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내가 내 얼굴에서 가끔씩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고 충고를 해준다. 젊어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10여 년 전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정도가 워낙 심해서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고 하니, 내년이면 칠순인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굴 표정에 공포를 느낄 정도로 그렇게 심각하다니…. 대부분 나 자신보다 남들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내면에 쌓인 분노는 인정하더라도 이것은 내 자신의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에니어그램은 바로 이런 내 모습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에니어그램으로 본 내 유형은 1번 온화한 개혁가이다. 1번 유형은 합리적이고 원칙적이고 규율을 중심하며 독선적인 면이 있다고 하며, 다른 여덟 가지 유형에 비해 화를 더 잘 낸다고 한다. 소위 ‘분노’가 내 유형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한다.

완전주의를 지향하다보니 불만족이 많고 불만족으로 인해 화가 잘 나지만, 화를 내는 것은 완전한 일이 아니므로 그것을 회피하려고 참다가 결국 폭발하곤 한다. 이것이 나의 숨은 격정이자 단점이라고 하니 성숙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때마다 분노하는 격정을 살펴 회개하고 거듭나야 할 것 같다. 1번 유형은 완전주의 성향이 강한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숨을 걸고 열정을 쏟는다고 한다. 옳은 것에 대한 욕망과 관심이 큰 만큼 옳지 않은 것을 보면 짜증이 나다 못해 분노가 끓어오른다고 한다.

‘에니어그램으로 본 성서인물이야기’에 의하면, 1번 유형의 대표적 인물로 사울이 있다. 사울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고위 지식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바리새파사람으로 유대교 교리에 우직하게 충성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신도들을 위협하고 살기를 띠었으며, 이들을 잡겠다고 대제사장에게서 체포영장을 써달라고 해서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까지 쫓아간다. 그는 잘못 믿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그냥 가만 놔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학자들은 갈라디아서를 흔히 ‘분노의 편지’라고 일컫는다. 이 편지를 쓸 때만 해도 바울은 다마스쿠스에서 변화 체험을 했지만, 아직도 성격상 통합을 이루지 못한 채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하고 있다. 바울은 완전주의 성향과 분노의 격정으로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하에서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 공개적으로 그를 비판했다. 베드로가 이방사람들과 함께 먹다가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15장 36절 이하에 보면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바나바와 헤어지는데, 그 이유는 마가와 동행하는 문제였다. 바나바가 그 이름 뜻대로  “위로자‘의 역할로 바울을 많이 도와주었다는 사실과 후에 바울이 교도소에 갇혔을 때 마가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미루어 바울의 급한 성격 때문에 갈라졌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토대를 세운 사도 바울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위인이다. 그러나 이런 사도 바울도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화를 잘 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1번 유형은 성취 형으로 개혁자 기질이 강하다고 한다. 완벽주의자이고 원칙주의자라서 불완전하거나 무원칙한 것을 보면 분노가 올라온다. 사실 나도 그런 경우에 분노할 때가 많다. 스스로는 분노가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것인 줄 알기 때문에 분노를 기피하며 참는다. 그러다보니 억제심리가 강해 표정이나 분위기에 긴장감이 돌게 만든다. 교훈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많이 해서 진지하고 엄격한 모습이 잘 드러나 주변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1번 유형은 만 여섯 살을 전후해 무섭고 엄격하며 냉정하거나 부재중인 아버지와의 경험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부정적인 기억을 가진 유형이라고 한다. 나의 부친은 그렇게 무섭다거나 엄격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이 점은 나의 아들과의 관계에서 나 자신도 그렇게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주위에서 머리가 좋다고 칭찬을 많이 받아서, 나는 어려서부터 ‘바른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았다. 선생님이나 상사 앞에 서면 긴장을 많이 했다. 완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욕먹을까 봐, 잘못을 지적당할까봐 두려워했다. 실수와 무결점을 추구하다가 독선적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심지어 남이 작성한 글에 오타가 있는 것도 참지 못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나를 보고 “최 핏대”라고 불렀을까!

성격유형에 물들지 않은 “참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수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분노할 때 있는 그대로 분노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관찰하고 있으면 내 속에 있는 힘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슬며시 분노에서 빠져나가게 만든다고 한다. 나는 “행복한 들풀”이란 별칭을 즐겨 사용한다. 뻣뻣한 나무처럼 한 번에 쓰러지지 말고 들풀처럼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져도 다시 회복하는 모습을 추구하려고 그런 별칭을 즐겨 부른다.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온화하고 너그러운, 오류를 인정하고 개선책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지혜를 살려나가고 싶다. 에니어그램 수련을 통해 궁극적으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즉 “참 나”를 회복함으로써, 나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최정의팔(목사, 사회적기업 트립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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