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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기획연재] 제9회 진실한 관계는 어떻게 가능한가고정욱 동화 [가방 들어주는 아이]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 승인 2015.03.15 11:49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십자가가 있고, 종식이의 십자가는 장애라는 십자가야. 이왕 지는 십자가 슬픈 마음으로 져야겠니?”

작가 고정욱의 작품 [아주 특별한 우리 형]에서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형 ‘종식이’를 돌보던 할머니가 ‘종식이’한테 하신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건 피하고 싶지만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인가요. 십자가는 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끔찍한 형틀이었지만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그리스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는 최악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신의 은총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통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한 위로의 말이겠지요. 그런데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작가 고정욱이 마음이 가난한 우리를 위로하고 있네요. 장애를 갖고 태어나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닌 그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 만큼 우리는 가련합니다. 어느 누구 하나 감동시킬 수 없는 인생이니 그 얼마나 가련합니까. 누가 저주를 받은 것이며 누가 은총을 입은 것인가요.

작가 고정욱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는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태어나 걷지도 못 하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다닐 동안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개근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공부도 늘 최고였답니다. 엄마 등에 업혀 매일 등교를 했으니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힘들어도 그 자식이 가져다 준 행복은 또 얼마나 컸을까요. 이렇게 자라 작가가 된 그는 지금까지 250여 권의 작품을 냈고 어떤 작품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해졌습니다. 유명인이 되었는데도 그는 참 겸손합니다. 어린이 독자의 편지에 빠짐없이 답장을 쓰시는 것으로 유명하고, 책이 많이 팔려 번 돈 수 억 원을 장애우를 위해 기부하신 적도 있다고 합니다. 사지 멀쩡하면서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늘 투덜거리는 저에게 고정욱 선생님께서 감동적인 삶과 이야기로 큰 가르침을 주십니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고정욱 선생님의 대표작이자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일 겁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석우’는 작가가 고등학교 다닐 때 그의 가방을 들어준 친구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랍니다. 잘 짜여진 스토리가 독자를 몰입시키는 힘을 가지기는 하지만 실존 인물의 실재 얘기만큼 큰 감동을 주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 형]이라는 영화가 250만 명 가까이 관객을 모을 만큼 인기가 있었지만 고정욱 선생님의 [아주 특별한 우리 형]만큼의 깊은 감동을 주지는 못합니다. 두 작품 모두 장애를 갖고 있는 형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는 동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같은 작품이 아닌가 헷갈릴 수도 있는데 이야기의 진실성은 비교가 안 됩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답니다. 고정욱 선생님은 당신의 삶 자체가 너무나 감동적인 드라마였으니 그의 작품이 가진 진실성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 분의 대표작 [가방 들어주는 아이] 작품 한 대목을 먼저 봅시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상장과 상품을 석우에게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석우는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서 받아라.”
  교장 선생님이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석우의 팔은 석고상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서 받으라니까.”
  교장 선생님이 재촉하자 석우는 울음보가 터지려고 했습니다. 이 상을 받으면 정말 나쁜 아이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얼른 받아. 왜 그러니?”
  교장 선생님은 상장과 상품을 억지로 석우에게 떠안겼습니다.
 “자, 돌아서서 인사해야지.”
  하지만 석우는 차마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녀석이…….”
  교장 선생님은 별 희한한 녀석 다 본다는 얼굴이었습니다. 석우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으아앙!”
  운동장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습니다. 연단에서 울고 있는 석우의 울음소리만 운동장 가득 퍼져 나갔습니다.

전교생 앞에서 모범상을 받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석우는 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릴까요. 1년 동안 목발 짚고 다니는 한 반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는 선행을 했으니 모범상을 받아 마땅하며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인데 석우는 도리어 눈물을 쏟을 만큼 그 자리가 창피한 모양입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1년 동안 등하교 길에 ‘찔뚝이’라고 놀림을 받는 한 반 친구의 가방을 들어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찔뚝이 똘마니’라는 놀림이 얼마나 싫었겠어요. 그 마음 고생이 얼마나 컸으면 그 많은 아이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까요. 석우는 한 해가 다 가고 학년이 올라가면 이 짓을 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홀가분해지긴 했지만 이제 누가 영택이 가방을 들어주는지 걱정이 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시켜서 마지못해 하게 된 일이었지만 이제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영택이랑 반도 달라졌으니 혼자 얄밉게 등교해 버린 자신이 모범상을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울어버리기까지 합니다. 1년 전에 그렇게 밉상이었던 석우가 영택이 덕택에 마음씨 고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뭔가 조금이라도 뛰어난 점이 있어야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그 심정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100여 년 전 톨스토이의 질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난한 구두장이 셰몬에게 천사 미하일은 추운 겨울 벌거벗은 체 한데에서 떨고 있는 가난뱅이 거지로 나타납니다. 천사 미하일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깨달음을 준 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죽어 천애의 고아가 된 쌍둥이 아기입니다. 우리는 높은 자를 우러르고 강자가 되려고 열심이지만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는지, 마음이 넉넉해지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어렴풋하게나마 재물이나 지위 따위는 한 순간 만족감을 줄지는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다 헛될 것이란 걸 눈치 채고 있는 건 아닙니까. 이 비정한 현실에서 착한 마음씨 기르는 이야기가 무슨 대수냐 하겠지만 진실로 그런가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건가요.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hansu8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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