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청년외침 프로젝트' ⓒ에큐메니안

충북 괴산 제월리의 한 작은 집 거실. 마을 어르신 열 댓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들은 제월교회(기장) 이은아 목사가 농한기를 맞은 주민들을 위해 준비한 ‘겨울 영화제’에 모였다.

이은아 목사는 오늘은 정말 유명한 분들을 모셨다며, 초대가수를 소개했다. 눈앞에 여러 청년들이 등장하자, 어르신들 눈에는 ‘영화가 아니라, 웬 가수여?’하는 놀라움과 더불어 어색함도 감돌았다. 

청년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과 같은 캐럴을 연달아 불렀다. 이들의 예사롭지 않은 연주와 노래실력에 어르신들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갔다. ‘사랑밖에 난 몰라’, ‘여러분’,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자 박수가 터져 나오고,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이적의 ‘다행이다’를 부를 때는 노랫말에 맞춰 서로의 머릿결을 만지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먹여주는 시늉도 하고, 서로 안아줬다. 어느새 어르신들은 서로의 손을 잡으며, 이 젊은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널 사랑하심 널 사랑하심 널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모인 어른신들 중에는 제월교회의 성도들도 있었지만, 교회에 다니지 않은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 안아주며,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이은아 목사의 작은 사택 거실이 그야말로 하나님나라가 되는 순간 이었다.

▲ 이은아 목사(기장 제월교회)가 청년외침을 주민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에큐메니안

▲ '청년외침'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 하고 있는 제월리 마을주민들과 제월교회 성도들. ⓒ에큐메니안

▲ 서로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주민들. ⓒ에큐메니안

시골마을 무뚝뚝하기만 했던 어르신들 입에서 서로 사랑한다는 고백이 나오게끔 하는 청년들. 이들은 바로 ‘청년외침 프로젝트’(이하 청년외침)이다.

청년외침은 ‘가객’, ‘브라운워십’으로 이미 찬양 사역을 하고 있었던 이정기 목사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청년외침은 ‘청년예수의 외침’의 줄임말로, 이정기 목사는 “청년예수의 정신으로, 현 시대를 향한 ‘하늘의 뜻’을 가락에 ‘담아내는 것’, 또 함께 외치며 이 땅에 ‘살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청년외침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찬양사역에 힘쓰고 있다. 쌍용자동차, C&M, 재능교육 등의 투쟁현장이나, 작은 교회 및 기독교사회단체들의 행사에 자주 초청된다. 이정기 목사는 “청년외침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간다. 그것이 음악적인 재능을 주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일”이라고 전했다.

예수의 탄생은 가장 낮은 곳, 베들레헴 말 구유

그가 처음부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객’과 ‘브라운워십’ 활동을 통해 그는 누구보다도 탁월한 찬양 사역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학생 시절 기장 교단이 아닌, 타 교단의 대형교회에서 찬양 사역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12월 24일이었다. 성대한 성탄절 예배 준비를 위해, 정말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대한 화려하고 장엄한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성탄절 예배 준비로 정신이 없던 그 시간, 이정기 목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두레방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24일에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작은 공연을 해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당시 성탄절 준비로 바빴기 때문에, 함께 사역했던 이승호 목사와 단 둘이 공연을 갔다. 당시에는 그저 노래를 몇 곡 부르고 오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된 기지촌에서 이정기 목사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 여성이 아기 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 누워있는 아기는 주한미군이 버리고 간 아기였다. 그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아기가 성탄절에 오시는 예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기 예수는 성대한 교회가 아닌 말구유, 바로 이 낮은 곳에 오시는구나. 나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이었다”

▲ (시계방향으로) '1집- 청년외침', '2집- 살아있다면', '4집- 메아리', '3집- 언니의 봄'. ⓒ에큐메니안

청년 예수의 걸음은 갈릴리

이후 이정기 목사는 많은 고민 끝에 ‘청년예수’ 싱글 1집을 발표하게 된다.

“오늘도 내 주변의 누군가는 자꾸만 잠에서 깰 때마다 기도가 새어나올 정도로 고통스럽고 애끓도록 간절하다. 오늘도 생존권을 빼앗겨버린 누군가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비참한 목소리를 대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끊자 하고 있다. 나는 다만 뒤로 물러서서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하실 거라고' 뜨신 방구석에서 진심 없는 주문을 외고 있다. 그 비겁함과 추악함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오늘, 누군가의 고통의 소리에 문을 두드려본다”

그는 1집 ‘청년외침’ 프롤로그와 가사를 통해 “주위의 슬픈 자, 억압받는 자, 소외된 자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그들의 목소리가 큰 소리로 퍼지게 하겠다”라는 강한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2집 ‘살아있다면’은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3집 ‘언니의 봄’은 일본 위안부 및 기지촌, 노동자 여성들을 위한 노래로 1집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언니의 봄이 나오고 얼마 후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에 빠져, 멈춰있었다. 참사로 고통 받는 가족들을 위해 무슨 말과 위로를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의 부채감만을 가지고,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찾아 가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한 희생자 아버지가 주저앉아 쓸쓸히 광장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가 떠오른 것은 예수님이라면 저들에게 어떤 말로 위로하셨을까? 이다.

“우리는 이제 그만 잊고, 웃자. 남은 사람이라도 행복해야지 하면서 위로했겠지만, 예수님이라면 그들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마주앉아 그들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셨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담담히 곡을 썼고, 그것이 바로 4집 ‘메아리’다”

자네 한숨 자네 절규
거 내가 다 받아 주겠네
우리 마주 앉지

그대 맘껏 울어
내 노래는 메아리야
그래 한껏 부르짖어
내 노래는 메아리야  

-청년외침 4집 ‘메아리’ 중-

이정기 목사는 “예수의 외침이 필요 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외치고 싶다. 소외된 약자들의 고통이 우리의 목소리로 메아리가 되어 크게 울려 퍼질 수 있다면, 청년외침의 외침은 계속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교회들은 성탄을 위한 행사와 연말 연초를 준비하기 위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기 예수가 태어나고, 청년 예수가 외쳤던 그 곳이 어디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 유가족,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하이디스 해고노동자, 기아자동차 해고노동자, 동국대 단식 투쟁 등 누구보다도 긴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성탄의 초에 불을 밝히는 교회의 모습이 절실하다.

▲ 이정기 목사(뒷줄 가운데)와 함께하는 청년외침 사람들. ⓒ에큐메니안

박준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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