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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 한 자는 누구인가<원익선 칼럼>
원익선(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 | 승인 2016.03.10 11:29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3-5절, 산상수훈>

지금도 경주에 가면 J교회의 건물이 우뚝 서있다. 아니 예전의 소박하고 친근했던 그 모습이 아니라 맘모스 같은 대형건물이 눈앞에 버티고 서 있다. 경주에 갈 때마다 한 번쯤 들어가서 옛 추억을 떠올려 보고 싶지만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예전에 이 교회에 다니던 친구들을 혹시 이 안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교회 안에는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하고 떠오르는 생각은 많지만, 그 건물의 외압에 눌려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달아나 버린다. 

그 때, 중학생 시절, 나는 이 J교회를 다녔다. 이 교회에 믿음 깊은 선생님의 권유로 입문한 것이다. 선생님의 권위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열심히 다녔다. 나 같은 학생에게 특별한 애정을 주신 선생님께 고마웠다. 교회의 학생부에 들어가서 친절하신 권사님의 인도를 받았다. 재미있는 예배시간이었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무언가 마음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예배에 참석하는 마지막 시간에는 꼭 연보 돈을 내도록 했다. 검은 망태 같은 것이 자신의 자리를 스쳐 지나가면 주먹에 쥐고 있던 돈을 그 안에 넣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장부가 왔다. 나는 거기에 100원이라는 금액을 적어 넣었다. 그 때 어머니는 매일 나를 비롯한 형제들에게 100원씩 아침마다 용돈을 주었다. 일요일에도 아침에는 100원을 주었다. 그 돈이 교회에 가면 헌금이 된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노동을 하시며 살았다. 가진 것도, 가진 기술도, 가진 연줄도 없었기에 평생 남의 종처럼 이 집 저 집을 떠돌아다니며 몸 하나로 품을 팔았다. 논밭매기는 기본이고, 험한 물건을 나르거나 무언가를 찍어내는 공장에 들어가 손과 발이 닳도록 일했다. 어느 날 피곤에 지친 어머니가 흰 거즈에 밥풀을 묻혀 발뒤꿈치에 대려 하고 있었다. 그곳을 보니 시멘트 바닥이 갈라진 것처럼 쩍 벌어져 있었다. 혼자 하지 못하니 내게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뭐 그리 아프냐고 화를 내며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경주 불국사나 석굴암, 그리고 남산은 나의 산책로가 되었다. 왜 이렇게 가난이라는 고통 속에 태어났는가 하는 슬픔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교회 가는 그날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 어머니가 며칠 째 일이 없어 자식들에게 용돈을 쥐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몇 주째, 어머니가 아침마다 일터로 나가면서 던져놓던 그 100원짜리가 머리맡에 없는 것이다. 헌금 주머니가 내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장부가 올 때마다 여기에 얼마를 적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처음에는 손을 깊이 넣고 펼치면서 돈을 넣는 척했다. 그리고 장부에도 거짓말로 100원이라는 금액을 적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혹시 학생회를 지도하는 권사님이 헌금액수와 장부에 적힌 돈의 액수가 맞지 않으면 학생들을 보고 뭐라고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예배에 그와 관련된 말씀이 있지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다행이 그런 말씀은 없었다. 어김없이 헌금 주머니가 또 내 앞을 지나갔고, 나는 거짓말로 100원이라는 액수를 적어 넣었다. 그러나 다음에는 꼭 어머니가 용돈을 주실 것에 기대서 한두 번쯤은 용서가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내 교회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권사님이 내게 뭐라고 말을 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서 헌금을 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아니 그 장부에 거짓말로 써넣은 헌금 액수에 대해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요일만 되면 허전했다. 친구들이 그립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풍요로움이 가득 넘치는 교회가 그리웠다. 그러나 이미 죄를 저지른 몸은 교회 가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다른 어떤 교회를 가더라도 나를 받아줄 목사님이나 권사님은 계시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밤이면 무덤처럼 변하는 도시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신도 몇 안 되는 가난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거대한 건물에 널찍한 주차장이 차려진 현대적인 교회도 있다. 로마시대의 어떤 성곽처럼 디자인해서 세상의 모든 풍파를 막아줄 것처럼 언덕위에 떡하니 세워진 멋진 교회도 있다. 어느 날, 교당 앞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그만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교회에서 건축 헌금을 천 만 원이나 내라고 배당을 해서 고민하다가 내가 교회 안 가고 말지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순간 내 머리 속에서, 그럼 이 분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예수님은 이 분에게 무어라고 하실까. 어릴 적 여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가끔 경주 J교회를 생각한다. 돌담과 같은 본당 건물 외벽에는 담쟁이 넝쿨이 무성하게 올라가고, 무한한 휴식을 줄 것만 같았던 교회의 안온했던 정원. 일요일만 되면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고 마음마저 단정히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던 추억. 그리고 의문이 든다.

교회나 교당이나 사찰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인가. 가진 것 없고, 애통하고, 용기가 없어 교회나 교당이나 사찰 주위에서 방황하는 중생들은 과연 천국이나 낙원이나 극락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가. 삶의 질곡에서 허우적거리고 지쳐 어디에도 기댈 곳 없다고 절망하는 사람들은 성자들의 구원의 손길로부터 영원히 소외된 존재들인가.    

혹시 내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그 심령이야말로 에덴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던 문은 아니었을까. 무엇보다도 교회에 가지 못했던 것을 어머니에게 원망으로 돌렸던 그 마음이 나이를 먹을수록 회한(悔恨)이 되어 밀려온다.     

원익선(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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