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희 jhkim@newsnjoy.co.kr

오랜 세월 이 땅에서 고통받는 이방인들을 섬기는 사역을 해왔던 서울외국인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이자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 대표 최의팔 목사가 지난 8월초 열린 성서한국대회를 지켜보면서 갖게 된 기대와 염려의 마음을 담아 한 편의 글을 썼다. 이 글은 최의팔 목사가 8월 11일 CBS저널에 출연해 성서한국대회 조직위원 박종운 변호사와 토론을 한 다음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에큐메니안'(http://www.ecumenian.com)이라는 웹진에 기고한 것이다(에큐메니안은 교회일치운동과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을 대변한다는 취지를 갖고 7월초 출발한 사이트다. 늦게나마 에큐메니안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최의팔 목사의 글이 진보 기독교 진영에서 어떤 논의를 만들어 갈지 한동안 추이를 지켜보았으나, 오랫동안 독자의견이 올라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서 최의팔 목사의 글을 <뉴스앤조이>와 <복음과 상황>에 게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 글이 진보 진영보다는 성서한국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그룹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다른 하나는 이런 논의를 통해 '에큐메니안'이 더 많이 알려져서, 소위 '건강한 진보와 보수'의 대화와 연대와 협력의 단초가 만들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한 가지 미안한 것은, 최의팔 목사의 글을 요청해서 게재해 놓고는 잠시 후에 그의 글에 대해 (아주 가볍지만) 비판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는데, 감사하게도 저자는 아주 흔쾌히 동의했다.

성서한국운동이 파쇼적일 가능성은?

최의팔 목사는 소위 복음주의단체인 '성서한국'이 사회개혁 참여를 공식 선언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성서한국의 현실 인식과 관심의 방향이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교계 일각의 견해도 소개했다.

최 목사는 우선, 성서한국 사명선언문에 '성서한국'라는 타이틀을 내건 것에 대해 우려했다. 소위 도덕적이고 신앙심 깊은 종교인의 정치참여가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참여가 궁극적으로는 광신적이고 파쇼적이며 극우파적인 색채를 띠지 않을까 염려했다. 최 목사는 또, '성서 위에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한다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은 성서를 누가 어떻게 왜 해석하느냐에 따라 운동의 지향점이 달라지므로 이를 분명히 짚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과거에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고 노력해온 기독교인들을 좌파로 몰고 왜곡시켰던 한국 기독교의 모습에 대한 반성이나 회개 없이 운동을 시작한다면 진실된 방향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개혁의 지향점은 '정의, 평화, 생명',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아래서 고통 받는 계층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선명하게 밝혔다. 이런 지향점에서 당파성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또 사회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교회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용은, 성서를 보는 눈이 새로워져야 하며, 목회자가 새로워져야 하며, 복 받으러 교회 나오는 교인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확장시키기 위해서 연대하는 것은 바람직한데, 그러려면 서로 자기 운동의 목표를 좀더 솔직하게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최의팔 목사의 글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한다. 성서한국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들이 최 목사의 글을 소중한 참고자료로 삼는다면 성서한국운동의 내용이 튼실하게 채워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서한국운동의 분명한 신학적 자세와 당파적 입장

최 목사가 염려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공감한다. '성경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들의 많은 경우가 신학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최 목사가 염려하는 행태를 띠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일반적 차원에서의 염려는 성서한국운동의 중심 동력이 되는 이들도 충분히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 성서한국운동이 '광신적'이고 '파쇼적'이며 '극우적' 색채를 띠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기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최 목사가 '당파성'을 강조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성서한국운동이 이 땅에서 가난한 자, 눌린 자, 억압된 자의 편에 서기를 바라는 최 목사의 마음처럼 성서한국운동은 그렇게 가려고 한다. 최 목사가 성서한국대회 주강사였던 김회권 목사의 메시지 개요를 미리 소개한 <뉴스앤조이> 7월9일자 기사를 미리 읽었다면 성서한국운동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김회권 목사는 "복음주의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야 한다" "성령운동은 정치운동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하나님나라 백성은 모든 지상의 권력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복음주의권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로잔언약에 대해서도,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침묵한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서한국대회 때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교했다. 김회권 목사의 성서해석과 그에 근거한 메시지 내용은 최 목사를 비롯해 진보 진영의 염려를 불식시키는데 충분하리라 믿는다.

30개 정도의 선택특강 내용을 보자. 최근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현실적으로 급진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는 성토모, 생태계 위기 문제에 대한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한국교회 개혁에 대한 교회개혁실천연대, 장애인 문제에 대한 뇌성마비장애인연합, 노숙자의 인권 문제에 대한 옹달샘드롭인센터, 경실련, 생명평화연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강사로 참여한 사역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대부분 당파성을 확실하게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회 중 '저 높은 곳을 향하라'는 고지론적 메시지가 튀어나와서 주최측과 청중 일부를 당혹케 했다. 이후 주최측은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했다. 진짜로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회에 참여했던 20대 청년들의 상당수가 고지론적 설교에 불쾌감 내지 분노를 표출했음을 곳곳에서 포착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설교에 대해서 자기 판단력을 갖고 반응한다는 점으로 볼 때 - 추후 첨가)  대회를 준비한 이들보다 대회에 참여한 청중들의 기대 내지 내적 성숙함이 더 앞서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은 대회 후에 개설된 사이트를 보아도 확인된다. 싸이월드에 성서한국대회 참가자의 관심별 영역 모임이 속속 개설되고 있다. 경제정의, 대중문화, 외국인노동자, 난민개발, 반전평화 등에 관심 있는 이들의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외국인노동자병원에 달려간 그룹도 있었다. 주최측이 대회에 참여한 20대 기독청년들을 보면서 흥분한 것이 '오버'가 아님을 입증케 하는 모습들이다. 교회개혁을 주제로 한 선택특강과 관심영역 모임에 50명 이상이 참여하고 이들 중 적지 않은 청년들이 교단총회 감시운동에 자원봉사하기로 한 것 역시, 사회개혁의 전제로서 교회개혁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다.

적어도 미국의 전쟁 지지 세력 정도는 자격 미달

지금 이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소위 복음주의권 40대 그룹 중에 상당수는 80년대에 나름으로 사회참여를 했으며(진보 진영에서 보면 새발의 피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역사적 반성 차원에서 지금이라도 사회참여를 하겠다는 것이다. 30대 그룹은 그런 경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렇다고 역사적 실천에 대해 부채의식을 갖거나 진보 기독교인들을 좌경 내지 용공으로 매도했던 어른들의 죄책에 대해서 대신 사죄할 의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런 광풍(狂風)을 일으켰던 사람들은 성서한국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복음주의라고 다 똑같은 것이겠는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주의 또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또는 에큐메니컬 진영'이라는 편 가르기에서 정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역량이 피차 있는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이것은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요구된다. 이 대목에서 우려하는 일부 50~60대 인사들도 있다. '신학적 정체성에 대한 집중력'이 선배 세대보다 약한 것을 걱정하는 소리도 실제로 있다.

그러나 최 목사가 "아무리 같은 기독교라도 미국의 부시 정권을 탄생시킨 미국 보수주의와 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염려했다면, 성서한국대회 마지막 날 이문식 목사가 "미국은 바벨론이나 앗수르처럼 오만한 지팡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정의의 도구가 되지 못합니다"고 한 설교에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적어도 이 정도로 손뼉이 맞아야 제대로 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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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뉴스엔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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