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당에 높이 올라간 오죽을 잘라야겠다.
금년에 새로 올라온 죽순이 하늘 높이 솟아 있어서
작년에 나온 것은 잘라내야 하는데 하루 이틀 미루고 있다.
언제 이었던가 강릉에서 오죽헌에 갔던 게.
그 뒤로는 오죽을 길러보고 싶었는데
서울에서는 추워서 안 된다기에 포기하고 있었다.
내 회갑 때 나를 축하해서 오죽 화분을 하나 샀다.
내 새끼손가락만도 못한 대가 다섯 나무 심어 있는데 그런 종류인줄 알았다.
어디선가 오죽이 밖에서 사는 것을 보았다.
밖에다 심으려고 화분에서 꺼내 보니 스트로프 조각들이 잔뜩 들어있다.
어쩐지 화분이 가볍드라니.
뿌리가 스트로프 사이를 헤집고 들어박혀 있다.
아이고 얼마나 답답하니?
스트로프를 다 뜯어내고 땅에다 심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굵은 것이 나오더니
키도 커지면서 우리 집 지붕을 훌적 넘어 올라갔다.
바람 부는 날 그 큰 대가 휘어지더니 부러져버렸다.
마당 가득이 뻗어나는 모양인지 봄이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금년에도 20개는 더 나왔다.
위치가 알맞은 것만 살려 두었는데
바로 대청 앞에 큰 놈이 두 개 우뚝 서있어서
작년에 나온 것을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톱을 들고 나가서 밑둥에 대고 톱질을 하는데 만만치 않다.
이런 건 남편이 하겠다고 나서면 얼마나 기특할까?
도대체 우리 집에서는 내 손이 안가면 움직이는 것이 없다니까.
투덜대 봐야 나만 웃기는 사람 되지.
여태 그렇게 살아왔으면서 뭘 새삼스러이 바라누?
가지를 다 쳐서 들고 옥상 밭으로 올라간다.
잎을 잘게 잘라서 밭의 흙을 덮어준다.
밭에 흙이 얕아서 가뭄을 타는데 안 되었어 서
새로 모중 낸 상추와 아욱 사이사이를 헤치며
얌전히 흙 위에 덮어주려니 여간 시간이 가는 게 아니다.
그래 수를 놓는다고 생각하자.
나야 십자수 밖에는 별로 수룰 놓아본 일이 없지만
나도 흙장난을 하면서 댓닢으로 밭에다 수를 놓자.
상추라는 작은 생명을 심어놓고 그게 더울까봐,
목마를까봐 댓닢을 갈아주면서 그 생명의 흐뭇해하는 모습을 바라보자.
넓은 밭을 가꾸는 사람들이야 밭에다 습포를 깔아 잡초를 막겠지만
나야 손바닥만 한 밭이니 댓닢을 깔아 흙을 덮고 습기를 보존하면 되겠지.
대나무 하나의 생명이 끝나고
작은 잎들이 땅으로, 자연으로 돌아갔구나.

안상님  sangnim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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