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중앙포토)

모세는 출애굽 사건의 중심인물로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의 고난이 정점에 이른 시기에 태어났다. 당시의 바로왕은 히브리인 갓난 아이 중 아들은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즈음에 태어난 모세는 부모가 숨겨서 키우다가 강물에 던져지는 처지가 된다. 비디아라고 알려진 바로의 딸이 강물에 떠내려 오는 아기를 건져 이름을 건져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모세라 짓고 데려다가 키운다. 건져냄을 받은 사람 모세는 위기 가운데 있는 자기 민족을 건지는 사람이 된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죽음의 위기를 겪는 것 같다. 나는 7세 때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만 6세 때 개인의 성향이 결정된다고 하는 사실이 진리라고 한다면 성격이 결정될 시기에 큰 위기를 겪은 것이다. 1번 유형은 만 여섯 살을 전후해 무섭고, 엄격하고, 냉정하거나 또는 부재중인 아버지와의 경험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부정적인 기억을 가진 유형이라고 한다.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에 어머니는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고 죽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에 나의 육체를 장사지낼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늘 가슴에 분노를 안고 사셨다. 실향의 분노, 실패의 분노, 자신을 이용한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 등 수많은 분노를 가슴 속에 안고 사셨다. 그러한 아버지를 볼 때에 나는 늘 아들로서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버지의 분노를 나는 고스란히 이어 받은 것 같다. 성장하는 동안 육체적인 장애와 가난과 복잡한 가정사는 늘 나를 불안하게 했고 또 한편으로는 분노를 마음 한 곳에 저장하는 원인이 되었다.

모세의 성장 과정에서 친모는 유모가 되었지만 그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애정을 준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친부는 부재중이었다. 모세는 친부와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모세를 기른 공주는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양가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모세는 그러는 가운데서도 학식 많고, 능력이 있으며, 명료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했다.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았다. 요세푸스는 모세의 다섯 가지 덕목을 지혜, 용기, 절제, 정의, 경건으로 꼽았다.

모세가 마흔이 된 어느 날 왕궁 밖으로 나갔다가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십장에게 매 맞는 것을 보고, 그를 쳐 죽여서 모래 속에 암매장한다. 분노의 격정이 표출된 결과였다. 모세는 이 일로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된다. 완벽주의자인 모세는 늘 옳은 것만 추구하다가 격정에 사로잡혀 감당하지 못할 일을 행하고 결국 왕궁에서 쫓겨나 광야로 나가게 된다. 완전주의자인 모세는 불의와 실수를 포함한 불완전을 경험하며 분노의 격정을 유발한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자니 그 또한 불완전하기에 분노를 기피하며 참는다. 억제된 감정은 이집트인 노예 감독관을 쳐 죽이는 사건으로 나타났다. 왕궁에서 억제했던 격정이 분노로 표출되자 그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때부터 기피와 격정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모세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내 속에서 늘 용솟음 쳤다. 그 분노는 내재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는 “쟤가 왜 저러나?”라고 의아해 할 정도로 표출되곤 하였다. 평소에는 착하고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나,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는 내 자신이 생각해도 “내가 지금 왜 이러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분노의 강도는 강했다. 그리고 법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만 그 분노를 표출하곤 하였다. 그리고 돌아서면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를 하곤 했다.

1번 유형은 격정을 바로 알고 또한 바르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격정에 사로잡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모세가 격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을 때 왕궁에서 쫓겨나 광야를 헤매게 된다. 자책과 죄의식도 커지고 격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분노가 치미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지금 같은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할 일들이 많이 생각난다. 좀 더 인내했더라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선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 내가 섬겨야 할 분들의 약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좀 더 인내했더라면 지금의 위치는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판을 하기 보다는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치거나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더라도 그들의 편이 되었더라면 아마 더 안정된 인생을 우릴 수 있었을 것이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모세가 광야로 내몰린 것처럼 나도 지금 광야로 내몰린 상황 가운데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광야로 도망친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목자로 살게 된다.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삶이 축소된다. 그러던 중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민족 구원의 대 사명을 받지만 모세는 계속해서 자기를 변명하며 그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항변한다. 그의 내면에서 소명을 느낌과 동시에 갈등과 불안을 느낀다. 1번 유형인 모세가 평정을 잃고 완전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격정에 사로잡히니까 스스로 자신감도 없고, 능력도 없고, 말도 잘 못한다고 생각했다. 1번 유형은 남이 보기에는 말을 잘하는데 스스로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함께 자신감을 가진다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현대에서도 선출직 대통령이 된 1번 유형은 세계를 통틀어서 그리 많지는 않으나, 일단 대통령이 되면 가장 훌륭하게 대통령 직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예를 들어)

무엇인가 과제가 주어지면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과제를 잘 수행했다고 칭찬하지만, 내 속에는 부끄러움이 많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말을 잘 못한다고 변명하는 부분은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부끄러움이 앞서고, 남의 눈을 의식해서 긴장하고, 식은땀을 흘린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극복하려고 하는 노력을 늘 하고 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 즉 자기를 재발견하고,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세는 다시금 광야에서 왕궁으로 간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바로를 찾아가는 것이다. 왕궁에서 40년, 미디안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모세는 왕자에서 목자로, 그리고 민족의 영도자로 파란만장한 120년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다. 신명기 34:12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모세처럼 큰 권능을 보이면서 놀라운 일을 한 사람은 다시없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격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타락한 백성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모세는 화가 나서 손에 들고 있던 돌 판 두 개를 산 아래로 내던져 깨뜨려 버리고 만다. 그리고 격정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자기의 친족과 친구와 이웃을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라고 하신다고 외쳤다. 이것은 가장 끔찍한 분노라는 비판을 받는다. 명령을 어기고 만나를 욕심껏 거두어들인 사람들에게도 몹시 화를 내게 된다.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민족의 영도자로 뇌물도 모르고 오직 정의롭게 살아온 모세였으나 가데스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느보산의 비스가 봉우리에서 가나안 땅을 멀리 바라보며 숨을 거두게 된다.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단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꾀부리지 않고 할 뿐이다. 그러나 내 속에 내재된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여과 없이 쏟아버린다면 내게 맡겨진 사명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늘 내 속에는 분노가 잠재되어 있다. 그 분노를 제어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분노를 사람들에게 늘키고 만다. 나 자신 조차도 원칙을 모두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하면서, 다른 이들이 원칙을 고의적으로 어긴다고 생각할 때는 여지없이 그것을 지적하고, 관계를 어정쩡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성숙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 같다. 모세가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므로 2% 부족한 결과를 낳았던 것을 교훈삼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김헌래(등불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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