 “역사의 기억과 문화”를 함께 가져옴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의 씨앗”이 널리 뿌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고국에서는 잊혀진 존재이고, 새로 정착한 곳에서는 차별과 심지어는 박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 두 사회의 문화 사이에 다리를 만들고, 두 민족과 두 문화 사이에 만남의 장소를 만든다.5) 민중선교의 과제는 민중들이 지닌 문화와 종교 가운데 민중 해방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 요소들을 되살려내고 강화하며, 민중해방을 거스를 수 있는 요소들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위한 아시아 민중의 투쟁이 아시아 종교 흐름과 만나지 못하면 그런 투쟁은 아시아 민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아시아의 종교성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실패하는 어떤 투쟁도 결국에는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될 것이다.”6)

3. 생명
민중선교가 90년대 중반 이후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여성민중선교, 이주노동자 선교, 장애인 선교, 환경선교, 청소년 선교, 도시와 농촌을 연결시키는 생명선교 등 다양해진 민중선교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민중개념이 확장되면서 민중은 이들을 모두 포괄한다. 그러나 이들을 포괄하고 이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생명이다. 민중을 치유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는 것(요10,10)이 민중선교의 과제다.

따라서 민중선교의 과제는 생명을 억압하는 반생명의 실체를 밝히고 그것을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생명은 무엇/누구인가? 생명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단 생명들만의 의존이 아니라 우리가 무생물이라 여기는 것들과도 생명은 의존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생명” 이라 부르기도 하고, 지구상에 하나의 생명(온생명)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7) 이러한 생명을 위협하는 것을 김지하는 인식론적 이원론과 소유욕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반생명적 흐름에 저항하는 생명운동의 주체를 그는 여성과 민중이라 했다.8) 민중선교의 과제는 여성, 민중, 인종적, 종교적 소수로 하여금 인간과 자연의 구별, 주체와 객체의 구별, 남녀의 구별을 넘어서서 빈부차이를 넘어서는 피조물 공동체를 살려 가는 것이다. 피조물 공동체를 살리는 지혜가 기독교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민중이 지닌 전통종교와 문화 안에 있는 반생명적 요소들, 죽임의 문화를 식별하고 해방과 치유, 생명을 살리는데 도움 되는 요소들을 식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민중선교의 과제다.

신자유주의와 결합된 지구자본주의의 위력 앞에 가난한 자들이 죽음에로 내몰리는 불의한 세계경제체제 속에서 기독교의 선교과제는 무엇인가? 세계교회협의회의 총무인 콘라드 라이저는 1998년의 8차 총회에서 세계 지배를 목표로 하는 지구화의 비전과 모든 피조물을 위한 지속 가능한 생명의 공동체를 목표로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세계에 대한 비전 사이에 갈등이 있음을 회고하면서, 대화와 연대를 대안적 생명문화의 중심적인 징표들로 제시했다. 그는 이 세상의 지구화의 한 특징을 폐쇄성이라고 했다. 즉 가난한자들의 안전이나 존재의 기초를 찾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없으며, ‘역사의 종말’을 주장함으로써 열린 미래,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 또는 특별한 역사나 기억의 가치를 부정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닫힌 공간’과 ‘역사의 사라짐’을 그는 죽음의 상징들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세계(oikoumene)는 모든 생명이 자기 삶을 펼쳐나가도록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삶의 공간으로서의 세계라고 했다.9) 이 세상이 지향하는 죽임의 경제(economy)에 대해 하나님의 생명의 경제, 하나님의 경제학(economy의 희랍어인 oikonomia는 집을 뜻하는 oikos와 법을 뜻하는 nomos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집을 살리는 법으로 생명 공동체의 살림살이/경제를 뜻한다)10)을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 선교는 지구화의 희생자들을 돌보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의 살림살이/피조물 공동체의 경제라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기독교의 선교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 일치와 연합(ecumenism)과 생태계(ecology), 하나님의 경제학(oikonomia)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동일한 어근(oikos, oikoumene)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즉 기독교의 선교는 하나님의 경제/살림살이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이 길 이외에 이 세계/생태계를 살릴 길이 없다는 것과, 세계에 대한 선교에 앞서서 교회가 먼저 하나 되고 하나님의 생명의 경제를 위해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교회로 하여금 선교를 향해 나아가기 전에 먼저 교회와 그리스도인 자신에게로 도전한다.

1) WCC, "Costly Unity" para. 9. in Thomas F. Best and Martin Robra(eds.), Ecclesiology and Ethics: Ecumenical Ethical Engagement, Moral Formation and the Nature of the Church, (Geneva: WCC Publications, 1997), 7.

2) WCC, "Costly Commitment" para. 50. in Thomas Best and Martin Robra(eds.), op. cit., 39.

3) KIM Yong-Bock, "Review of URM Experiences in Asia and Future Challenges to the Asian URM Movement" in CCA, Practical Theory: URM Paper, (Hong Kong, CCA URM, 1995), 42-47.

4) OH Jae-Shik, "30 Years of URM in Asia: A Critique" in Practical Theory: URM Paper, (CCA URM, 1995), 7-8.

5) Oh Jae Shik, "People are on the Move: The Asian Churches' Response in Historical Context" in CCA, WCC, Uprooted People in Asia, (Hong Kong: CCA, 1995), 51.

6) Rienzie Perera, "The People of Asia and the Living Religions" in CCA, Thinking Ahead: URM Paper, (Hong Kong: CCA URM, 1992), 45.

7) 장회익, “우주생명과 현대인의 암세포적 기능” 김종철 편, 『녹색평론선집1』(서울: 녹색평론사, 1998), 122-123.

8) 김지하, 『밥: 김지하 이야기모음』, (서울: 분도출판사, 1984), 114.

9) Konrad Raiser, "Opening Space for a Culture of Dialogue and Solidarity: The Missionary Objectives of the WCC in an age of globalization and religious plurality" in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vol.88, no.350 (July 1999).

10) M Douglas Meeks, 홍근수, 이승무 옮김, 『하느님의 경제학: 신론과 정치경제학』, (서울: 한울, 1998)을 참조하시오.

황홍렬(부산 장신대, 선교학) hwanghe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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