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 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 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시 1985년, 변계원 작곡 1988년)

지난 12월 5일 저녁 수만의 농민, 노동자, 서민들은 서울 한복판 도로를 가득 매웠다. 기업의 이윤, 재벌의 이윤만을 극대화 하려는 정부정책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다 캡사이신 물대포 국가폭력에 쓰러진 농민 백남기 어르신의 생환을 기원하며 찾아 온 마음들이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어깨를 걸고 어르신의 쾌유를 빌며 함께 노래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백남기 어르신은 1947년 태어나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 보성을 뒤로하고, 1968년 서울 유학길에 오른다. 경찰공무원인 아버지 밑에서 바르고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고자 했던 청년기 서울의 상황은 사람세상이 아니었다. 대학에 탱크가 들어오고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마비되었다.

▲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사람답게 살고자, 상식을 가진 청년으로 살고자 한 백남기의 삶은 투옥과 제적의 연속이었다. 유신 박정희의 죽음을 딛고 일어난 민주화의 봄을 통해 백남기는 늦깎이 복학생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의 탱크가 대학을 밀고 들어오는 참극이 벌어진다. 이 폭압의 상황에서 모두가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 바쁜데, 청년 백남기는 “여기서 달아난다고 끝나는 것이냐”며 캠퍼스를 지키다, 계엄군에 끌려가 말로 상상할 수 없는 지독한 고문으로 온 몸이 짓밟힌다. 출소 이후 고향으로 내려온 후 오롯이 땅을 지키고, 우리의 종자를 찾아 평생을 살아 왔다.

지난 11월 14일 백남기 어르신은 정부의 농민을 버리는 농업정책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대통령 공약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품고, 이른 아침 보성 집을 나서 서울 상경 길에 올랐다. 그리고 상복을 입은 농민들의 행진이 경찰의 물대포에 막히고 캡사이신 물대포가 광화문 거리를 휩쓸고 있을 때, 맨 앞자리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셨다.

나는 기억한다.
그날...
그 자리에서 경찰이 캡사이신 물대포를 퍼부을 때 나는 뒷자리로 물러서느라 바빴다. 순간 물대포가 시위대 쪽이 아닌 차벽 앞으로 쏘아지기에 나는 물대포가 고장 났나보다 하며 좋아라 했었다.
그런데...이게 웬일인가. 그 물대포는 고장이 난 것이 아니라 맨 앞자리에 나선 백남기 어르신을 조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나의 방관, 나의 안위가 또 다른 희생을 가져 온 것이었다...

다시 12월 5일 서울대 병원 앞.
옆에 있는 모르는 분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리고 더 큰 목소리로 노래했다.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이 노래는 1988년 서울대 민중가요 노래패 ‘메아리’에서 활동 하던 변계원이 만든 노래다. 변계원은 서울대 국악과에서 작곡을 공부한 학생으로 ‘전국대학생노래한마당’에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불러 대상을 받았는데, 이를 계기로 이 노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국으로 퍼지게 된다.

이 노래의 노랫말은 백남기 어르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김남주의 시「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에서 따왔다. 이 시를 창작한 시인 김남주는 한국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우리사회의 저항을 조직한 대표적 혁명시인이다. 
 
백남기 어르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해남에서 1946년 태어난 시인 김남주는 법관의 꿈을 안고 1969년 전남대에 진학한다. 김남주 시인의 삶도 백남기 어르신의 삶도 박정희에 의해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 서게 된다. ‘박정희의 3선 개헌’으로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고향에 내려가 한국사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김남주는 1972년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선포하자 “더 이상의 침묵으로는 안 된다며 저항만이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는 결단을 내리며 유신에 반대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신문 『함성』을 제작·배포한다.

▲ 김남주 시인

1973년 2차로 지하신문 『고발』을 제작하던 중 경찰에 발각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김남주는 국보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생활을 한 후 고향에 내려가 고문 과정에서 겪은 잔혹상을 담은 시〈진혼가〉를 1974년『창작과 비평』여름호를 통해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며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자 시인은 이제 ‘시’와 ‘돌멩이를 든 데모대’로는 한국사회 지배계급의 벽을 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철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1977년 고향 해남으로 내려가 지역의 농민들을 결집하여 ‘해남농민회’를 결성하였으며, 소설가 황석영을 비롯한 광주지역의 활동가들을 묶어 ‘민중문화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한다.

1978년 『파리콤뮨』 일본어판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수배를 받은 시인은 유신체제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한 ‘철의조직’으로 게릴라전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중앙정보부의 수사망을 피해 서울로 상경한 이후 1976년에 결성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약칭 남민전)」에 가입한다. 1979년 8월 11일 ‘YH여성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살인 진압한 박정희정권 폭력을 고발하는 선언문’ 2만장을 뿌린 이후 중앙정보부의 집중수사를 받은 김남주는 1979년 10월 4일 「남민전」회원 84명과 함께 연행되어 간첩으로 조작되어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의 선전도구로 활용된다.

김남주에 대한 고문은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해 1980년 5월 재판 당시 시인은 의식도 차리지 못하는 상태로 들것에 실려와 판결을 받아야 했다. 「남민전」동료들이 감옥에서 죽임을 당하고, 병마로 옥사를 하는 그 기나긴 죽음의 터널 속에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김남주 시인은 다시 시를 쓴다. 뭘 쓴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정치범의 사동에서 시인은 우유곽을 분해하여 칫솔 끝을 갈아 뾰족하게 만든 필기도구로 한자 한자 시를 썼다.

『내가 만난 김남주』라는 책 62쪽 김선출님의 글을 인용하겠다

-80년대 초 형님이 감옥에서 우유팩에 못으로 눌러쓴 일련의 시가 밖으로 전해졌다. 나는 타자로 쳐 유인물화 된 시집으로 형님을 대면 할 수 있었다. 그 때 형님의 시가 내게 준 충격은 지금까지의 만남에서 가장 큰 울림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학살 정권이 폭압과 기만으로 안정을 구가하고 모두가 침묵할 때 그는 감옥에서 몽당연필 하나 없이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내일의 각오로 가득찬 통렬한 절규를 기록하고 있었다. 형님의 시는 절망과 일상에 매몰 돼 가는 나를 섬뜩하게 긴장 시켰다.-

김남주 시인의 ‘우유곽시’는 만기로 출옥을 하게 되는 만기출소자들의 목숨을 건 의리의 반출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인의 시는 강화여고 국어교사를 하는 애인 박광숙씨에게 전달되어 1982년부터 복사물의 형태로 세상에 알려진다. 기나긴 죽음의 시간을 지나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고, 88올림픽을 앞두고 전 세계 곳곳의 문인들이 김남주 시인 석방촉구 서한을 노태우 정부에 발송한 노력 등에 의해 시인은 1988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 된다.

10여년에 이르는 긴 시간을 감옥 속에서 보내야 했던 시인은 감옥에서 얻은 지병으로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마흔 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야만의 세월을 저항하며 올곧게 살다간 김남주 시인은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잠들었다.

2006년 3월,「남민전」사건 관련자 29명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어 ‘생활지원금’을 보상받게 되었고 현재까지 관련자 33명의 명예가 회복 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빨갱이에게 보상을 했다며 반대 데모를 진행했고,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거쳐 현재까지 새누리당 의원을 지내는 이재오 같은 인물도 「남민전」피해자로 옥살이를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는 무엇으로 해명할 지 황망한 게 세상살이다.

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쳐 깨어지면서도 주저앉지 않았던 김남주 시인의 시대정신과 이 시간까지 생과사의 기로에서 사투를 전개하고 있는 백남기 어르신의 시대정신을 되돌아보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어르신의 생환을 기원하며 함께 나눴으면 한다.

최도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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