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파독 광부였던 최정규 선생님의 노동자의 삶과 교회, 신앙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편집부-

"나의 꿈은 하루 밥 세끼 먹는 거"
"잘 살아야 헌다" 말하고, 스스로 목숨 끊은 아버지

부안 집으로 돌아온 저는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김제에서는 저 혼자였는데 부안 집에는 누나 둘에 형, 그리고 동생이 있었습니다. 또한 사촌, 육촌 친척들이 한동네 가득해서 고모, 삼촌, 형들, 누나들이 무지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 마을 사람들의 80% 정도가 최씨이었던 거 같습니다.

아버지는 키가 크고 힘이 센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엄청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머슴살이 하면서 우리 논 농사도 하셨으니 밤낮없이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느 날 새벽에 여느 때처럼 찰밥덩이를 들고서 우리를 깨우고는 찰밥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잘 살아야 헌다. 애비 말 알아들었어?"
"잘 살아야 헌다.""잘 살아야 헌다."
저와 동생은 찰밥을 먹으면서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 찰밥은 아버지가 밤에 물 자세(물을 길어 올리는 농기구, 물수레라고도 함)로 물을 퍼 올리는 일을 하면 밤참으로 나오는 것인데, 밤일 하실 때마다 찰밥을 들고 새벽에 아들들을 찾아오셨으니 별 생각 없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가 오는데 동네 앞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이 저를 부르더니, "꺼먹둥아! 얼른 집으로 가거라. 니 애비가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기지 말어요. 새벽에 찰밥 들고 왔었는디. 거짓말도 하려거든 제대로 해요."라고 대꾸는 했으나, 멱 감으러(헤엄치러) 가자던 동무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들어서는데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얼른 달려가 보니 아버지께서 방에 누워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집에 태산 같은 기둥이 넘어진 것입니다. 그때 제 나이 12살이었습니다. 가난과 빚에 억눌렸던 아버지는 새벽에 참으로 나온 찰밥을 들고 와서 자식들에게 먹이면서 "잘 살아야 헌다."는 말씀을 남긴 채, 농약을 마시고, 당신의 지친 삶을 끝내신 거였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아버지는 대대손손 머슴살이로 살아온 우리 집 빚과 큰누나 결혼, 큰형 중학교 학비 같은 것도 빚을 내서 치렀습니다. 일은 뼈 빠지게 해도 빚은 늘어간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즈음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서 국민들을 생각한다며 ‘고리채 정리’라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했습니다.

박정희의 고리채 정책과 아버지의 죽음

빚을 진 사람은 국가에 누구누구한테 얼마 빚을 졌다고 신고하면 국가가 갚아주고, 빚을 진 사람들은 국가에 장기로 갚으면 된다면서 신고를 하라고 해서, 아버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돈을 빌려준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또 빚을 얻어야 먹고살 수가 있는데 그 길이 막혀 버린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아버지의 선택은 죽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리 집은 더 가난으로 깊이 빠졌습니다. 우선 중학교를 다니던 형도 그만둬야 했고, 국민학교를 다니던 저도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때는 국민학교도 기성회비인지, 사친회비인지를 내야 하는데 낼 수 없었기도 했지만, 학교라고 가면 전 매일 기합(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복도에 무릎 꿇고 손들고 있기, 공부하는 교실 앞에서 손들고 서 있기, 가끔은 걸상을 들고 서 있기도 해야 하는데 힘도 들지만, 가난해서 회비를 못 냈다고 해서 벌을 받는 게 더 싫었습니다. 물론 온갖 청소와 학교 밭농사를 짓는 벌은 제가 신나하며 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를 5년 6개월 다니다가 그만두고 옆집 논의 새를 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추수하면 쌀 한 말 준다고 어머니가 가라 해서 뜨거운 여름 볕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쳤습니다.
"워 ~ 이, 워 ~이"
제 목소리가 큰데 아마도 그때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누나는 '부엌데기'로 가고, 형은 농사를 짓고, 저와 동생은 쌍둥이 여동생과 막내둥이를 돌보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동생과 전 막내둥이를 업고, 또 한 사람은 쌍둥이 중하나는 업고, 하나는 걷게 해서 어머니가 일을 하는 들녘으로 밥을 얻어먹으러 다녔습니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농사 일이 있을 때는 푸지게 먹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밥을 얻어먹고 오려고 하면, 주인아줌마가 밥덩이와 남은 갈치토막을 싸 주시며, "잘 살아야 헌다."고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저 오살헐 놈이 가물치를 엄청 잡아와서" 
                                                                          
저는 짬이 날 때마다 이삭줍기를 했습니다. 감자, 보리, 고구마, 벼 등등 먹을거리 줍기를 열심히 했습니다. 먹을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메뚜기, 개구리, 물고기 등을 잡기 위한 온갖 방법을 연구하여 그것들을 잡아다 날랐습니다. 그때는 저수지가 근처에 있어서 정말 물고기가 많았습니다. 논에서 김을 매다가도 잡고, 또랑에서 멱 감다 잡고, 쥐덫(낚시)으로도 잡고, 물을 막고 퍼내서 잡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면 어머니는 간장으로 살짝 간해서 익혀 말렸습니다. 그걸 시래기와 넣어서 얼큰하게 끓여 먹으면 정말 맛있었습니다.

바늘을 호롱불에 달구었다가 낚시 모양으로 휘었습니다. 그리고 또랑에 있는 물왕골을 베어서 배를 만들고, 낚시 바늘에 개구리 새끼를 끼워서 긴 새끼줄에 달고, 그 줄을 물 숲에 길게 늘어놓은 다음, 다음날 아침에 왕골배를 타고서 새끼줄을 따라서 건져보면 팔뚝만한 가물치 열댓 마리 정도가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낚시 놓는 것을 쥐덫이라 합니다. 어머니는 그 가물치 껍질을 벗기고, 살만 도려내 초고추장에 무쳐서 보리밥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한번은 여름농사가 끝나는 초가을일 때 전 동생이랑 갈대밭에 있는 둠벙을 퍼내기로 했습니다. 헌데 겁도 났습니다. 그 갈대밭에는 뱀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둠벙은 우리가 농사짓는 방죽 논이라 불린 논 아래 또랑(수로) 속에 있는데 누군가가 오래 전 둑을 쌓아서 고추밭을 만들려고 갈대밭 속을 파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그 둠벙을 퍼내본 적이 없어서, 우린 틀림없이 그곳에는 물고기가 무진장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뱀 때문에 접근을 못하고 있다가, 가뭄이 오래 계속 되던 어느 초가을 용기를 낸 것입니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서 그 둠벙에만 물이 있어서 퍼내기는 쉬웠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주위에 뱀이 있나 없나를 살피면서 물을 퍼내는데 가물치만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한 가마를 넘게 잡은 것 같습니다. 다른 고기는 없었습니다. 지게로 가물치를 지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우리 온 식구가 달라붙어서 가물치 살을 초고추장으로 무쳐서 샘 속에 담가 놓고 며칠 동안 포식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저 오살헐 놈이 가물치를 엄청 잡아와서 얼매나 먹었는지, 허리가 지금까지도 하나도 안 아프당게" 하셨답니다.

세 끼 밥만 먹을 수 있었으면...

우리 동네는 앞뒤로 무진장 넓은 들녘에 벼농사 짓는 논들로 가득했습니다.
저녁이 되기 전에 하얀 이불 천을 벼 위에 살짝 덮어놓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이슬이 마르기 전에 달려가 이불 천에 앉아 있는 메뚜기를 잡습니다. 잠자는 메뚜기는 이슬 때문에 꼼짝 못합니다. 이불 천을 살살 털어서 가운데로 메뚜기를 모으면 됩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농약으로 오염되지 않았던 때라 메뚜기가 무척 많았습니다. 그렇게 메뚜기를 잡아오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살짝 볶아서 말렸다가 간식으로 먹게 했습니다. 제가 그때 잡았던 먹거리 이야기를 다 하려면 끝도 없겠습니다. 참게, 참새, 미꾸라지, 개구리, 오리, 쥐, 꿩 등을 몰고 잡고 하는 얘기 말입니다.

저는 동생들이 커서 혼자 놀 수 있을 때부터는 모쟁이로 일을 다녔습니다. 곡창지대인 우리 동네는 모심을 때면 작업단을 꾸렸습니다. 몇 센티미터 넓이로 심을 건지가 표식 된 긴 못줄을 양쪽에서 호루라기 불면서 옮기면 모심는 단원은 자기가 맡은 포기를 빨리 심어야 합니다. 모쟁이는 그 작업단들을 돕기 위해서 모가 손에 닿게 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질퍽한 논에서 흙탕물 치면서 '열나게' 뛰어다니며 모를 정리하는 일이 모쟁이입니다. 일당이야 모 심는 사람들의 30%도 안 되지만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돈벌이였습니다.

좀 지나서는 저도 작업단에 들어갔는데, 제 작업 목표량은 다른 사람들의 50% 수준을 심는 거였습니다. 다른 사름들이 여덟 포기를 심는다면 전 네 포기를 심는 거였습니다. 그 후 솜씨 빠른 작업단 누나들이 옆에서 거들어서 정식단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심기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우선 줄잡이가 호루라기를 불면 빨리 모를 심어야 하는데, 허리를 펼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줄을 옮기고 호루라기를 불어대니, 논이 끝나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허리를 펴는 것이 힘들어서, 한참 동안 몸부림을 친 후에야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벼 베기와 등짐 그리고 태질, 탈곡, 추수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도 가마니 치기를 위한 새끼 꼬기와 짚 다루기 등으로 쉴 날이 없었습니다.

그때 내 꿈은 초가삼간에 발 뻗고 잘 수 있고, 세 끼 밥만 먹을 수 있는 거였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정규  choi504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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