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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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 예상은 딱 들어맞았다. 내가 삼청피해자를 알고 물어물어 찾아가면 한결같이 <나는 피해자가 아니오>하고 고개를 흔들며 뒤고 한발 빼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는 만나자고 약속을 해놓고 자리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허다했다. 나는 노동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자신이 자신에게 <힘을 내라>고 다독이며 부릅튼 발을 끌고 시내를 마구 쏘아 다녔다. 하지만 기대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무참히도 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달 ,나는 더 이상 피해자들에게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판단을 끌어내고 있었다. 더 이상 피해자들의 의식구조에 매달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자꾸만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피해자들의 소시민적 자의식과 피해의식은 그들을 동지라 할 만한 정신적 구조가 되어있지를 않았다. 자기희생도 생각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에게 되돌아 올 또 다른 피해에만 가슴 졸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기대치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치 않기로 했다.
86년 봄날 새벽녘 한 뭉치의 자료를 가슴에 품었다. 노동으로 모아둔 십 만원과 3년 동안 써두었던 일기 복사본, 삼청교육대 신문자료, 감호소에서 틈틈이 기록해 두었던 사건일지 등 나는 두툼한 서류 봉투를 가슴에 품었다. 한 벌 산 곤색 양복을 정장하였다. 혹시 불심검문에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공무원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깨끗한 옷차림을 선택하였다. 머리에는 포마드도 발랐다. 거울을 비춰보니 이삿짐센터의 노동자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고 어느새 고급 공직자 한분이 거울 속에 서 있었다.
나는 일단 부산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었다. 그곳은 울산 이었다. 불심검문이 엄격한 부산보다는 울산이 더 탈출에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나는 당시 2km 이상을 벗어나면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했고 행선지와 목적지를 정확히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출소 뒤 일년 동안 그 짓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아예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나를 정보기관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관찰하고 있었던 가도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용감했다.
일단 공무원 복장처럼 위장한 나는 서울의 출판처를 찾기 위하여 <장전동 새벽구상>을 실천키 위하여 장전동을 나섰다. 그러나 그때 내 뒤를 따르는 은밀한 그림자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약 이년 가까이 정보원이나 경찰이 내 주변에 한 번도 가까이 다가온 적이 없으므로 나는 그 같은 상황을 전혀 의식치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가능한 한 나의 자세나 품위가 고위 공직자의 냄새가 풍기도록 걸음걸이조차 바꾸며 걸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쇼 윈도우에 비쳐진 나의 모습은 정말 품위 있는 신사였다. 당시는 <이적표현물소지죄>라른 국가보안법상의 악법이 철저히 적용되던 시절이라 나는 내가 안고 있던 서류봉투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였기에 허술한 옷차림으로 신분을 의심받아 불심검문에 걸리기만 하면 100% 엮여 들어갔다. 정권을 비판하는 서적 한권만 소지하고 있어도 이적표현물 소지죄였으며 심지어는 재야단체의 홍보물 한 장만 들고 있어도 그 죄명은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쇼윈도우 속의 내 자신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한 일이 없으리라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어느 누가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운동권 인사라고 의심할 것인가 그러나 그러한 나의 꿈은 불과 1시간 뒤인 울산 검문소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버스가 갑자기 검문소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나는 하염없이 창밖을 감상하고 있다가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하여 기분이 묘하게 뒤틀림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검문소일지라도 일반 버스는 검문을 잘하지 않던 게 관례였다. 자가용이나 승용차만 신분증을 자주 요구하곤 했는데 <오늘은 웬 일로 버스까지 세운담.>하며 속으로 투덜거렸으나 버스가 급정거 하자 말자 경찰 세 명이 빠르게 실내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실내를 한바퀴 <휘>둘러보더니 다른 곳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내가 앉은 방향을 뚫어지듯이 주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몇 초 경찰한명과 전경 두 명이 뚜벅 뚜벅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쯤 되어서야 나는 간이 쪼그라듦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설마>하며 그들이 내 앞을 지나치기를 기대하며 신문에 코를 박았다. 그러나 군홧발이 내 앞에 <퍽>멈춤을 육감으로 느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신분증 좀 보여 주시죠> 그 목소리는 쇠 소리처럼 차갑게 내 귀를 파고들었다. 순간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침착했다. <나 말이요？ 신분증을 갖고 오지 않았는데……>나는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도리어 주민등록증이 필요 없는 인간이었다. <신분증 보여 주시죠> 그가 두 번째 얘기를 했을 때 나는 <난, 세무공무원이요>하고 얼떨결에 신분 사칭 발언을 하고 말았다. 그가 다시 이어 <그 봉투 속에 내용물이 무엇이죠？>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뿔싸？> 하고 놈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 봉투임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이건 출장서류요.> 이어서 사내는 <죄송합니다. 좀 내리셔야겠습니다> 그는 버스에서 하차를 요구했다. 버스속의 눈길들이 전부 내게로 쏠렸다. 나는 그 눈길들이 무척이나 낯설음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타국에 온 이방인에게 보내는 그런 낯선 눈길이었다. <아->나는 짧게 절망감을 토해냈다. <내립시다> 경찰은 하차를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승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나는 일어서면서 봉투를 의자 밑으로 <툭>하고 차버렸다. 적어도 증거물은 없애버려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거, 가지고 가셔야죠> 어느새 전경이 봉투에 눈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버스에서 발을 떼자말자 버스는 더러운 벌레라도 떨쳐버렸다는 듯이 시원스럽게 (뿌-앙)급발진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버스가 사라진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는 내가 어떤 순간에 봉착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경찰은 봉투속의 내용물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봉투를 뺏으려 했다.
나는 저항했다. 봉투를 뺏기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출장서류요 손대지 마시오. 손대지마？>나는 악을 썼다. <왜 남의 사물에 관심을 가져, 안돼 이건！>그들은 필사적으로 봉투만 뺏으러 달러들었다. <이건 공무 서류라니깐！>나는 급하다보니 해야 할 말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를 이미 구분 짓지 못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에 어떤 후환이 따르는지를 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경찰 서너 명이 나의 팔을 비틀고 몸을 결박하여 꼼짝을 못하게 한 것은 저항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봉투를 뺏기고 말았다. 그때 사복 차림을 한 사내가 검문소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경찰들로부터 거수 경례를 받았다. 그리고 여유스럽게 내 봉투속의 내용물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한참동안 내용물을 뒤적이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이거, 준비 했어？ 바빴겠군, 이삿짐센터 일하랴 나라 망신시키랴 흑심 품으랴….>나는 그를 노려만 볼 뿐 더 이상의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들의 득의에 찬 웃음소리만 귓가를 <앵앵>거리며 맴 돌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 너머 저편으로 또다시 지나온 4년여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공무원 자격 사칭>등의 서너 가지 죄목으로 또다시 머나먼 그 땅으로 영어의 몸이 되어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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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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