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지켜줄 수 있을 때, 그래도 이별다운 이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가슴에 담아두고 있어야 할 사람이라면 그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 가는 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주일 전쯤에 전염병(메르스)으로 인해 그 임종조차 지켜주지 못하고 편지로 그 마음을 대신한 부부의 사연을 들었다. 편지라도 읽어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메르스 환자들은 혹여 그 질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갈까봐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간단하게 최소의 인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된다고 들었다. 생명이란 것, 삶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생을 다 할 때, 나를 지켜봐주고 함께 해주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떠나는 것이 생명이자 삶이 아닐까?
얼마 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동영상이 만들어졌는데, 유가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그리고 직접 노래를 부른 동영상이었다. 함께 부른 노래는 다름 아닌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였다. 그 가사 중에 가장 가슴이 아프게 기억이 되는 것은 “힘겨웠던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가족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내도 안전망이 뻥 뚫린 가운데 허무하게 이별을 해야 해도 그 슬픔과 고통을 하소연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적합한 원인규명과 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와 몸짓을 취하려하는 순간 종북이 되는 그런 어이없는 현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지고 있다.
위기의 순간에, 죽음의 순간에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낼 수 없고, 곁에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신호탄이 아닐까.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시작되고 있고 한 사람의 죽음이 단지 그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라고 하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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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에 나주에서 아이의 시신이 택배로 보내진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중반의 여성이 자신이 거주하던 고시원(계단)에서 아이를 낳았고 출산 사실을 들킬까 두려워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아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신을 친정엄마에게 택배 상자에 넣어 보냈다. 친정어머니는 그것이 딸의 행동인지를 몰라 경찰에 신고하게 된 것이다.
사건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어린 아이를 그렇게 죽일 수 있을까?’,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등등의 질문이 일겠지만, 그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그 여성은 정상적으로(?) 아이를 출산하여 양육할 수 없었던 현실에 놓여있었다. 정상적이라는 것은 남편이든 동거남이든 공동 양육자가 존재하면서, 그 아이가 태어나서 자랄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이 조성되어있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여성은 이런 정상적인 여건이 둘 다 충족되지 못한 상황이었고, 더더군다나 필자의 짐작으로는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남성이 아이를 낳으면 일정정도 책임을 져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 아이를 태중에 배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연상되는 성서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갈의 이야기’인데, 사라와 아브라함의 탄압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사막에서 아들을 낳은 생존의 아이콘 하갈도 어쩌면 이 여성처럼 막다른 골목에 접해서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갈은 끈질긴 생존력과 신앙으로 그 아들과 함께 사막에서 살아남았고, 이스마엘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도 받게 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 여성은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고, 어쩌면 사막보다 더 열악하고 척박한 ‘고시원’ 생활로 자기의 목숨조차 가누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 아닌 그 어느 누구의 목숨까지 떠안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현실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 아이는 축복과 기쁨이 될 수 없었으며, 극단적 선택을 통해 낳자마자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 아이에게나 그 어머니에게나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극도의 비극이 발생한 것이고, 어쩌면 그 사건은 현재 한국사회의 민낯을 보는 것처럼 아프고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하갈의 생존 속에서는 자신과 어쩌면 그보다도 더 소중한 자식의 목숨을 살리는 숭고한 생존력이 탄생했지만, 21세기 신자유주의를 살아가는 어떤 여성들에게는 생존이라는 것이 그 자신조차 지켜내기 역부족인 그런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여인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짐작해 본다면, 이 척박함을 조금이라도 상상해 본다면, 그 어느 누구가 이 여인을 ‘살인범’으로만 매도하면서 빌라도처럼 손을 씻을 수 있을 것인가?
‘생명’의 존엄성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어떤 조건에서 가능할 것인가? ‘모성성’하면 ‘생명’으로 즉각 옮겨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성성을 지켜내는 장본인의 생존은 어떻게 추구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생명이라기보다는 ‘생존’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지켜낸다는 것이 때로 닿을 수 없는 불가능성으로 그저 고상하기 만한 허상에 불과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생명’을 이야기 할 것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는 지켜내야 한다.’, ‘모성성을 져버린 여성은 여성도 아니다’라고 하는 상식에 근거한 거대담론은 어쩌면 정상적인 여건이 구비된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생명’의 담지자로 ‘모성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은 일인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했었겠지만 그녀가 선택하지 못한 그 배후에는 안전망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중층의 고통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잣대는 그 여성의 복잡한 생존 현실을 가늠하기에는 너무도 짧고 덜 익었다. 행간에는 그 여성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모성성이 그렇게 까지 실추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또 어떤 깨인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까지 방치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으려하기도 한다.
그 옛날 예수가 만나셨던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을 떠올려 보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서 이야기에서나 오늘날의 이 사건에서나 그 사건이 벌어지기까지의 책임을 삼분의 일이라도 감당했어야 했던 남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때는 ‘정숙하지 못한 여인’으로 지금은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살인범’으로 정죄하려 벌떼 같이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조금의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인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여인을 둘러싼 삶의 여건을 알고 계셨기 때문일까? 예수는 사람들에게 그 여인을 판단할 만한 ‘옳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물으셨고, 사람들은 그것을 찾지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늘 우리는 이 여성을 향해서 무엇을 물어야 할 것인가? 만약 우리 중의 어느 누구가 이 사람과 같은 현실에 놓였다면 다른 선택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 여성보다 더 빨리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을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똑같은 현실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 여성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그 여성을 일방적으로 정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까지 사각지대로, 어느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열악한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는 그녀를 지켜내지 못한 우리 자신의 모습에, 이 사회의 척박함에 비통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 맞다.
“힘겨웠던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얼굴들이 이미 사라져 갔고, 또한 우리와 같은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아파하지 않는다면, 통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쌓아 온 지식과 신앙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고 : 제목은 부활의 '네버엔딩스토리'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미국 드류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하였고, 부정신학과 여성신학을 접목하여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알 수 없는 인간"이라는 박사 논문을 썼다. 부정신학의 "알 수 없음"을 탈식민지적 계급이해에 적용시켜 "거대담론"이 품을 수 없는 하위주체(서발턴)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화여대와 감신대에서 조직신학과 여성학, 기독교인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신학의 선구자들, 2014 공저] [21세기 여성신학의 동향, 2014 공저] 논문 "스피박의 서발턴의 관점에서 바라 본 아시아 여성신학과 민중신학적 담론에 대한 문제제기 (2013)" 등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감신대 대학원을 수료하였고,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목사이다.
▲ 최순양 박사.
최순양 soonyang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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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