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버지가 식탁에 앉으시면 그때부터 두 분을 말다툼을 벌이셨다. 부부싸움은 식사 내내 멈추지 않았다. 식기가 치워지고 식탁이 닦이면, 어머니는 번번이 아버지가 말대꾸라도 한 듯이 싱크대에서 몸을 약간 틀며 아버지에게 연신 비난을 퍼부어 대셨다. 식탁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듯 아버지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숨을 헐떡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 눈앞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멱살을 잡아쥐고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버지는 생경한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어머니에게 커피 잔을 집어 던졌다.1)
이 예화에 대한 분석은 지난 글 “분노가 유발하는 감정: 공격성과 폭력”에서 상술했으므로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 이야기 속 아버지의 분노의 표출은 무엇을 의미하거나 상징하는가? 아무런 대꾸도 않는 척했지만, 결국 잔소리를 들으며 억제하고 있었던 것, 그것은 곧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야! 날 무시하지마!’이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나는 분노한다, 고로 존재한다.
● 나는 분노한다, 고로 존재한다.
폭력을 유발하는 분노나 화는 근원적으로 “인간이 지닌 강력하고도 근본적인 감정의 하나”로서, “공포나 사랑처럼 우리 삶의 일부”이다.2) 이 화는 “외부로 향하는 내면의 불길”3)로서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주변 환경이나 정서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꿀 목적으로 분출되는 감정이다. 인류학자 폴 에크먼은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의 화난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사진 속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미국 사람들의 화가 난 표정을 사진에 담아, 파퓨아뉴기니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동일하게 물었다. 놀랍게도 그들 즉 파퓨아뉴기니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은 서로 직접 본적이 없는 인종들임에도 불구하고, 상대 인종의 사람들이 사진 속에서 표현하고 있는 감정들을 단번에 알아 보았다. 이 실험을 통해 에크먼은 사람들의 감정과 표현이 무척이나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4)
분노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생겨난 감정”5) 이다. 적어도 얼굴을 갖고 있는 인간은 얼굴의 표정 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생래적으로 알고 있고, 분노도 그 중 한 감정이다. 이와 연관하여 또한 인간은 상대방의 감정을 얼굴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내장하고 있기도 하다. 분노와 연관하여 인간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화난 감정’을 읽으면, 그 사람을 회피하도록 진화해 왔다.6) 누군가 나에게 화를 표현하면 순간 상대방의 반응은 그 화에 ‘공포를 느끼고 회피하여 도망’하거나, 아니면 그 화에 화로 맞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고 싶어 하거나 바꿔야 한다고 느끼”거나 한다.7) 다시 말해서 화는 “인간 모두에게 생물학적으로 각인”되어 있어서, “우리를 공격하는 존재들을 멀리 쫓을 수 있도록” 내장된 기제이다.8)
모니크는 교원 회의 자리에서 발언 시간을 독차지하는 경향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자주 끊는 습관이 있습니다. 사실 모니크는 회의를 독점하려하고, 교장의 눈에 띄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내가 처음 그 학교에 갔을 때, 동료들이 모니크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언질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미리 경고를 들었어도 별 소용은 없었어요. 모니크는 회의 중에 번번이 내 말을 잘랐고,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하던 말을 끝까지 한 것에 만족하곤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지난주 회의에서 모니크가 두 번째로 내 말을 끊었을 때, 빨간 불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고, 이로 인해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모니크가 내 말을 끊는게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말했지요. 내 생각 역시 모니크의 생각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니크만 늘 말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회의실에 침묵이 짙게 깔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요. 화를 낸 게 너무 불편해서 나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모니크는 내가 말할 때 단 한 번도 내 말을 끊지 않았습니다.9)
위 이야기의 화자는 분노를 ‘화’를 내는 폭력적 행동으로 표현했고, 그 행동은 화자의 말을 끊고 무시하던 모니크의 행동을 바꾸기에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따라서 화가 난 상태라면 뇌는 통제불능으로 빠져 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심히 빨리 분주히 신속하게 움직이게 된다. 왜냐하면 화의 목적은 화의 분출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중요한 환경의 일부인 상대방의 태도나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사람들은 먼저 주먹을 불끈 쥐는 경우처럼 근육이 긴장된다. 또한 혈관이 팽창하면서 열기를 느끼고, 그래서 대개 얼굴이 붉어지게 된다. 이와 병행하여 호흡과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는 증세를 보인다. 비록 ‘화’가 부정적인 감정일 경우가 많지만, “상대의 위협적인 자극에 대한 적절한 반응”10)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화는 “위협의 원동력을 바꾸고 싶거나 바꿔야 한다고 느끼는 강하고 공격적인 감정”11)이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 이상과 같은 신체 상태의 변화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게 된다.
문제는 화가 나서 공격모드로 돌입해 뇌가 분주해 지면서, 상대적으로 외부환경으로부터 유입되는 정보를 놓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래서 상대방의 행위나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화가 난다’는 것은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화를 내는 주체의 환경적 적응능력을 급격히 떨어뜨려 도리어 사회적 생존을 위험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진화론적으로 분노 반응은 불필요한 과잉반응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반응이었다. 경쟁자들과 포식자들을 위협하여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도모할 때, 분노 감정보다 효과적인 반응은 드물다. 다시 말하자면, 분노 반응은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반응이라는 뜻이다. 분노감정의 표현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범주화 시켜보면, 세 분야로 압축되는데, “자산, 영역, 관계”의 범주들이 그것들이다.12) 이를 쉽게 표현하자면 “먹을 것, 집, 친구”를 지키기 위해 인간 동물은 분노라는 감정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감정”으로서 분노는 그를 통해 “결과적으로 우리가 안전, 성공, 행복의 기초가 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감정이다.13) 다시 말해서 인간은 “내 것을 빼앗길 때”(자산), “나의 구역이 침해당할 때”(영역), 그리고 “사람을 잃을 때”(관계) 분노의 감정을 공격성을 실어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목적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위와 태도를 변화시켜 나의 안전과 성공과 행복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노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목적은 “위협”이다.14) 직접적인 싸움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위험한 행동이다. 그래서 가급적 불필요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절약할 수 있으면 좋다. 그렇기에 분노를 통해서 일단 나 자신은 전투태세에 들어가긴 하지만, 이 전투태세를 갖추어 상대를 적절히 ‘위협’함으로써 이 전투태세가 실제의 전투로 이어지지 않도록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분노라는 감정을 표현한다. 한 마디로 ‘날 우습게 보지마. 계속 그려면 너 다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 오작동(misfiring)하는 분노
문제는 진화적으로 필요한 기제였던 분노라는 감정의 기제가 문명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부적절한 표현양식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분노를 표현해서 ‘위협’이 작동하도록 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잘 되지 않고, 그래서 분노의 적절한 표현이 되기 보다는 좌절감에서 비롯되는 화를 내고 폭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더 나쁜 것은 분노의 표현인 ‘화’가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 보다는 나보다 약하고 만만한 사람에게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사보다는 부하 직원에게, 몸이 건장한 청년보다는 다소 나약해 보이는 꼬마에게” 우리는 더 잘 화를 낸다.15) 호주의 한 여성 연구원의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부당하게 대우받는 경우,” “부도덕한 행동을 본 경우,” “업무 중 무능함에 부딪힌 경우,”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경우” 분노라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문제는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16)
상대가 자기보다 부하직원인 경우, 77%의 사람들이 분노를 표현했다. 동료일 경우, 58%의 사람이 분노를 표현했다. 맞다. 당신의 생각과 같다. 상대가 상사인 경우, “단 45%의 사람만이” 화를 냈다.17) 매우 야비한 본성? 맞다. 적어도 분노를 표현하는 상황을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야비한 판단을 내리도록 진화해 왔다. 분노는 통상 자신이 원하는 바가 좌절되었을 때 생기는 감정인데, 이 좌절감을 분노로 표현하고자 할 때, 우리 신경계는 “복종과 위협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판단한다.18) 복종과 위협 사이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은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매우 불리했고, 결과적으로 살아남지 못했다. 우리는 야비한 판단의 후예인 것이다.
분노가 나쁘게 표출되는 또 다른 흔한 상황은 분노가 전위되는 것이다. 즉 A라는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미처 혹은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B라는 엉뚱하지만 만만한 사람에게 감정을 전가하여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을 유발한 대상과는 다른 대상에게로 감정이 옮겨가는” 것을 프로이트는 “전위”라고 최초로 표현하였다.19) 동물의 세계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된다. 싸움을 벌이기에 너무 강력한 적수를 마주쳤을 때, 비둘기는 “땅에서 공격적으로 먹잇감을 찾기 시작한다.”20)
때로는 분노 조절기능을 감당한 두뇌 기관이 미발달하여 화를 잘내는 시기도 있다. 특별히 사춘기가 그렇다. 뇌과학의 이해에 따르면, 보통 감정은 ‘변연계’에서 다루어지는데, 특별히 “화, 경멸, 공포, 혐오감, 기쁨, 슬픔, 놀람”을 관장한다.21) 이 변연계에서 분출되는 감정과 충동의 표현들을 처리하고 다스리는 능력은 전전두엽(fore-frontal lobe)에서 감당한다. 이 부위는 주로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을 내리고, 그런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는 일”을 처리한다.22) 뇌의 발달 중에서 전전두엽의 발달이 가장 느리며, 통상 2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전전두엽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며, 아마도 평생 지속적인 변화와 발달을 도모한다. 따라서 아직 20대에 이르지 못한 10대 청소년들이 신체적으로는 어른만큼 성장하였지만, 감정조덜에 실패하여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직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제어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할 전전두엽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3)
● 분노를 우회하기
 |
||
화가 나는 주요 원인은 일반적으로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몸은 “이미 화를 낼 준비”를 갖추게 된다.24) 문제는 스트레스가 높을 때 화를 내는 경우 자신을 실제로 위협하는 상대방에게 보다는 “스트레스를 유발한 존재”25)에게 화를 낼 경우가 높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불안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전전두엽이 발휘하는 주의력의 균형이 편도체를 비롯한 변연계의 지배를 받는 상태, 즉 “감각 경계 상태”(sensory vigilance mode)26)로 옮겨진다. 이는 역으로 스트레스 조절을 잘하는 사람은 곧 화나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너무 감각이 예민해져, 주변 정보를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화’를 낼 만반의 준비가 된 것이다.
바로 이 때, 즉 화를 낼 만반의 준비가 된 이때, 우리는 이 분노의 감정기제를 근원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행동을 바꿀 수는 있다. 행동을 바꿈으로서, 다마시오의 통찰을 따른다면, 우리는 그 행동이 유발하는 내적 감정의 상태를 창출할 수 있다. 그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기제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전전두엽’이다. 왜냐하면 전전두엽은“상황을 판단하고, 정보를 처리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수행하고 행동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27)이다. 더 나아가 “전전두엽을 이용한다는 것은 마음 이론, 즉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인식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훈련하는 것”28)이다. 따라서 전전두엽은 “자기 안의 화를 알아보는 방법”29)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통상 화가 나면 몸은 “대항-회비 반응(fight-or-flight response) 가운데 ‘대항’할 준비를 하며 싸울 태세를 갖춘다.”30) 이는 진화적으로 내장된 반응이다. 문제는 내가 이 ‘대항-회피 반응’을 보일 때, 상대방도 ‘대항-회피 반응’을 같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동과 움직임을 모방할 수 있도록 진화해 온데서 비롯된다.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교 연구팀이 발견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은 우리가 타자들에게 어떻게 ‘공감’하느냐를 보여준다. 한 원숭이가 땅콩을 집는 것을 본 다른 원숭이의 뇌세포는 마치 자신이 “그행동을 직접 하는 것처럼 발화”했다.31) 이 거울 뉴런은 우리가 상대방의 행동과 생각과 기분을 어떻게 모방하고 공감하는가를 밝혀주었다. 화난 존재를 만나면, 화가 공감이 되고, 슬피우는 존재를 만나면 슬픔에 공감하고, 기쁨을 표현하는 존재를 만나면 기쁨을 공감하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을 모방하여 느끼는 것이 언제나 안전하거나 적절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하지마’라는 신호를 보내 “거울 뉴런의 자동 반응을 멈추게”32)하는 기제를 발달시켰는데, 이것을 감당하는 부위가 ‘전전두엽’이다. 만일 우리가 상대방이 감정을 표출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하기만 한다면, 인간 집단 안에는 언제나 ‘복수’와 ‘맞대응’의 칼 바람만이 난무했을 것이다. 그래서 “화난 사람의 얼굴에서 분노를 알아차리고, 그 얼굴과 과거에 경험했던 위험을 연결해 주는 기억을 되살리고, 반사적으로 반응할 경우의 결과를 예측하고, 화난 얼굴을 보인 사람의 보복 반응을 억제할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았을 것”33)이다. 즉 거울 뉴런의 모방적 공감 반응을 억제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을 잘 발전시킨 개체가 진화적으로 생존가능성이 더 높았던 것이다.
따라서 폭력을 유발하는 화나 분노를 조절하는 첫 번째 길은 우선 ‘화를 내지 않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34)이다. 즉 내가 상대방보다 힘이 세거나 우월하거나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게 한다면, 상대방은 마음이 편해진다. 역으로 상대방에게 위협이 될 만큼 내가 우월하거나 강하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상대방은 즉각 ‘대항-회피 반응’ 모드로 돌입할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분노에 거울뉴런의 모방적 공감 방식으로 반응하면, 차례로 상대방의 “변연계 반응에 기름을 붓”게 되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폭력적인 상황으로 치달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화를 내지 않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표현을 제시하는 것은 나와 상대방의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이 된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분노 반응이 나의 우호적인 반응을 따라 하려는 그 상대방의 거울 뉴런 반응으로 인해 억제될 것이고, 상대가 그렇게 누그러뜨려지면, 나의 거울 뉴런 반응도 상대적으로 유순하게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 분노야, 놀자: 분노에 공감하기
분노가 폭력을 일으키는 일차적인 감정이다. 분노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도둑과 같이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난다. 다시 말해, 분노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이며, 내면에서 시작되지만 외부로 향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과 그 정도가 다를 뿐이다. 분노가 폭력을 일으키는 주범인 것은 맞지만, 분노가 항상 폭력을 일으키거나, 모든 분노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외부로 향하는 내면의 불길”인 분노는 인간이 지닌 강력한 에너지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이것은 개인에게 다시없이 산뜻하고 창조적인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분노에 잘 대처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상태에 잘 공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 공감하는 것은 “예의 바르고 친근하게 대하는 일보다 더 큰 범주의 행동”35)이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공감을 표현해 줄 때, 상대방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고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분노’란 쉽게 말해서, ‘나 그런 바보 아니야!’라는 함성이다. 즉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상대를 무시와 혐오로 대한다면, 그야말로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일 것이다. 흔한 남자들의 실수이다. 상대방의 분노섞인 잔소리를 듣기가 무척이나 힘들어 외면하는 척하지만, 바로 이것이 상대방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든다. 화가 나면 상황이 판단이 되지 않는다. 그런 상대가 내가 억지로 분노를 참고 있는 것을 알아챌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환상이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출구가 없다.
늑대의 우두머리는 자기가 거느리는 무리의 일원이 분노를 표현하고 화를 내서 무리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상황을 기다렸다가 슬며시 다가가서 그 화내는 늑대에게 장난을 건다고 한다. 그렇게 분노와 놀 수 있는 기술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부정의한 일에 맞서 분노를 표현하면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분노는 부정의한 일에 맞서는 폼나는 일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에 우리의 분노라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참극을 벌인다.
이 글을 다 읽고 나서도 또 그 실수를 반복하겠지? 실망하지 마라. 처음부터 잘 되었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
<각주설명> 1) 프랑수아 를로르 & 크리스토프 앙드레, 『내 감정 사용법』, 배영란 역 (서울: 위즈덤하우스, 2008), 69. |
|
<필자 소개>
박일준 감리교신학대학 종교철학과, 보스턴대학 신학석사, 드류 대학 철학박사. 종교학과 철학과 신학의 접경 지역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집중하며, 특별히 인지과학과 진화생물학의 연구결과들을 종교철학적으로 성찰해 나아가면서 ‘인-간’ 즉 ‘삶-사이’를 ‘인간-이후’ 시대에 어떻게 자리매김해 나갈 것인지를 궁리하고 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소속으로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혼종적 인간론 연구: 화이트헤드의 사건적 존재론과 진화론과 인지과학을 통한 사이-존재로서 인간론 구성’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
||||||
박일준(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 iljoon85@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